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3-12-22   541

<안국동 窓> 사회복지정책,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정쇄신을 위한 특별제언 [6] 사회복지분야

사이버참여연대는 연말까지 총 9회에 걸쳐 경제, 정치, 사법 등 각 분야의 구체적인 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국정쇄신을 위한 특별제언’ 시리즈를 <안국동窓>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보수적 정권이 들어서건 진보적 정권이 들어서건 우리 사회의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집단들은 여전히 세 개의 ‘잘못된 신념’을 갖고 보건복지정책을 접근하고 있다.

첫째는 경제성장과 시장의 활성화가 복지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동안은 이 신념이 현실에서 작동한 적이 있다. 유례가 드문 고성장으로 실질소득이 향상되고,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개발독재시기이다. 이 시기는 경제성장과 시장의 활성화가 의식주 문제와 교육, 의료, 노인부양 문제를 다 해결해 주는 듯 보였고 별도의 복지제도는 필요 없는 듯 보였다. 다행히 노인인구도 적고, 가족부양의식이 살아있어 복지문제는 시장과 가족의 힘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두 번째의 잘못된 신념도 이 시기에 굳어졌다. 보건복지정책에의 투자는 ‘소비적’인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적게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장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정된 국가재원을 경제·산업정책에 쓰기도 바쁜 판에 경제성장에 도움도 안되는 보건복지에 예산을 대폭 반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두 가지 신념 하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보건복지정책은 ‘우는 애 달래는 수준’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시장·가족을 통한 복지’, ‘소비적인 복지’, 그리고 ‘우는 애 달래는 수준’의 보건복지정책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질곡이 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전투화 속에는 월급으로 교육, 주택, 노인부양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시장만능주의가 핵심적인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향후 10년에서 20년 내에 노동가능인구의 절대적 감소를 가져와 우리 사회의 성장잠재력을 결정적으로 잠식할 1.17의 경악스러운 출산율 수치에도 아동양육 부담이 시장과 가족에게 떠 넘겨져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나날이 늘어나는 빈곤층과 빈부격차의 심화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우리 사회가 치러야할 사회적 비용을 늘려가고 있다. 최소한의 공적인 장치 없이 온통 시장에 맡겨놓은 주택문제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넘어 분노의 감정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에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사회복지가 성장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실한 복지정책이 거꾸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상이다.

노무현대통령은 대선 당시 그 이전의 어느 대통령 혹은 어느 후보보다 시장에 과잉 의존하는 복지정책의 문제점을 역설하였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가능하고, ‘분배 없이 성장 없다’는 대선후보 시절 노대통령의 신선한 발언은 아직도 필자의 뇌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도대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구체화시키는 ‘노무현다운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것이 중장기적으로 공공주택을 1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발표뿐이다. 공공의료를 3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은 고사하고 포괄수가제 같은 일부 보건의료정책에서는 오히려 애초의 공약보다 후퇴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55% 수준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후보 당시의 발언도 뒤집혔다.

정권 출범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대통령의 연설이나 기자회견에서 ‘복지’ 혹은 ‘분배’라는 단어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들리는 것은 ‘2만달러론’,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다’라는 과거에 귀에 박히게 듣던 소리뿐이다. 해방 이후 가장 개혁적인 정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참여정부에서 벌어지는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이것도 보수언론과 다수당의 횡포 때문인가 ?

참여정부에는 과거 정권에 비해 분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인사들이 그나마 배치되어 있으나 여전히 분배와 성장을 접맥시키는 구체적 정책들은 1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보건복지를 소비적으로 인식하는 잘못된 신념에서 한발자욱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분야에서도 참여정부의 내 걸은 공약을 이해하고 이를 강력히 집행할 전도사가 보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책임 장관제’의 단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의료계의 요구는 받아들여져도 의료소비자를 대변하는 개혁적인 단체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를 비롯한 분배의 핵심이 되는 정책들은 개별 부처차원에 맡겨두면 안된다. 복지부, 노동부, 교육부 등 분배문제와 관련된 부처 그리고 기획예산처, 국세청 등이 망라되는 그야말로 범부처 차원의 조직과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분배정책의 강화는 이제 일개 정권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각종 복지정책을 ‘시장·가족’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로는 지속적 경제성장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

‘새 시대의 첫 차’가 되기 위해서 노무현대통령은 ‘시장·가족’에 대한 과잉의존 구조에 단호한 메스를 가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보건복지분야와 경제, 예산정책 분야에서 개발독재시대의 잘못된 신념에 물들지 않은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를 가진 개혁적 인사를 전면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김연명(중앙대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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