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7월 2004-07-01   868

시민단체 회원 만드는 건 어머니의 몫

강원도 춘천 인미란, 진초록 모녀

6월의 짙은 녹음과 잔잔한 호수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참여연대를 통해 모녀의 정이 더욱 돈독해진 인미란 씨와 진초록 양을 만났다. 어머니 인미란 씨가 참여연대 회원이 된 건 1998년이다. 하지만 3년 전인 2002년부터는 회원이 딸 진초록으로 바뀌었다. 전 회원인 어머니와 현 회원인 딸에게 참여연대 회원이 된 계기와 회원 명의가 바뀐 사연을 들어보았다.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귀한 선물, 참여연대 회원가입

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진보적인 종교 기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인미란 씨는 자기 자신보다 이웃과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종교 관련 시민단체들을 직간접으로 접할 수 있었다. 딸이 유치원을 진학하고부터는 집안일에만 전념했지만,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시민사회단체에 늘 감사함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가 참여연대 회원이 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참여연대가 하는 일이 좋았고, 이런 단체라면 오랫동안 후원하며 지지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그가 회원에 가입했을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이 하나 있다. 소중한 외동딸에게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기쁨과 참여하는 보람을 맛보게 하고 싶다는 바람, 그것이었다.

“처음부터 딸을 염두에 두고 회원에 가입했어요. 하나뿐인 딸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었는데, 그건 물질이 아니라고 믿으니까요. 사회를 올바로 살아가도록 하는 가치관과 사회를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게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기 위해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방법일 거라고 봤어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참여연대의 활동을 딸이 보고 느끼길 바랬어요. 느끼고 배운 대로 자신의 삶도 그렇게 가꿔 나갔으면 했고요.”

인미란 씨가 딸 초록 양에게 참여연대를 접하도록 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냥 신문처럼 집안에 『참여사회』를 놓아두곤 했다. 어린 딸은 호기심에 책을 들춰보기도 하고 뭐냐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딸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무렵부터 사회문제에 대한 초록 양의 질문이 부쩍 늘었다. 질문을 해오는 딸에게 엄마는 『참여사회』를 건네 주며 스스로 답을 찾아볼 것을 주문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관심의 폭이 넓어지는 딸을 보며 엄마는 참여연대 회원가입을 권했다.

“엄마가 보기엔 이제 네가 회원이 되면 어떨까 하는데? 시민단체는 엄마처럼 나이든 사람보다는 젊은이들이 가입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단 시민단체는 회원의 지속적인 활동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으니까 그만큼 책임과 의무도 필요할 거야. 그러니까 회비도 네가 내야돼. 할 수 있지?”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초록은 어머니의 제안이 있기 전부터 참여연대 회원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토론을 좋아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길 좋아했던 초록은 학교에서 접하는 내용만으론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집에서 우연히 손에 든 『참여사회』를 통해 초록은 다양한 문제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 참여연대에 대한 호감 또한 자연스레 커 갔다.

“또래 애들이랑 토론하다 보면 참여연대를 통해 접하는 것들이 많은 도움이 돼요. 학교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내용을 소개해 주고, 사회문제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참여연대 회원이 되지 않겠냐고 엄마가 제의했을 때 참 좋았어요. 선뜻 그러겠다고 했죠. 제 용돈이 4만 원인데 거기서 매달 1만 원씩 내고 있어요. 아직은 고등학생이라 직접 활동은 못하지만 『참여사회』를 읽는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참여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느끼는 보람을 딸에게 주고 싶었던 어머니와 어머니의 바람 이상으로 성장해 가는 딸. 한국사회에서 흔치 않은 방식의 모녀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연대가 작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그저 한 것도 없이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건강한 딸을 빚어내는 어머니의 역할

새벽 두세 시까지 밤늦도록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 받는 사이, 단점까지 대놓고 지적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친구 같은 모녀지간이지만, 초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진로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했다. 자식 잘 되기 바라는 부모 마음과 현실보다는 꿈과 이상을 먼저 생각하는 여고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비이기도 하다. 부모 욕심 때문에 고민도 많았다는 인미란 씨. 결국 딸이 원하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도록 허락하면서 갈등도 풀렸다.

“한때는 아이가 법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법고시에 통과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어렵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해 놓고 끝까지 약속을 지킨 사람이 거의 없는 걸 보면서, 초록이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초록이를 위해서도 최선이라고 생각을 바꿨어요.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꼭 하고 싶고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길 바래요.”

초록이도 판사가 되고 싶었던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단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였다. 초록이가 꿈을 바꾼 건 양로원 할머니들을 만나고부터였다. 4년 전부터 초록이는 틈틈이 춘천시립양로원의 무의탁 노인들의 말벗이 되고 식사수발을 돕는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한 번은 생전엔 병든 어머니를 방치하던 아들이 어머니가 돌아가시니까 나타나서는 어머니 입던 밍크코트를 돌려달라고 소리치는 걸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적도 있어요. ‘복지’가 ‘법’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사회복지 그 중에서도 노인복지를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할머니들이 좀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취업이나 성공을 목표로 한 꿈을 갖고 싶지는 않다고 야무지게 말하는 초록에게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선택해 가는 풋풋함이 느껴졌다. 초록의 이런 꿈이 자라고 자라나 외롭고 소외된 노인들에게, 그리고 초록이 스스로에게 행복한 삶으로 열매 맺을 수 있길 바랬다.

인미란 씨는 시민단체의 미래회원을 만드는 건 부모의 몫이라고 했다. 아이에게 한 달에 1만 원짜리 피자 한 판 안 사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도 했다. 피자 한 판을 버리면 아이와 시민단체가 동시에 튼튼해진다고 말이다. 그에게서 자기 가족을 넘어 사회 전체를 생각할 줄 아는 시민다운 시민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인미란, 진초록 모녀와의 만남은 한 인간에게 가장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치는 가족, 그 중에서도 어머니란 존재와 그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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