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6-09-29   668

<안국동窓> 빈곤층을 배제하는 빈곤대책

근로빈곤층 대책과 EITC

얼마 전부터 EITC라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놓고 우리 사회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다. 애초에 EITC는 ‘근로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대책’으로 제기된 것이다. 단순화시킨다면 일을 하고 있지만 일정 수준보다 낮은 소득을 가지는 경우, 부(-)의 근로소득세와 같은 개념으로 일정비율을 환급해 주는 제도이다. 이 경우 일정 소득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근로를 통한 소득이 늘어날수록 지원을 많이 받게 되어 근로유인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일견 보다 적극적인 빈곤정책의 도입으로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빈곤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논의이므로 초기부터 EITC에 대한 논란이 사회각계에서 끊이질 않았다. 특히 EITC에 반대하는 주장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주된 논지들은 첫째, EITC 도입이 우리사회 근로빈곤 문제의 본질을 ‘적정한 일자리가 부족한 구조’보다는 ‘근로동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 둘째, 조세환급형태가 비정규 근로가 많은 우리사회 저소득 근로가구에게 적절하게 작용되기 어렵다는 점, 셋째, EITC에 적극적인 부처가 과거 늘 강조해오던 소득파악의 난점, 넷째, 최저임금이나 아동수당 등 다른 관련 영역과의 연계 속에서 나타날 부작용 등 이었다.

그간 몇 번의 공청회가 있었고, 관련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여러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얼마 전인 지난 9월 13일 입법예고가 완료되었다. 조세특례제한법의 “근로장려세제”라는 명칭으로 소위 EITC의 도입방안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입법예고되었던 사항에서는 자녀를 2인 이상 키우고 있는 빈곤가구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소득이 낮은 경우에, 그리고 자영자가 아닌 저임근로자인 경우에 최대금액 연 80만원 한도 내에서 근로소득세를 환급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이 제도는 재정지출이 아니라 전적으로 조세지출을 통해 운영될 것이라 한다. 물론 환급과 감면은 통계적으로 구분되겠지만 재정지출을 통해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입법예고안에서는 제도도입 논의의 초기 반대의 이유로 제기되었던 여러 사항들이 특별히 감안된 바 없다. 오히려 적용의 폭이나 지원금액 제한이 엄격하여 ‘근로빈곤층에 대한 탈빈곤지원’이라는 초기목적은 그나마 사라져버리고 ‘근로유인’의 상징성만이 남아 있다.

EITC가 수급자를 제외해야 수급자 탈피가 이루어진다?

제도적용의 폭과 지원금액 제한의 엄격성이 제도 운영상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입법예고안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제도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짚어보아야 한다.

2005년 기준의 국세청 파악자료로 EITC에 적용될 대상은 31만 가구 정도에 해당하는데 수급자 가구를 포함해도 이의 몇 % 정도(10% 이내)에 불과한 수치의 가구만이 추가될 것이라 한다. 그다지 많은 비중이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제도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증가문제는 적용배제의 핵심요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제도운영의 기본성격에 입각한 ‘배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수급자는 이미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충분히’ 국가로부터 보장을 받고 있으니, 이중수혜는 줄 수 없다는 인식일 것이다. 실제로 재경부 등 일부 관련부처에서 EITC를 수급자에게 적용하게 되면 근로유인이 없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공공부조가 최저생활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가는 별도의 논의이다. 다만, 최근의 관련 연구들에서 외국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불충분하다는 지적은 드물지 않다.

EITC 제도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의 경우에도 또 다른 생활보장제도인 TANF 적용자를 제외하는 제한은 없다. 오히려 TANF와 EITC를 연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TANF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같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다른 제도 특히 공공부조제도 적용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EITC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외국의 경험과도 맞지 않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충급여 방식에 의해 근로유인이 미약하다는 것은 분명히 취약점이다. 허나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자체적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로서 그간 여러 가지 방향에서 보완 논의가 이루어져 왔으며 일부 방안들은 이제 준비되어 시행을 앞둔 단계이다. 수급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여러 보장혜택이 사라지는 문제는 EITC 적용 배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오히려 EITC 적용 배제로 인해 이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근로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는 것이 현실적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들도 근로능력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양한 형태로 근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 근로소득이 최저생계비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근로’에 대한 장려도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근로유무에 관계없이 이미 공공부조를 주고 있으니 EITC 급여를 주지 않겠다는 것은 근로하지 말라는 ‘현명한(?)’ 경제적 선택을 유인하는 것이다. 또한 EITC의 실시는 저소득층의 소득파악을 제고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의 수급을 ‘현실상황에서 이전보다 제약’하게 될 것이다. 결국 EITC의 도입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들은 제도에 따른 환급은 받지 못하면서 (수급제약만 많아져서)생활의 어려움이 더 가중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 된다.

수급자의 근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장려할 것인가? EITC가 이에 대한 고민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미 우리사회에 필요한 ‘근로빈곤층 대책’이 아니다.

근로빈곤층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EITC에서 수급자는 제외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 공공부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EITC 도입을 통해 근로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하게 되었으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폐지하자는 논리이다.

이는 그간 너무 턱 없이 뒤떨어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를 조금씩이나마 현대화시켜왔던 흐름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빈곤 현장 및 우리 사회의 안정성에 대해 아무런 고려가 없는 주장이다. 공공부조 이전에 작동해야 할 보장체계의 취약성을 감안해본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를 없애는 것은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빈곤문제, 그리고 근로빈곤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과연 근로능력과 기회가 있어도 ‘근로동기’가 없어 빈곤한가?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그리고 근로빈곤층은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EITC 도입초기의 문제의식은 본질적으로 ‘근로빈곤층’의 ‘빈곤문제’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근로유인정책으로 제도의 성격이 전환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사회에 빈곤층을 배제하는 근로유인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근로빈곤층의 빈곤문제에 대처하는 소득보장과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 핵심적인 빈곤층인 수급자의 근로빈곤마저도 ‘적용배제라는 근로유인책’으로 해결하겠다는 현 EITC 입법예고안의 발상이 우려스럽다.

남기철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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