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1월 1999-11-01   682

인터넷에 사이버그린벨트를 만들자

인터넷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인터넷 위에 인터넷을 이용한 산업이 시장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신문, 방송, 잡지 어디를 봐도 매일매일 인터넷이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화두가 되고 있다. 21세기가 오기도 전에 인터넷은 인간의 삶을 바꿔놓는 중요한 기술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을 굳이 기술이라 하지 않고 기술시스템이라 부르는 건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인터넷을 잘 모르는 사람도 짐작은 하겠지만, 이게 어디 손으로 만져지는 실체가 없다. 네트워크라고 하는데, 전화선으로 연결돼 있으니 통신같기도 하고, 그 속에 들어가면 신문도 보고 텔레비전도 보니 이건 꼭 매스컴 같기도 하다. 또 홈페이지, 전자상거래와 같은 말을 들으면 이건 꼭 눈에 보이지 않는 백화점 같기도 하다. 사실 이런 것 모두를 합친 셈인데, 어디에 꼭 실체가 없다. 기술자체도 아니고 기계와 기술과 기술을 운용하는 규칙과 사람이 결합한 체계라는 뜻에서 우리는 인터넷을 기술체계라 부를 수밖에 없다.

보통사람은 이런 속내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겁도 나고 모르면 뒤쳐지는 것 같게 된다. 사회운동가들도 이 점에서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사회운동 경력이 오래된 나이든 활동가일수록 컴맹의 정도가 심하고, 대표나 사무총장쯤 되면 물어보기가 민망한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 사회운동이 인터넷이라는 기술시스템 전체를 포기하는 셈이 되고 인터넷 세상은 기업들이 장사하는 시장으로 변해버리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 인터넷에도 그린벨트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하고자 하며 사회운동이 인터넷 그린벨트 운동에 동참해 주기를 호소하고자 한다.

인터넷은 단일한 미디어가 아니다. 여러 종류의 매체들이 존재한다. 웹(World Wide Web)이 있고, 이메일이 있고, 유스넷이 있다. 마치 언론에 신문, 잡지, 방송, 책 등으로 이뤄져 있는 것과 같다. 이메일은 전화와 비슷하고, 유스넷은 공개게시판이나 거리집회와 비슷하고, 웹은 텔레비전과 비슷하다.

우리가 흔히 “인터넷에 자료가 많다,” “정보의 바다를 항해한다”고 할 때, 그것은 웹사이트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이메일은 잘 아는 사람끼리,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말을 주고받고 전화와 비슷한 매체다. 유스넷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정보와 의견을 나누는 공간이다. 그래서 공개게시판이기도 하고 대중집회와 비슷하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유스넷은 대단히 부진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다양한 매체를 가진 인터넷은 공공기관에 의해 개발됐고, 비영리 공공기관이 축적한 정보를 인터넷 위에 공개함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대략 1990년대 초반부터 치면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정보의 바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장사하는 사람들이 놔두지 않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들어서서 똑같이 짧은 시간 동안에 인터넷은 시장으로 바뀌었다. 인터넷 공간은 마치 개발붐이 일고 있는 신도시와 같다. 신도시 하나 정도가 아니라 지구적 수준에서 광활한 공간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분당 신도시가 생기면서 4년간 살 기회가 있었다. 성남시의 한 부분으로서 분당은 5년만에 40만 인구가 사는 도시로 건설되었고, 분당 내부와 주변에는 백화점과 쇼핑센터, 음식점 거리로 넘쳐난다. 도서관도 없고, 문화관도 없고, 공연장도 없다. 중앙공원이 하나 있을 뿐이다. 고속도로 사용료 1,000원을 부과하는 게 불법이니 아니니 싸움이 나고 사회문제가 되지만, 공공도서관, 문화관은 없어도 아무도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는다. 이건 분당뿐 아니라 일산도 그렇고 중동도 그럴 것이다. 나는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인터넷 공간이 딱 분당신도시와 똑같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위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이트에 가면 온갖 눈길을 잡는 디자인으로 광고가 넘쳐나고, 거기에 가면 쓸만한 정보도 많고, 재미도 있다. 이제 인터넷은 시장이고 백화점이 되었다. 인터넷 초기에 기초를 다졌던 학교, 공공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공원은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대단히 어려워졌다. 서울시내 빌딩 숲에서 시민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인 공원을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금싸라기 땅에 공원을 만들고, 박물관을 만드는 게 이제 불가능하다는 걸 시민들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터넷도 이대로 가면 사방이 유흥가고 술집이고, 백화점인 도시와 같이 될 것이다. 이대로 놔둘 수 없지 않겠는가. 인터넷에 그린벨트를 만들고 거기에 무료로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도 만들고 박물관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우리의 당면과제다.

정보불평등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정보민주주의라는 전망에서 보면 온갖 정보테크놀로지가 새로운 삶의 모습과 사회관계를 창출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고속도로를 타고 사이버 백화점을 이용하는 인터넷 사용자인 우리는 주어진 정보와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소비자에 불과하다. 우리가 글을 올리고 의견을 내고, 토론하기 보다는 소비하는 부문이 압도적이다. 그렇게 많은 오락프로그램과 정보데이타 베이스 가운데 적극적으로 선택한다는 일이란 고작해야 수많은 청량음료 가운데 주어지는 다양한 선택가능성에 불과하다. 더욱이 소비자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정보와 프로그램을 선택한다는 명제는 대다수의 정보소비자들이 자신들이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그러한 정보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민주주의라는 관심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정보테크놀로지와 영상/정보프로그램들이 상품화되는 정보자본주의 확대에 따라 비용지불 능력의 차이에 의한 소비부문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술 발전에 따라 인터넷, 쌍방향 텔레비전, 주문비디오 등에서 보듯 사용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상호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용지불 능력의 차이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의 혜택이 경제적, 문화적 기득권 집단에게 편중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민주주의 개념은 시장을 통해 주어지는 선택가능성과 시장을 통해 생산, 유통되는 과정 자체에 개입할 권리를 명백히 구분하고자 한다. 이때 생산과 유통과정에 개입할 권리란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넘어서서 지불할 비용이 없거나 부족하더라도 정보와 정보테크놀로지에 접근할 수 있는 비시장적 영역의 확보를 요구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리킨다. 이렇게 정보민주주의는 소비자로서의 욕구충족과 권리를 넘어서서 시민권적 개념에서 정보욕구와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데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제도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에 근거해서 정보민주주의라는 이론은 세 가지 기본개념으로 구성된다. 첫째, 정보접근권이다. 이것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권리의 실현을 뒷받침하는 제도와 정책에 대해 다양한 조언과 해설에 접근할 권리를 의미한다. 둘째, 사람들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가능한한 다양한 종류의 정보와 견해와 논쟁에 대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주어진 이슈들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와 비판을 제기하고 대안적 정책이나 행동지침을 제안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사용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 째는 기존 매체뿐만 아니라 새롭게 발전되고 있는 정보테크놀로지를 통해 사회 계층, 계급집단의 대표성이 보장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필요로 한다. 이때 사회 각 집단들의 대표성은 매체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뉴스나 프로그램을 통해 공정하게 표출될 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사회집단 스스로 자신들의 대표성을 표출할 수 있는 매체와 공간을 요구하는 권리를 포함한다.

이렇게 정보민주주의 담론은 새로이 발전하는 영상, 정보테크놀로지를 통해 어떻게 시민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참여를 북돋우고, 참여에 요구되는 정보를 습득하고 교육받을 권리를 신장시키느냐에 그 핵심이 있다. 정보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공영역을 확보하는 문제인 정보공개제도를 통해 비로소 제도화될 수 있는 것이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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