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1월 1999-11-01   779

왜곡과 거짓,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5백만 서명의 진실

의료보험통합반대 논리의 허구

의료보험 통합이 위기에 처해 있다. 1999년 1월 「국민건강보험법」의 국회 통과로 별 문제 없이 진행될 것으로 생각되던 의료보험 통합 작업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불투명해졌다. 한국노총과 직장의료보험노조가 주축이 된 소위 ‘봉급자보험료 과잉부담 저지 및 사회보험개혁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이하 범대위)가 의료보험 통합 작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청와대와 국민회의 지도부 일부가 이에 동조하여 지난 10월 9일 의료보험 조직 통합을 6개월 연기한다고 결정하였다.

이들은 국민연금 도입 과정에서 불거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문제를 빌미로, 그리고 이제와서는 실무적 준비 부족을 근거로 의료보험 통합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보험에서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이란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과제이지만 이들이 제기하고 있는 형평성에 관한 문제제기가 과연 정당한지, 정당하지 않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거짓주장과 사실왜곡

사회보험에서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원론적으로 옳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첫째,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2000년에 직장 노동자의 보험료가 49% 오른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소위 ‘범대위’ 주장의 핵심은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2000년부터 직장노동자의 보험료가 49% 인상된다는 것이다. 이는 직장노동자의 소득은 100% 파악되는데 지역가입자의 소득은 23% 밖에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이를 고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면 직장노동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은 2002년 1월에야 통합될 예정이다. 2000년에는 직장조합끼리만 재정이 통합된다. 따라서 내년에 의료보험 통합으로 인해 직장노동자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부담하게 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2002년에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을 통합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중요한 변수는 2002년까지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률을 공평한 보험료 부과가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세특례제도와 간이과세제도가 2001년까지 폐지될 예정이며, 금융소득종합과세 제도도 2001년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그 외에 신용카드 사용의 확대와 자영자의 소득, 재산, 금융거래 자료를 의무적으로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하여 자영자의 소득정보를 일원화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개혁조치가 예정대로 이루어진다면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은 획기적으로 증가될 수 있고 이는 2002년까지 보험료 부과가 가능할 정도로 소득파악률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전국민 연금제도의 실시와 의료보험 통합이 소득파악률 제고와 조세 형평성 개선을 위한 큰 동인을 제공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면 2000년에는 140개 직장조합과 공무원조합의 재정이 통합될 예정이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에 의하면 직장조합과 공무원조합의 재정통합을 2002년까지 연기하도록 되어 있다. 직장조합을 하나로 통합하면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이 크게 개선된다. 140개 직장조합의 재정을 하나로 통합하면 월 소득이 52만 원 미만인 저소득노동자의 보험료는 50.6% 감소하고, 월 소득이 303만 원 이상인 고소득 노동자의 보험료는 35.4% 증가한다(표 1 참조).

현재 조합방식에서는 고소득자는 소득의 약 60%에만, 저소득자는 소득의 약 90%에 보험료가 부과되어 왔는데, 이를 통합하면 총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보험 통합과정은 소위 ‘범대위’의 주장과 달리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이 개선되는 과정이다.

반개혁적 의보통합 연기기도 중지해야

둘째, 통합 연기 주장은 근거가 없다.

소위 ‘범대위’는 통합의 대의를 반대하기 곤란하니까 의료보험 통합 준비의 미흡을 이유로 일정 기간동안 조직통합을 연기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민회의 내부가 이런 논리를 일부 받아들여 의보조직통합 6개월 연기를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 주장의 근거가 취약하며 이는 의료보험 통합을 연기해서 결국 무산시키고자 하는 의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000년에 조직을 통합하는 데는 실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는 현행 방식대로 하면 되고, 직장가입자의 경우에도 보험료 부과체계가 현행과 동일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다. 또한 직장가입자는 현재의 전산기기를 그대로 사용할 것이므로 전산 준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실무 준비에 5.5개월이 걸린다는 정부가 며칠 전까지는 2∼3개월이면 실무적인 준비가 가능하다고 대답한 것은 이것이 통합연기의 진짜 이유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가장 큰 실무적 문제는 통합을 반대하는 직장의보노조가 통합에 필요한 자료제출을 계속 거부하고 있고, 보건복지부가 이를 묵인 내지 방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범대위’나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범대위’와 정부가 의료보험 통합을 불가능하게 하는 주범인 셈이다.

정부가 의보통합을 연기한 진짜 이유는 신당에 한국노총 등 기득권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과 내년 총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는 의보통합 연기 결정이 보건복지부가 아닌 청와대의 노동복지수석에 의해 주도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역가입자의 소득파악을 위해 의료보험 ‘재정’의 통합을 2002년까지 연기하는 것은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조직’ 통합을 6개월 연기하는 것은 아무런 정책적 타당성이 없다. 조직 통합 연기는 직장의보의 고위관리직과 직장의보노조의 조직 보전을 위해서만 필요하며 이는 관리운영비 절감과 소득에 맞는 공평한 보험료 부담을 달성하지 못해 국민의 이익을 저해하는 것이다.

셋째, 국민은 의료보험 통합을 반대하는가? 소위 ‘범대위’는 대다수의 국민이 의료보험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5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통합반대 서명운동을 들고 있다. 이 서명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명발표 이후 이 서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직장의보노조원의 익명의 제보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서명을 한 국민은 과연 의료보험 통합의 연기를 바라고 있을까? 소위 ‘범대위’의 서명용지를 살펴보면,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2000년부터 봉급생활자의 보험료가 49% 인상된다고 되어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는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국민은 의료보험 ‘통합’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공평한 보험료’ 부담을 요구한 것이다. 공평한 보험료 부담은 현행 조합방식을 유지해서 직장조합의 조직을 보존해줌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료보험을 통합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의료보험 통합 반대는 반개혁적이다. 이들은 의료보험제도를 불공평한 보험료, 비효율적인 제도, 조합간 극심한 재정 격차의 암울한 과거로 되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반대운동이 가뜩이나 취약한 사회보험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정부의 의보조직 통합 6개월 연기 결정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한국노총과 직장의보노조는 이기적인 통합반대운동을 중지해야 한다. 잘못된 정책결정이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를 10년 이상 후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조홍준 건강연대 의료보험대책위원장, 울산의대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