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7월 2016-06-29   1443

[환경] 전문가란 무엇인가?

 

전문가란 무엇인가?

 

 

글. 장성익 환경 저술가
녹색 잡지 <환경과생명>, <녹색평론> 등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지금은 독립적인 전업 저술가로 일한다. 환경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책 집필, 출판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문가의 현주소
생명과 평화가 대규모로 파괴되는 재난을 무시로 겪는 게 요즘 우리네 일상이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4대강 사업이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도 그리 다르지 않다. 미세먼지 사태도 심각하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흔히 국가와 기업을 목청 높여 비판하곤 한다. 국민 안전 보호라는 가장 원초적인 임무를 내팽개친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 이윤 극대화만을 목표로 삼는 기업의 탐욕과 부도덕, 이런 ‘나쁜’ 국가와 기업의 범죄적 결탁 등이 그런 비판의 주요 세목을 이룬다. 두루 타당한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을 할 때 간과하거나 가볍게 다루는 사안이 가끔 있는 듯하다. 전문가의 책임 문제가 그것이다. 오늘날 정부 정책을 비롯해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부분 일들을 결정하는 주체는 권력 및 정치 엘리트와 관료 집단, 자본가들만이 아니다. 학계, 언론계, 법조계 등에 포진한 각 분야 전문가들도 큰 구실을 한다. 이들 모두는 한통속이 되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기득권 집단을 이룬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특권과 이익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막강한 힘을 휘두른다. 전문가에 대한 지나친 맹신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전문가주의’ 추세에 힘입어 이런 흐름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청부 과학’이란 말이 상징하듯이 ‘권력과 자본의 시녀’로 전락한 전문가가 수두룩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하여 새삼 묻게 된다. 전문가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대체로 전문가란 특정 분야의 지식, 경험, 기술 등을 풍부하게 갖춘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요즘 많은 전문가는 자기 전공 분야를 깊이 알긴 하지만 그 폭은 좁다. 그래서 ‘전체 틀’과 ‘큰 흐름’을 읽어낼 줄 아는 안목이나 식견은 모자랄 때가 많다. 전문가는 또한 자기 분야의 지배적인 관점이나 논리 같은 것에 길들기 쉽다. 그래서 그것과는 다른 가능성은 잘 모르거나 소홀히 여길 위험성이 크다. 수많은 분야의 다양한 요인과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첨단 과학기술 사회에서 이것은 중대한 결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E. 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현대 산업사회의 전문가에 대해 이런 신랄한 논평을 남겼다. “전문가란 점점 덜 중요한 것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쌓느라 결국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에 대해서만 잘 알게 되는 사람들이다.”

 

삽화-환경

                                                   ⓒatopy

 

‘겸손의 지혜’를 위하여
이제 ‘다른’ 전문가가 필요하다. 특히 요즘은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 빚어내는 갖가지 위기와 위험과 모순과 불확실성이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전문가에게도 이런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능력이 요청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쌓은 지식과 기술, 또는 자기가 하는 일이 인간, 자연,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역사 속에서 어떤 맥락에 놓이는지를 분별할 줄 능력이다. 특정 분야의 좁은 울타리 안에 기계적으로 갇히는 건 어리석고 위험하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그물망으로 얽혀 있는 게 ‘관계’와 ‘맥락’의 근본 속성이다. 이것을 볼 줄 아는 넓고 높은 시야가 필요하다. 인간과 삶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 사회적 책임감과 역사의식, 자연과 생명과 미래세대에 대한 감수성 등과 같은 소중한 덕목들 또한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소중한 능력으로 연결된다. 자신이 지닌 지식과 기술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 한계를 알고 수긍해야 자기가 하는 일에 어떤 실수나 오류가 저질러질지, 그리고 어떤 위험이나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지를 내다볼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래야 그것들을 피해갈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자. 어떤 한계가 있음을 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좋지 않다는 걸 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그래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지 않을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경제성장을 더 밀어붙일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 이제 그만 멈춰 세우는 능력. 핵 발전을 더 확대하고 핵무기를 더 개발할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 그만두고 폐기하는 능력. 언젠간 인간복제마저도 가능해질지 모르지만 생명공학의 무한 폭주에 우리 스스로 제동을 거는 능력. 오만과 탐욕에 눈이 멀어 끝도 없이 자멸적인 물신의 바벨탑을 쌓아올리고 있는 오늘의 현대문명을 돌아볼 때, 바로 이런 종류의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청하는 ‘겸손의 지혜’가 아닐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리라. 이에 견주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스스로 절제하고 다스려 그 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는 이제껏 능력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을 이른바 진보나 발전으로 여겨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 자기가 가진 능력을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옳은 일, 아름다운 일, 선한 일에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그러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러하다. 우리 시대에 전문가가 해야 할 일, 전문가가 감당해야 할 몫은 이런 문제에까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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