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7월 2004-07-01   402

과학의 모든 궁금증이 풀린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를 방문한 지도 얼추 2년이 지났다. 비가 오는 11월이었고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다시 찾아가라고 하면 못 찾을 것 같다. 그곳에서 물매화를 처음 봤다.

층층이 쌓아 올린 검은색 현무암도 있었다. 씨네21의 김소희 편집장은 이 현무암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던 모양이다. 최근의 글에서 우연히 동행하게 된 여행길이 삼달리였고 폐교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진작가 김영갑. 20년 전 우연히 들렀던 제주도가 마음에 들어 그곳에 들어와 살고있고 최근 폐교를 개조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연 사람이다. 갤러리개조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자 문화관광부에서 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김영갑은 갤러리가 살아남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것은 갤러리의 운명이라며 일축했다고 한다.

2년 전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갤러리 작업이 한창일 때였는데 사람은 없고 몹시 큰 개 한 마리가 부엌에 누워있었던 기억이 난다. 긴 나무 벤치 위에는 유용주 시인의 산문집이 놓여 있었다. 그 책의 뒷표지에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는 구절이 있었다. 책의 주인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 의해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루게릭병은, 미국 뉴욕 양키즈의 야구선수 루 게릭이 이 병을 앓다가 서른 여덟의 나이로 죽은 뒤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진작가 김영갑이 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 병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궁금했다. 의학용어로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이라고 하는데 척수에 있는 운동신경섬유와 세포의 진행성 변성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우주 여행에 대한 프로젝트까지 나오고 있는 이 마당에 여기 현실로 존재하는 병의 원인조차 알 수 없다니 인간의 지적 한계가 새삼스럽다. 빌 브라이슨에 따르면 인류가 우리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에 대해서조차 알고 있는 것은 10%가 채 안된다고 하는데, 46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에서 상황이 그렇다면 아는 것이 너무 미미하다고 탓할 계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에 문외한이었던 빌 브라이슨이 3년에 걸쳐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인터뷰해서 쓴 글이다. 그는 서문에서 어느날 불현듯 우리가 살고 있는 유일한 행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고, 도대체 지구가 얼마나 무겁고, 바위가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지구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충동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어떻게 과학자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그야말로 우리가 궁금해하는 과학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체 6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 마지막 장은 499쪽에서 끝난다. 3년만에 세상에 나온 책이니 만큼 그 정도는 감수해 줄 법하다. 요는 시간을 들여 끝까지 읽을 만큼 내용적 가치가 있느냐일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라면 이 책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각 장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거대한 우주의 탄생부터 미세한 박테리아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방대한 영역이지만 놀랍도록 쉽고 재미있다. 시대별 과학사적으로 논쟁이 되었던 주제와 그것에 얽힌 사회적 배경뿐 아니라 고고학적 인류학적 발전사도 함께 아우르고 있어서 책을 덮고 나면 마치 지구 전체를 겉과 안으로 속속들이 여행하고 난 듯한 느낌이 든다.

제1부는 우주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 무에서 시작됐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짧고 광대한 순간에 단 한번의 격동에 의해 팽창하여 오늘날과 같은 광대한 우주에 이르렀다. 이것은 대략 137억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약 46억 년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지름이 약 240억 킬로미터 정도인 거대한 기체와 먼지 덩어리의 소용돌이가 뭉쳐져 태양이 됐고 이어서 지구가 만들어졌다. 최초의 지구는 그 환경이 지독하게 혹독하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화합물이 스스로 꿈틀거리고 뭉쳐져 생명이 탄생하고 오늘의 우리에 이르렀다. 오늘의 생명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위험이 있었는지는 말로 다할 수 없다. 빌 브라이슨의 말대로 지금 우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인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2장은 지구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이상한 천재 뉴턴에서부터 등고선을 발견한 허턴,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물을 만들고 중력을 측정하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던 캐번디시, 지질학자 라이엘과 루드윅, 켈빈 등등의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지구의 비밀에 접근한다.

제3부는 사물의 속성을 밝히려는 시도가 어떻게 화학을 발전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또 지구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연대측정법과, 오늘날 지구의 대륙이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대한 판구조론 등 한편으로는 생소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위험한 행성이라는 제하의 제4부는 지구 내부에서 언젠가 분출될 화산과 지진의 위험에서 먼 우주로부터 온 소행성과의 충돌의 위험에 이르기까지 지구가 노정하고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 다음 5부에서 다루는 것이 우리 생명의 기원과 신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다른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40억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의 선조가 끊임없이 멸종의 위기를 겨우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게 됐다는 대목에 이르면 우리 존재가 결과적으로 요행의 결과라는 사실을 수긍해야만 한다.

마지막 6부는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지구의 기후와 인류사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 의해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생물 멸종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인간이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이고 그것이 순전히 무한히 많은 요행에 의해서일 뿐이라면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빌 브라이슨의 표현대로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대해 이토록 명쾌하고 재미있게 서술한 책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책을 선정하는 출판사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