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7월 2004-07-01   1023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국민연금

국민연금의 본 취지 인식하고 합리적 대안 모색 필요

최근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은데 그것은 연금에 대한 오해와 불신, 그리고 그러한 불신의 증폭에 기여한 외적 조건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우선 오해가 있는 부분부터 살펴보기 위해 이른 바 ‘국민연금의 비밀’이라는 문건에서 말하는 ‘비밀’부터 살펴보자.

‘비밀’의 오해

이 ‘비밀’문건에 나온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과 사실일 수 있는 것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어서 오해를 풀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설명을 장황하게 하게끔 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 장황한 설명은 할 수 없으므로 다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려 한다.

‘비밀’ 중 연금에 가입해 있던 남편이 사망한 경우 부인의 유족연금은 소득이 전혀 없어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노령연금은 소득이 전혀 없어야 받는다는 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다만, 조기노령연금의 경우는 소득이 있으면 연금지급이 중단되는데, 조기노령연금은 정식연금보다 일찍 퇴직하여 받는 것이므로 수급자가 재취직했다면 연금지급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민간보험으로부터 장애연금을 받으면 국민연금의 장애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다만 교통사고 등으로 장애를 입어 손해배상을 받은 경우 그 금액만큼 장애연금을 조정하는 제도가 있다.

다음으로 사실이지만 오해가 있는 것으로는, 첫째 연봉 6천만 원 받는 사람과 연봉 10억 원 받는 사람의 보험료에 차이가 없다는 것, 둘째 맞벌이로 연금에 각기 가입한 부부 중 한 쪽이 사망한 경우 유족연금을 못 받는다는 것, 셋째 연금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체납처분한다는 것 등이다.

첫째의 것은 보험료 부과와 급여계산시 사용하는 소득등급에 상한을 설정하기 때문인데 현재의 소득등급체계는 1995년에 설정된 이후 한 번도 조정되지 않아 실제의 소득분포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면이 있으나 만일 보험료부과에 상한을 철폐하면 급여지급시에도 상한을 철폐해야 하는 문제가 따른다. 이 문제는 단지 불만을 터뜨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현재 연금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급여제한에 불만을 말하는 것처럼 고소득자에게 급여지급시 상한을 두게 되면 이들 역시 불만을 가질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문제이다.

둘째의 유족연금 문제는 병급조정에 해당하는 것인데, 현재 연금에서의 병급조정은 필요한 모든 경우를 다 처리할 수 있도록 완비되어 있지 않으며 또 그 방식도 아직은 투박한 면이 있다. 이 부분은 향후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의 체납처분은 강제가입 규정상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지나친 면도 있다. 그러나 체납처분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고소득자의 가입을 강제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자는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 따라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체납을 해서 가입자격을 상실하려 할 것이므로 체납처분을 해서 계속 제도 내에 남아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금을 세금이라고 하는 비판은 그것이 징수의 강제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세금처럼 걷어서 어디다 쓰는지도 모르게 써 버린다는 의미라면 틀린 것이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

‘비밀’에서 말하는 비밀과 그에 대한 안티즌들의 동조를 보면서 그 이면에 일관되게 흐르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민간적금의 논리이다. 우리 국민들은 국민연금을 ‘사회 보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적금’ 내지 ‘민간보험’이라고 생각한다. 연금을 적금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것은 나의 사유재산이지 다른 사람과 나누는 공유재산이 아니다. 따라서 장애를 입어 민간보험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은 경우 국민연금이 장애연금의 지급을 조정하는 것이나 맞벌이로 각기 연금수급권을 획득한 배우자의 한 쪽이 사망한 경우 유족연금과 자신의 연금 중 한 가지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 또 소득이 있으면 연금액이 다소 조정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분하기까지 한 일이다. 연금을 적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급여조정은 사유재산권의 침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또 나의 사유재산이고 내가 사유재산권을 형성하는 것인데 그에 대해 납부금을 내지 않았다고 체납처분하는 것도 이해될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한에서는 기금고갈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일이다.

1990년대 중반 시민단체가 국민연금을 강제예탁하여 끌어다 쓰는 김영삼 정부를 비판하면서 그 논거의 하나로 국민연금은 국민의 재산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우리 모두의 공유재산이라고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국민들 각자의 사유재산이라고 알아들은 것이다(이는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단체는 연금기금을 우리 모두의 공동노력과 민주적 통제로 관리해야 한다고 했던 것인데 국민들은 공동노력은 쏙 빼고 지금까지 낸 돈을 다 날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불만과 불신을 키워갔다. 그처럼 연금을 내가 내 돈 내서 만든 나의 적금이라고 생각하는 한 연금급여를 내가 얼마의 보험료를 냈으니 나중에 내가 얼마를 받을까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연금지급액은 소득에 기초하여 계산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연금과 같은 공적체계에서는 미래세대가 계속 등장하여 공유재산의 형성에 기여하므로 국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연금지급은 보장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래세대 역시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적금을 형성하는 것인데 왜 그 미래세대가 내가 받을 연금을 부담해야 하는지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설사 어느 정도 납득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곧바로 미래세대의 부담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경우 미래세대는 하나의 집합적 세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좁은 의미의 내 주변에 있는 미래세대로만 그려진다. 따라서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연금은 하루빨리 폐지해야 하는 것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하는 자체는 타당하지만, 그것은 집합적 존재로서의 미래세대의 부담에 대한 사회적 걱정이어야지 사유재산인 적금을 나처럼 불입해야 하는 미래세대라는 개념에 근거한 걱정이어서는 곤란하다. 연금을 적금이라고 생각하는 한 미래세대와의 세대간 재분배라는 개념은 자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최근의 사태로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다는 사실이 제법 알려지자 이번에는 고소득자의 보험료 납부에 상한을 두고 있는데 무슨 재분배냐면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는 고소득자의 연금지급에 상한을 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소득자의 급여지급에 상한을 두는 문제는 장기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지금 국민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연금을 공유재산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전히 연금을 적금이요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연장선상에서 그러는 것이다. 나의 적금보다 고소득자의 적금은 형성하기도 쉽고 나중에 받을 때에도 절대액으로는 훨씬 더 많이 받으므로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지 공유재산 형성에 따르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진지하게 고려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정부, 국민 공동노력으로 사회적 합의 형성해야

우리 국민들은 아직 ‘사회’복지에 대한 합의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 국민들은 사회복지라고 하면 ‘사회’는 쏙 빼고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게 살아가는 장애인이나 노인, 고아에 대한 ‘복지’만을 떠 올린다(게다가 정부에서도 가정이 없어진 고아를 소년소녀가정이라는 말도 안되는 용어로 부르기까지 한다).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도 어려움에 처하면 곧잘 정부를 탓하지만 막상 정부가 ‘사회적’ 노력을 결집하려 하면 그에 대해서는 바닥모를 깊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아직 우리 사회는 ‘피난민 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피난민에게는 내일도 사회도 없다. 오로지 내 주변에서 나와 도움을 함께 나눌 지인들만 있을 뿐이다. 피난민들은 오늘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그 일한 대가를 눈물겨운 절약을 통해 아끼고 아껴서 적금에 붓는다. 그리고 그 적금을 찾아서 살림에 보태고 그럼으로써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위안과 함께 삶의 보람을 느낀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만든 재화를 아침부터 밤까지 사용하며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그런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내는 모순에 대항하기 위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공유재산을 형성한다는 생각은 피난민에게는 애초에 없다. 한국 사회를 이처럼 피난민 사회로 만든 주범은 바로 다름 아닌 사회적 노력의 결집에 게을렀던 정부, 국가이다. 한국정부는 의료나 주택, 교육, 노후대책 등 이 모든 것을 국민들 각자의 책임에 맡겨왔다. 정부가 사회적 노력을 결집했던 것은 거의 대부분 국가 자체가 아니라 정권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 일에서였다. 게다가 경제위기로 피난민들의 노력조차 앞날을 보장할 수 없는 극심한 빈부격차의 사회가 돼버렸다. 이럴수록 공동노력은 더 필요한 것인데 국가를 믿지 못하는 피난민들은 공동노력에 나서기를 꺼려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의 오해 운운하면서 연금사태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물론 오해의 불식과 연금제도의 미세조정은 필요하며 반드시 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책임있는 당국자가 과거 한국의 국가가 국민들을 피난민으로 방치해 온 데 대해 진지하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공유재산으로서의 연금의 의미를 알리고 그러한 공유재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형성에 나서야 한다. 그럴 때만이 ‘사회’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남찬섭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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