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연금정책 2023-09-22   401

[언론기고] 모두를 위한 연금정치⑤ 누가 연금정치를 망치는가?

홍원표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

국민연금 재정계산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보고서 편향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쪽에서는 재정안정과 보장성의 조화를 꾀한 보고서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보장성을 외면한 반쪽짜리 보고서라고 반발하고 있다.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밝히면 이 글은 보고서가 균형감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는 입장에 서있다. 왜 재정계산 보고서가 균형감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는지, 그리고 편향된 보고서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균형감 Zero

국민연금은 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한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지난 4차 보고서의 경우 두 가지의 보장성-재정안정 패키지 방안이 병렬적으로 제시된 반면, 이번 5차는 각각 독립된 장에 ‘다양한'(이라고 주장하는) 재정안정 방안과 보장성 방안을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은 재정계산 보고서 공청회 자리에서 이런 서술 방식을 택한 이유를 다양한 시나리오·시뮬레이션을 제시함으로써 정책 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또한, 비록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안은 빠졌지만 그 외 다양한 보장성 방안이 서술되어 있으며, 마찬가지로 재정안정 방안 역시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골고루 담았으니 문제없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우선 소득보장 방안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안이 빠졌다. 재정계산에 참석한 (재정안정론 입장의) 한 전문가는 실질 보장성 강화가 중요하지, 명목 소득대체율에만 집착하는 것은 ‘올드’한 편향이고 되레 연금정치를 가로막는 낡은 입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컵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갈증 해소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일견 그럴듯한 얘기다.

하지만, 5차 재정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주장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균형감 있게 병렬적으로 제시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재정안정화 방안을 제시한 장은 부담 주체와 인상률 등이 특정되어 자세한 추계까지 제시된 반면, 보장성 강화 방안은 실질적 효과 추계나 보장성 강화 목표 등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그저 다양한 정책 수단을 소개하는 데 그친 수준이다. ‘올드’한 비유지만 한쪽은 현금 거래고 한쪽은 어음 거래다.

5차 재정보고서의 균형감 상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목은 상충하는 내용을 마치 양립 가능한 것처럼 나열했다는 점이다. 보고서 내 재정안정 방안을 다룬 모든 시나리오는 보장성 동결을 전제하고 있다. 실질이든 명목이든 보장성 강화가 이뤄지면 지출 증가가 수반될 터이다. 두 장의 내용은 충돌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크다. 어느 쪽이 립서비스일까를 추정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미래 세대 부담 경감?

이번 재정계산 보고서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현세대와 미래 세대의 부담 형평성이다.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초고령 사회가 되면서 미래 세대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60년 뒤에는 인구 절반이 노인인 시대가 온다.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대안은 결국 돈의 문제고, 누가 어떻게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번 5차 재정계산 보고서는 재정안정 방안으로 보험료 인상, 수급연령 상향, 그리고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 등을 조합해 18개의 방안과 추계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18개의 재정 방안에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질문은 없다.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방안은 국고 지원, 자본 추가 부담 등을 원천 배제한 채 오로지 보험료, 즉 노동자와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8개의 재정 방안이 아니라 18개의 가격표를 제시한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은 우리 사회 전체 소득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미래 세대 인구 절반이 걸린 문제고, 마치 연금도 못 받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면서, 정작 해법 제시에서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재원의 일부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 그렇게 심각하다면서 도대체 왜?

미래 세대와의 형평성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래 세대 부담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현세대 적정 부담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소득보장론자들도 동의하는 바이다. (노동시민사회 진영은 2019년 연금개혁 논의 때 보장성 강화와 더불어 구체적 보험료 인상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현세대 부담 방식이 곧 보험료 인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험료 인상과 더불어 국고 지원 확대나 자본·자산 소득에 대한 추가 부과도 가능하다. 현세대가 갖고 있는 재원의 일부를 적정하게 미래세대에게 전달해 줄 방안을 찾으면 된다.

당장 실질 보장성을 올리기 위한 크레딧 제도만 해도 연금 지급 시기에 재정 지원을 하면 역시 미래 세대 부담을 증가시킨다. 현세대 책임을 다하려면 크레딧 사유가 발생한 보험료 납부 시기에 미리 지원해야 한다. 연금급여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지급하는 연금 급여에 올해 걷은 세금의 일부를 지원하면, 기금 고갈을 늦춰 미래세대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현세대 지원이지만 미래 세대 경감이 되기도 하는 셈이다. 요지는 미래 세대 부담 경감이 보험료 인상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며, 다양한 재원을 혼합할수록 미래 세대 부담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재정계산보고서는 이런 방안을 원천 배제했다. 이번 보고서 최종 편집 과정에서 제외된 보장성 강화 방안에는 보험료 인상과 더불어 국고 지원 확대 등 재정 혼합 방식의 재정안정화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내용은 배제되었다. 다양한 재원 방안은 외면한 채 오로지 보험료, 즉 노동의 대가에만 부담을 지우는 방식은 결국 세대 간 형평성을 명분으로 계층·계급 간 형평성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누가 연금정치를 제대로 세울 것인가?

정치는 이해관계의 조정이다. 충돌이든, 협상이든, 합의든, 다수결이든 정치가 수행해야 할 최종 책무는 각 이해집단 간에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는 일이다. 다수의 이해당사자들이 이러한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이 과정에서 전문가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는 이들이 숙려를 통해 의사결정에 다다를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재정계산위 보고서는 이러한 조력과는 거리가 먼 결과물을 내놓았다. 재정계산위원장은 공청회를 통해 정책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제안을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보고서는 선택적 정책 대안만을 제시함으로써 특정 정책 결정을 유도하는 편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에게 논의를 부탁한 것은 그들의 전문적 식견을 나눠달라는 것이지, 의사결정의 권한을 준 것이 아니다. 이번 5차 재정계산 보고서는 전문가주의가 이해당사자 논의를 대신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보고서다. 2023년 연금정치가 난맥으로 흐른 가장 책임은 전문가주의에 대한 현 정부와 정치권의 맹신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라도 연금 정치의 장을 제대로 열고 싶다면 이해당사자들의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 오마이뉴스 원문보기

<모두를 위한 연금정치> 시리즈
① 국민연금 재정계산위, ‘반쪽짜리 보고서’ 내놓을 셈인가
② 재정계산 기금운용발전전문위 활동을 마치며… 기록되지 않을 이야기들
③ 국민연금 재정계산 공청회에서 빠진 내용, 바로 이거였다
④ 연금 운동과 연금 정치, 모두의 미래를 위하여
⑤ 누가 연금정치를 망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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