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994

국민은 투명하고 공정한 신문을 원한다

2001년 1월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강력한 언론개혁 방침을 밝힌 것은 언론의 자율적 개혁을 주장하고, 언론과의 대립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대통령으로서는 커다란 태도의 변화를 보인 셈이다. 기자회견 뒤 국세청은 서울에 소재한 신문사와 방송사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나섰고, 뒤이어 공정거래위원회도 일간지들의 거래내역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의 정치적 성격에 대 해서는 논란이 많다. 게다가 최근엔 한 주간지에 의해 ‘여권 두뇌집단의 언론대책 문건’ 이 폭로되면서 상황은 여권의 정치적 공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 기도 하다.

7년 만에 벌어진 언론사 세무조사는 이처럼 ‘정치공방’으로 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것이 정치적 성격을 띠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세무조사는 한국사회에서 거래활동을 하는 모든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치러야 할 사항이고, 언론사라 해서 특별히 면제하는 것은 어 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사실 여기서 따질 것은 왜 2년씩이나 세무조사를 연기해 서 국세청 스스로 유사불법행위를 저질렀는가이다.

세무조사나 공정거래여부 조사는 그 자체가 언론개혁조치가 아니고, 향후 전개될 언론개 혁작업의 기초자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세무조사를 통해 언론사 사주들의 고질적인 비리와 부정이 드러나면 국민의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언론자본에 대한 규제방법을 개발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기세무조사가 공정하고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행돼야 하고, 세무조사의 과정과 결과가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상식이다. 뿐만 아니라 세무조사 결과는 1회용이 아 니라 언론사를 포함한 기업들의 세무관련 불법행위를 뿌리뽑고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법 제도를 완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방침이 발표되고 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2월 12일부터 언론사에 대한 불공정거래 및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에 신문 판 매 및 광고 시장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시정하고, 현존하는 공정거래기준을 법대로 적용 할 것을 누누이 촉구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언론사의 위세에 눌려 별다른 응답을 보여 주지 않았다.

과당경쟁 등 불공정거래행위도 심각

한국신문협회는 1966년 이후 신문판매 과당경쟁과 관련해 자율적인 정상화를 26차례나 결 의했으나 전혀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했다. 신문사들은 1996년 살인사건까지 불러일으켰던 신문전쟁에 이를 정도로 대량의 무가지 살포와 고가의 경품 제공, 구독 강요, 불합리한 광고비 산정 및 덤핑, 광고 강요, 광고단가 및 구독료 담합 등 무한과당경쟁을 일삼았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3개 신문의 시장점유율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70% 정도에 달하고, 그 집중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 으로 추정된다. 역으로 나머지 신문들은 날이 갈수록 쇠퇴하고 존립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수신문의 시장독점은 그 자체가 여론에 대한 독점 으로 나타나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분야 또는 경제분야 전체에서 독점 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작은 신문들도 위협을 당하고 있지만 지방신문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 하여 존립조차 위태로운 상황이다. 약한 신문이 살아날 기회를 봉쇄하는 신문시장의 불공 정거래 관행을 방치하고서는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도 어렵고, 경제의 건전한 발전도 어 렵다.

거대신문들이 선도하는 과당경쟁은 작은 신문들로 하여금 차입경영에 의존하도록 유도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소수신문들은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기 위해서 거대신문들이 마구 뿌리는 경품과 판촉비에 대항하기 위한 시장방어용 판촉비를 뿌리면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를 위 해서는 자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비용을 판촉비로 사용해야 한다. 수익이 충분하 지 못한 신문사는 차입으로 경쟁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또 해당 신문사의 수익성 과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시민단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차제에 엄정한 조사를 통해 공 정거래관행이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거대한 신문이 시장침투를 위해 사용 하는 무가지와 경품을 없애는 일, 판촉비 지출을 적정수준 이상으로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 는 일, 구독강요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신문사 본사와 지국 사이에서 지국에 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맺어지는 계약 및 거래관행도 시정해야 한다. 지국 중에는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고 운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의무화시켜야 한다.

신문 광고시장의 불공정거래 실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일부 일간지의 광고지면이 60% 수준 에 이르는 것은 신문 존재 자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독자들로서는 뉴스를 파는지, 광고를 파는지 불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몇몇 신문에 서 풍부한 광고지면을 가지고 한정된 광고물량을 독점하면 다른 신문들에 실릴 광고가 그만 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신문사가 기업을 상대로 광고를 강요하고, 구체적 근거 없이 광고 단가를 부당하게 높게 매기는 경우나 광고료를 덤핑하는 경우도 많다. 기사성 광고, 광고성 기사, 보험성 광고 등이 많고, 허위·과장 광고나 기만 광고, 음란·외설 광고가 신문지면 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경우도 많다.

공정거래위의 불공정거래 단속결과도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마찬가지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고 공개돼야 한다. 공정거래위는 조사를 통해 탈법사실에 대한 형사고발이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를 내리고, 해당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 또한 조사결과는 향 후 언론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보 및 시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안 마련에 토대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인쇄공장에서 바로 쓰레기처리되는 신문

신문전쟁은 신문판매시장의 무질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쪽에서 신문들이 부수확장을 위해 소모적인 무한경쟁을 선도하면 다른 신문들도 자기역량과 관계없이 어쩔 수 없이 따 라간다. 무가지를 배급하고, 인쇄공장에서 바로 쓰레기로 처리되어 재생공장으로 향하는 신 문의 양도 많다. 이 같은 소모적인 판매전략으로는 건전한 언론활동을 하는 신문도 존립을 위협받게 된다.

바람직한 방법은 지면을 차별화 함으로써 다른 신문들보다 질적 우위를 점해 시장경쟁을 이겨나가는 것이겠지만, 그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기서 모든 신문들이 부정하고 불필 요한 판매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내용의 우열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진다. 그 장치들 중 하나가 공동판매제이다. 본사와 지국과 보급소로 연결되는 기존 판매방식이 개별약진에 따른 약육강식의 독자 획득 방법이었다면, 공동판매제는 신문들 사이의 신사협 정을 통해 판매시장을 공동으로 운영하자는 안이다. 이는 곧 신문의 질로 경쟁하는 정상적 경쟁방안이 된다.

공동판매제는 신문의 판매비용을 절감시켜주는 방안으로 알려져 있다. 정연구 박사의 연구 에 따르면 발행부수 200만 부 신문의 경우 공동판매제를 취하면 현재의 판매방식에 비해 월 10억 원이 훨씬 넘는 경비절감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의 수익성 개선이라 면 월 300만 원씩 임금을 주는 기자 300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신문공동판매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문공동판매회사를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몇몇 신문사들이 자유롭게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공동판매회사에 대해 지원금을 제공함으로써 참여신문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 필요 하다. 한편 공동판매제는 특정신문을 집중적으로 판매하고 다른 신문의 판매는 게을리 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공동판매회사 내부의 주식소유와 운영을 철저하 게 공유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공동판매제가 실시되면 비용절감은 되지만, 그동안 턱없이 부풀려왔던 발행부수가 속속들 이 드러남으로써 광고단가 산정이나 총 광고수입에 영향을 입을 수 있다. 이 문제는 어차피 언론사가 투명한 경영을 지향하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공동판매제를 통해 각 신문사의 발행부수가 사실상 공개되면 발행부수공사제도(ABC : Audi t Bureau Circulation)를 시행하기 위한 좋은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 이것은 신문, 잡지의 정확한 발행부수를 공신력 있는 기관이 측정하여 공개하는 제도를 말한다. 발행부수가 공 개되면 광고단가 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당한 광고수주를 방지하는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에 광고시장의 정상화도 상당부분 기대할 수 있다.

국회의원 123명, 언발위 구성에 찬성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개연)는 1999년 6월 15대 국회 때 언론개혁기구의 구성을 제안한 적이 있고, 지난 16대 총선 기간 전후에는 여야 국회의원 123명으로부터 ‘언론발전위원회 구성과 정기간행물법 개정’ 서약을 받아냈다.

언개연은 16대 국회 개회 이후 언론현상 전반에 대한 집중적인 고민을 위해 언론발전위원 회(이하 언발위) 구성을 제안했다. 언발위는 미국의 1940년대에 설치되어 활동했던 허친스 (Hutchins)위원회나 1970년대 영국의 캘커트(Calcutt)위원회와 유사한 방식으로 국회 내에 설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비정상적으로 왜곡돼 있는 언론계 전반의 문제점을 바로 잡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자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국회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화답해 여야 의원 31명이 공동으로 7월 13일 제213회 임시국회 에 언론발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발의안이 제시된 뒤 국회 내에서는 사실 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 그 실현가능성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결의안에서 언발위는 “참다운 언론자유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언 론환경을 만들고, 언론사 소유구조 문제, 왜곡된 신문시장, 정치권력과 언론의 비정상적 관 계 등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와 개선방안의 모색을 목표”로 활동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언론발전위원회는 언론계,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국회의원 등 15 인으로 구성하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 실무기구를 두도록 했다. 위원 회의 성격은 국회 결의에 의한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하고, 활동기간은 2000년 10월 1일부터 2년간이다.

언발위는 정기간행물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신문사의 투명경영 및 소유에 관련된 법규, 언론자유와 기타 법익과의 충돌시 고려해야 할 법규, 언론발전과 관련된 법 규 등 법과 제도에 관해 논의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언론발전위원회에서 합의된 법안은 법적 절차를 거쳐 제정 또는 개정함으로써 청사진에 입각한 언론발전방안을 모색하 기로 하고 있다.

좀더 민주적이고 공익적일 수 없을까?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권력의 도구다. 언론의 이러한 성격은 ‘권언유착’이나 ‘권언복합 체’ 같은 한국언론을 규정하는 다양한 수식어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언론은 반민주적 정치권력의 도구로서 시민들에 대해 독재권력을 합리화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며, 지역감정을 생산·재생산해 왔다. 이러한 성격은 문민개혁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고 있는 지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편 언론은 권력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권력기구이기도 하다. 언론매체 자체 는 이미 사회의 중요한 권력기관이다. 언론매체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3부를 감시·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제4부로 지칭된다. 언론매체는 당연히 확고한 독립성과 자율성 을 가지고 3부를 감시·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은 3부를 견제하기보다 는 이와 결합하여 그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고, 그들과 더불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언론매체는 새로운 권력을 창출해내는 힘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으 로 알려지고 있다.

막강한 언론은 또한 언론자본의 돈벌이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언론매체 자체가 수익성 높은 사업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신문이나 방송의 매출액 대비 수익률은 다양한 산업분야를 통틀어 최고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앞으 로의 성장가능성도 매우 높다. 한편 언론매체의 운영이 가져다주는 부수적 효과도 매우 크 게 평가되고 있다. 언론매체는 모 기업의 약점을 감추고 위기를 극복하는 방패노릇을 할 뿐 만 아니라 모 기업의 사업확장을 위한 교두보나 전진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언론은 권력집단의 필요를 위해서 봉사하는 정치적 도구이기도 하고, 스스로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권력기구이기도 하다. 또한 언론은 자본의 돈벌이를 위한 기구요, 다른 사업체들의 수익성 증대와 안정적 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갖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언 론재벌과 재벌언론이 기승을 부리고, 언론과 정치권력의 유착이나 언론의 지나친 상업성이 완화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정치권력집단의 지배를 위한 도구로 작동하거나 언론자본가의 사적 이익실현을 위 한 도구로 존재하는 언론에 대한 개혁의 요구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언론의 기본적 존재의 의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공익의 실현에 있다. 사람들은 사회의 보편적 이익 즉 공익에 충분 히 이바지하지 못하는 언론에 대해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한다. 언론이 비록 사기업이거나 국영기업이라 할지라도 언론의 공익성에 대한 요구는 누그러지지 않는다.

언론매체는 좀더 민주적이고, 공익적인 것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과 정치권력 양자로부터 독립하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시민들의 공적 이익에 더욱 잘 봉사하는 체제로 개혁되어야 한다. 세계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걸맞고 국제사회에서 한 국이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는 최소한의 언론양식을 좀더 적극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이 작업은 언론개혁에 대한 정책적 접근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

류한호 |광주대 언론정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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