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5월 2011-05-30   1482

참여사회가 눈여겨 본 일-대학은 더 이상 대학(大學)이 아니다

대학은 더 이상 대학大學이 아니다

박준희 『참여사회』시민기자

유럽문화에 관심이 있어 중앙대학교 독문과에 입학한 노영수씨. 그는 대학교에서 독일 대학생들은 등록금에 큰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고, 누구나 원한다면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운 ‘대학’이라는 곳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퇴학생이다.

중앙대 퇴학생 노영수, 그의 이야기

노 씨는 2010년 학과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다. 어문, 인문 계열의 학과들이 통폐합 된다는 구조조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노 씨 외 학생 2명도 한강대교에 올랐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기업식 구조조정 저지, 이사회의결 무효, 학생징계시도 분쇄!”라고 쓰인 플래카드는 60m 타워크레인과 한강대교 난간에 걸렸다.

  “구조조정 하나만 가지고 극단적인 행동을 한건 아니었어요. 2008년 두산이 학교를 인수한 후 일련의 과정 속에 있었던 일이에요.”

  그는 진중권 독문과 겸임교수가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 탈락되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 때 시국선언을 하는 등 현 정권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독문과 교수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독문과가 학과 구조조정 대상이 되자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2010년 4월 8일이었어요. 학생들에겐 잔인한 날이었죠.” 오전에는 구조조정안이 위원회에 통과됐고 오후에는 반대 목소리를 냈던 학생들의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노 씨는 타워크레인에 오를 만큼 절실했다. 시위가 끝나고 노 씨는 퇴학 징계와 2500여 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 받았다. 함께 시위했던 학생들도 징계를 받았다. 학교는 직접 학생들을 고소했다.

  노씨는 과도한 징계에 항의하기 위해 학교 본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뜨거운 여름, 익산에서 창원까지 삼보일배도 했다. 학교는 그를 또 다시 고소를 했다. 그 사이 학교는 노 씨의 동향을 사찰했다. 두산기업의 대리가 집회에서 노 씨의 행동 하나하나를 메모해갔다. 노 씨와 학생들은 학교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1년 1월, 법원은 학교의 징계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단, 학생들에게도 일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노 씨는 학교로 돌아왔다. 10개월 만에 돌아온 학교엔 봄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학교가 학생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판결문에 근거해 2월 말 다시 징계위원회를 소집하고, 노 씨에게 ‘1년 2개월 정학’ 징계를 내린 것이다.

  학교를 가지 못했던 10개월은 노 씨에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거기에 법원이 징계 무효처분을 했는데도 학교가 다시 중징계를 내렸다. 노 씨는 감정이 격해졌다.

  “판결의 취지는 징계가 부당하다는 것인데 학교가 ‘학생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문구에만 집착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학생이던 노 씨는 학교와 소송을 하고 재판을 받고 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그는 독해졌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많이 겪다보니까 독해졌어요. 부조리한 일들에 무감각해 진 것 같기도 하고요.”

  29살 대한민국 남자. 졸업이 늦어지는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허탈하게 웃는다.

  “솔직히 마음이 부담스럽죠. 초조하고요.”

  무엇이 높은 등록금을 내가며 공부하던 학생을 학교 밖으로 내 몰은 걸까.
 
두산 인수 후 중앙대엔 무슨 일이?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용성 두산중공업회장은 “중앙대, 이름만 빼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전부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는 학과가 너무 많아 학교운영이 방만하다는 이유로 경쟁력 있는 학과 육성과 유사·중복 학과 통합을 추진했다.

  학교는 2010년 3월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를 46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안을 확정했다.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학교는 4월 8일 이사회를 열어 구조조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인문·어문계열을 통폐합하는 대신 경영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모든 학생에게 취업을 위해 회계학을 필수적으로 수강하도록 했다. 실무에서 적용할 수 있고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자는 명분이었다. 대기업 회장은 대학생들의 회계업무 능력을 기초 교양으로 봤나 보다.

  학교는 대학언론도 손봤다. 2009년 11월 총장을 비판하는 내용을 실은 교지 <중앙문화>를 배부 3시간 만에 회수하고 교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그 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지 지원을 할 수 있게 등록금 고지서에 ‘교지대’ 항목이 만들어졌지만 학교는 올해 2월 그 항목마저 삭제해 버렸다. 교지를 만들 수 있는 지원통로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2001년 삼성이 성균관대를 인수한 후, 재단에 비판적인 내용을 실은 교지 <성균>이 전량 회수된 사건보다 한층 더 집요하다.

  뒤이어 학교는 매년 초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던 ‘새내기배움터(새터)’를 불허한다. 학교 측은 새터가 사고의 위험이 있고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총학생회 측과 전혀 논의하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학교의 겉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중앙도서관은 리모델링했고, 기숙사가 새로 지어졌다. 입시경쟁률은 수시와 정시 모두 높아졌다. 외고와 과학고 지원자들이 늘었다. 언론은 놀랄만한 추진력으로 개혁을 이뤄내는 중앙대의 발전을 기대하는 기사를 실었다.

  중앙대 학생들은 두산이 학교를 인수한 후, 취업률이 높아지고 학교에 많은 지원을 할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노 씨도 이런 학교 분위기를 인정했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을 보면 취업난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학생들의 위기의식이 있어요. 이런 심리를 두산이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반교육적인 일들을 벌이고도 학내에서 분위기가 조성되는 거겠죠.”

  교수들과 학생들도 많이 지친 상태다. 무섭게 몰아붙이는 ‘기업식 개혁 바람’에 속수무책이다.

  “초기 반발했던 교수님들도 그로기 상태에요. 그동안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정교수가 아닌 사람들은 재단 눈치 보기에 급급하죠.”

  학교는 두산이 재단을 인수한 후 교수들의 급여를 차등연봉제로 전환했다.

  “학생회 분위기도 작년 이후에 재단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와해가 됐어요. 안타까운 상황이죠. 박용성 이사장 말처럼 자본주의 논리는 어디서든 통하나 봐요.”

자본주의 논리가 장악한 대학

중앙대처럼 기업이 직접 대학을 인수하는 것 외에도 이미 시장논리는 대학을 지배하고 있다. 대학사이의 경쟁과 학생사이의 경쟁은 당연한 것이 돼 서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최근 논란이 됐던 카이스트의 ‘서남표식 개혁’ 또한 시장의 논리로 학교를 운영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100% 영어수업은 영어로만 수업을 받는 실력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일류대학으로 카이스트를 평가받게끔 했다. 차등적 등록금제도는 3.0이하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아 돈을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이 공부를 하게 했다. 카이스트가 추구했던 개혁은 철저히 외부에 과시하고 단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시장의 논리로 사회의 가치들이 무너지는 것을 많이 봐왔다. 기업은 단기간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본다. 기업사회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권력을 가진다. 마치 계급사회 같다. 기업을 경영하던 사람의 논리로 대학의 본질적인 가치, ‘자율적인 학문 공동체’를 지킬 수 있을까?

  중앙대가 ‘쓸모’ 없다고 본 인문학은 중앙대에서만 홀대 받은 것이 아니다. 학교가 현실에서 쓰일 수 있는, 졸업 후 기업이 인정할 만한 실용학문을 대우해준 결과가 어떤가? 학교가 시장 논리로 학생들의 학문 선택의 폭을 없애고 있다. 학교는 기업이 원하는 한가지 모습의 인재만 길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정말 한 가지 모습의 인재만 원하는가.

 

  대학에서 쉽게 기업 이름이 붙은 건물을 볼 수 있다. 기업이 일부 혹은 전액 지원한 건물엔 그 기업의 이름이 붙는다. ‘포스코관’, ‘SK경영관’, ‘KB생활관’ 등은 항상 학생들 곁에 있다. 학생들은 그 속에서 공부하며 생활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기업의 이름을 각인한다. 기업과 친해진 대학생들은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경쟁을 한다.

  노 씨는 등록금이 높은 이유 또한 대학이 시장이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은 왜곡된 시장이에요. 수요는 늘지만 공급가는 계속 올라가요. 다른 대학과의 경쟁을 한다는 명목으로 등록금을 계속 올리고 있어요.”

  기업이 운영하는 학교 교육은 상품으로 전락했다.

  “교육이 소비되는 현상이 비극적이에요. 두산이 과연 교육 철학에 관심이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2011년 예산안에 통과된 ‘서울대법인화법’이 우려스럽다. 노 씨는 이 법안이 대학이 시장이 된 것의 연장선으로 봤다.

  “시장의 논리로 대학을 바꾼다는 것이죠.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기존의 정책들이 정리될 거예요.”

국립대의 법인화 바람은 서울대를 필두로 여러 국립대학에 불고 있다.

대학은 사회의 축소판, 장기적인 개선 노력 필요

중앙대와 카이스트 사태는 CEO 출신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소통이 부재하고 학교와 나라를 기업을 경영하듯 운영하겠다는 사고는 사람들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게 하고, 학생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노 씨는 대학이 더 이상 변질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고 말한다. 노영수 씨에게 본인의 노력이 학교의 변질을 막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 상황이 바뀌진 않을 거예요. 단기적으로는 의미 없는 행동이죠. 장기적으로는 바꿀 수 있다고 봐요.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문제를 덮어두지 말고 싸움을 유지해야 돼요.”
  그는 등록금 문제를 예로 들면서 연대의식을 강조했다. 또 사회 구조상으로는 대학과 기업을 분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대학이 학생과 학부모에게만 등록금 부담을 주어선 안된다. 작년 OECD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교육비를 민간이 부담하는 비율은 2.8%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율은 7.0%로 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 4위였다. 반면 학생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비율은 각각 4.4%, 5.7%로 OECD 평균(각각 11.4%, 8.8%)에 못 미쳤다. 교육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인프라다. 이러한 공적 영역을 시장의 논리에 맡겨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모든 국민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교육의 영역은 대학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암울한 현실 속 경희대의 변화는 대학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지 희망을 보여준다. 지난 3월 경희대는 총학생회가 보고한 등록금 동결안을 수용했다. 이미 납부한 3% 인상된 등록금 중 2%는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0.5%는 저소득층 학생 장학금에 쓰고, 0.5%는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처운 개선에 쓰기로 한 것이다. 인상된 등록금을 동결하기로 한 것은 경희대가 처음이다.

  또 올해부터 교양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했다. 교양교육을 전담하는 ‘후마니타스칼리지’를 만든 것이다. 2011년부터 신입생 모두 이곳에서 교양교육을 이수해야한다. ‘인간의 가치 탐색’, ‘우리가 사는 세계’, ‘시민교육’이 필수 과목이다. 도정일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은 언론인터뷰에서 “좋은 삶을 자기 스스로 만들고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후마니타스 교육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경희대의 인문학 교육은 당장 어떤 변화를 눈에 보여주진 않겠지만 학생들의 삶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학교에 돌아가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노 씨는 징계를 받았지만 계속 학교에 나가고 있다. 전공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항의의 의미도 있고 스스로 학생 신분임을 잊지 않기 위해 나가요.”

  학교에서 겪었던 일 때문에 학교에 정이 떨어질 법도 한데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뭘까.

  “정이 뚝뚝 떨어지죠. 솔직히 이야기하면 오기죠. 이렇게 까지 싸웠는데. 지금은 부당한 징계에 맞서 싸우는 상황이고 학교에 복학해서 그걸 마무리 짓고 싶어요. 학교에 돌아가서도 그동안 해왔던 말과 행동에 모순되지 않게 목소리를 낼 겁니다.”

  노 씨는 요새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 중이다. 책으로 나온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게 될 것이다. 

  ‘참에 죽고 의에 살자’는 중앙대 교훈이다. 중앙대 학생들은 4·19혁명, 80년 광주민주화항쟁, 6·10 민주항쟁 등 역사의 현장에 ‘의혈’기를 들고 선두에 섰다. 2011년 오늘 중앙대에 진정한 ‘참’과, ‘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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