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3월 2001-03-01   550

가난하지만 6월항쟁을 꿈꾸는 사람들

탄손누트 공항 활주로에 서 있는 프놈펜행 베트남에어라인 항공기의 덩치가 무척 작아 보인다. 70인승쯤 될까? 김포에서 탄손누트까지 타고 온 항공기의 4분의 1도 안 될 듯하다.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앙코르 지역을 중심으로 태국은 물론 베트남 남부와 미얀마 일부까지 영유했던 역사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캄보디아는 작은 나라이다. 면적도 그렇거니와 인구가 베트남의 8분의 1, 태국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1953년 시아누크 국왕은 프랑스로부터 캄보디아의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과 공산블록 사이의 중립정책을 취한다. 그러나 국정은 점차 혼란에 빠지고 1970년 군부 쿠데타로 캄보디아는 공화국이 된다. 그리고 1975년 무력에 의해 크메르 루즈 정권이 들어서 1979년 베트남 군에 의해 밀려날 때까지 4년 간 킬링필드의 대참변이 벌어졌다. 1989년 베트남 군 철수에 뒤이은 1990년 정파간 합의를 확인하고, 유엔 캄보디아 과도기구(UNTAC)라는 임시기구를 설립, 정부수립과정을 주관할 것을 결정한 1991년, 캄보디아를 포함한 19개 국 사이의 파리평화협정, 1993년 자유선거에 의한 정부 수립과 헌법제정으로 캄보디아는 일단 새로운 궤도에 들어선다. 선거결과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인 라나리드 왕자의 민족연합전선과 베트남 점령시 집권했던 훈센의 인민당 연립정권이 탄생한다. 그러나 실제로 연립정권은 분립화하였고, 결국 1997년 양 세력의 무력충돌로 훈센측이 권력을 거의 독점했다. 1998년에 치러진 두 번째 선거에서 인민당은 65석을 얻어 총 122석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해 재집권에 성공하고 제2당이 된 민족연합전선과 다시 연립정권을 수립했다. 비교적 공정한 선거였다는 게 국제사회의 대체적 평가다.

포첸통 공항은 새로 지은 듯 산뜻하다. 지난 국회에서 외무위원장직을 맡았다던 옴 라사디. 그는 한국에서 날아간 일행을 데리러 나왔다. 공항은 마중 나온 차량들 때문인지 몹시 붐볐고 도로에도 차량과 오토바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중고로 들여온 것들이라 했고 시내는 가로등이 별로 없어 어둡고 건물들도 초라하다.

캄보디아법률센터 사무실은 주택가에 위치한 목조건물이다. 예닐곱이 나와 환영하는 이 단체의 회장은 현직 대법관이다. 시민운동단체의 대표가 현직 대법관이라… 왠지 낯설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올바른 법지식을 전파하고 인권침해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창립된 단체이기에 납득할 만하기도.

캄보디아인권개발협회(ADHOC) 건물은 철문에다 높은 담에 철조망이 둘러처져 있어 주위 건물들과 대조적이었다. 과거 군이나 경찰에서 사용하던 건물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 입구에는 방문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듯 의자에 앉아 있다. 이곳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툰 사라이 회장의 집무실엔 PC, 팩시밀리 등 사무기기가 잘 갖춰져 있고, 벽에는 일본이나 네덜란드 등의 인권단체로부터 받은 상패가 걸려 있다. 인권관련 국제회의 참석차 태국에 갔다 지난주에 돌아왔다는 그는 최근 캄보디아의 인권상황에 대해 묻자 “표면적으로는 상황이 많이 개선된 것 같아 보입니다만 아직도 뇌물에 의해 재판결과가 좌우되는 등 부패가 심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인권연구소’ 카시 누 씨와 ‘주 캄보디아 캐나다협력사무소’ 번렁 멘 소장의 비판은 더 신랄했다.

“메콩강이라는 수력자원의 보고가 있지만 전력난에 시달리고, 드넓은 평야를 가지고도 농업은 후진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권력층 부패로 국가운영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죠.”

야당이나 언론에 대해서도 별로 기대를 갖지 않았다.

“단지 부패할 기회를 좀 적게 가졌을 뿐, 야당도 언론도 마찬가지예요. 캄보디아엔 신문사도 적지 않고 훈센 총리 비난기사도 빈번하게 나오긴 합니다만 보도 내용은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책임하고 신빙성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런 만큼 우리나라의 6월항쟁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최근 벌어진 민주화운동 전개에 관심이 많다. 연금상태에 있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국제사회에 대한 정보로부터 차단되고 있는 것이 큰일입니다. 나중에 국정을 맡았을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화제는 크메르 루즈 재판으로 이어졌다. 1993년 정부수립 후 크메르 루즈는 점차 와해되었고, 1998년 폴 포트도 밀림지역에서 사망했는데 아직 크메르 루즈 시절의 인권침해와 관련해 정식으로 재판받고 단죄된 사람이 없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커서 아마 재판을 하긴 하겠지요. 하지만 현 집권층도 깊이 관련되어 있어 쉽지 않을 겁니다.”

귀국 후 알아보니 캄보디아 국내 재판관 외에도 유엔에서 지명하는 재판관을 재판부에 포함시키고 그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이 캄보디아 하원과 상원을 통과했다고 했다.

프놈펜의 법률경제대학 학생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남북문제부터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에 대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한국이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뭐죠?” “어떻게 해서 1987년 시민혁명이 가능했습니까?”

이에 대해 답변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다음 일정으로 시아누크 국왕의 동생 노로돔 시리부드 왕자는 한국 방문객을 식사에 초대했다. 캄보디아의 헌법은 국왕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고 하여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으나 아직도 사면권 등은 국왕에게 속한다. 왕족들의 정치 활동도 적극적이다. 라나리드 왕자가 제2당인 민족연합전선의 총재이자 국회의장이며, 노로돔 왕자는 1993년 외무장관으로 활동했다. 노로돔 왕자의 여동생도 현직 국회의원이다. 노로돔 왕자는 외무장관 재임중 훈센 총리에 의해 국외추방 당했는데 최근 귀국해 캄보디아평화협력연구소(CICP)를 설립, 의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가 제시한 경제발전책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컴퓨터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앙코르가 있고 커다란 농업 잠재력을 지녔으며 풍부한 보석광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교우위가 있는 이 세 분야에 진력할 것입니다.”

시앰립 거리는 프놈펜보다는 작지만 활기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가 있다 한다. 앙코르 덕일 것이다. 앙코르란 ‘성스런 도시’란 뜻으로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크메르 왕국의 수도였던 시앰립 북쪽 200km2에 달하는 지역을 지칭한다. 당시 왕궁 등 목조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오늘날은 석조 건축물만 남아 있는데 대부분이 불교 또는 힌두교 사원으로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앙코르 와트이다. 시앰립 사람들의 활기는 바로 앙코르에서 일행을 안내했던 늠 코우치 씨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30대 초반인 그는 유적 가이드일 뿐만 아니라 중등학교 영어교사로 방과후에는 빈 학교 교실을 빌려 영어학원도 운영하고 있었다.

시앰립 교도소는 시내에 있다 2년 전 시 외곽으로 옮겼단다. 텅 빈 벌판에 교도소 건물들이 몇 동 있고, 입구에는 면회객이나 교도소 직원 그리고 재소자대상 상점 두어 곳이 보였다. 교도소 보안책임자인 듯한 사람은 직원들에게 소내를 안내하도록 지시했다. 재소자들은 각 사방에 10여 명씩 수용돼 있었고 독방은 없었다. 외벽이 3m 정도로 높긴 했으나 사동 밖에서 작업하는 수십 명의 재소자를 계호하는 직원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허술하게 느껴지는 보안이다. 안내하는 직원은 이것저것 설명하다 앞으로 이 교도소는 교도관 대신 민간인이 운영하게 된다고 말한다. 미국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교도소 민영화를 의미하는 듯 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자전거에 대해 주차료를 징수할 만큼 시장 메커니즘을 적극 도입하는 면이 있는 나라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교도소를 나오며 우연히 뒤돌아보니 늠 코우치 씨가 소내를 안내했던 직원들에게 돈을 건네주고 있었다. 이 나라 공무원들의 만연한 부패가 저 정도에 그친다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앙코르에서도 유적지마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저마다 엽서, 앙코르 안내책자, 목각 공예품 등을 내밀며 “원 달러” “투 달러” 하며 흥정하는 것이 프놈펜의 거리 아이들과 달랐다. 비록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들이 마냥 측은해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표정이 어둡지 않았기 때문에.

이정선 |서울대 법과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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