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2월 2010-12-01   1644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권력 앞에 우리의 자유와 저항선은 있는가?

“권력 앞에 우리의 자유와 저항선은 있는가?”

 

이재성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지금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전면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3년간 위기의 징후는 다층적으로 일어났다. 정치, 경제, 교육, 노동, 종교, 문화, 학술, 법조, 공무원 사회 등 전 영역에서 권력에 ‘저항’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권력은 철저한 ‘무시’로 일관했다. 권력이 전략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당근은 ‘친 서민’ ‘중도·실용’이었다. 그리고는 부자 감세, 미디어법, 방송 장악, 4대강 사업, 인권 경시, 노조 탄압, 시민단체 줄세우기, 무한경쟁 교육, 남북관계 경색, 세종시 수정, 민간인 불법사찰 등 그들만의 국정 의제를 밀어붙였다.

  민주주의는 박제화 되었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권력은 공영방송 장악과 미디어법을 강행했다. 검찰·국정원·국세청·감사원 등 국가권력기관은 표적수사·표적감사·민간사찰을 감행했다. 공공기관·시민단체·문화·교육·학계 등 각 분야에서 ‘밥줄’을 끊는 행태가 일상화되었다. 고용 불안정성과 노동시장 보호의 불평등으로 더욱 심각한 사회양극화가 이루어졌다. 사회적으로 결정된 이 모든 불행은 도전이고 권력남용의 문제이며 전투 준비 명령이다. 모든 것이 일방통행이었고, 소통은 없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희망하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가?

감시, 사찰… 트라우마의 부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적 가치를 지향한다. 이 단순한 가치가 우리를 2008년 촛불로 다시 거리의 저항선에 서게 한 이유다. 촛불의 공간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듯 했다. 보댕의 말처럼 “주권은 공화국의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권력”이 아니던가. 숨죽이고 있던 권력의 촉수가 리바이어던을 만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우리는 소박하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길, 국민이 주인이길, 국민들의 인정 하에서만 권력이 가능하길 희망했다. 희망이 사라진 것을 아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권력은 국가권력을 소수 집권세력의 사유물 정도로 생각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의 대원칙을 조롱하는 감시를 전면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감시’라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고 있다. 어쩌면 이 트라우마는 오래 전부터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종로에 가면 탑골 공원이 있다. 그 공원 내에는 부조로 만든 3·1운동 기념비가 있다. 그 부조에는 일본군과 순사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태도는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선조들을 감시하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에서 큰 대조를 이룬다. 어릴 때부터 그들의 감시와 처벌의 자연스러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을 밀고하는 앞잡이들을 내세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온갖 짓거리를 다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 말살을 위해 사용한 방법이 사찰査察이라는 것을.

  사찰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조사하여 살핌’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동향사찰, 즉 ‘특정집단이나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사상이나 행태를 조사하고 관찰하는 것’을 뜻하는 감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사찰은 특정 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감시와 처벌의 주요한 전술이다. 일본군과 일본순사가, 미군이, 이승만 정권이,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사찰에 기댄 것도 권력 유지 및 강화가 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국민의 삶은 고단했다. 고단했던 시대를 넘어 아주 짧은 민주주의로의 이행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트라우마는 깊어만 갔고, 그 깊이만큼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파놉티콘이 적용된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 내부(쿠바). 출처 I.Friman.

“권력이 커질수록 그 남용은 더 위험하다”

트라우마의 악몽은 지난 6월에 제기된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에서 재점화되었다. 악몽은 청와대가 제공한 대포폰에서 화룡정점을 찍는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청와대의 민간사찰을 조직적으로 은폐했으며, 여권 관계자까지 전방위로 사찰한 의혹이 불거졌고 심지어 서울시장을 비롯한 YTN 등 정·관·노동·언론계 전반을 사찰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국무총리실 ‘원충현 씨 수첩’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런 것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유사한 사태들이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8월 12일에도 있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민간인을 미행하고 촬영하는 등 대규모 불법사찰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고 사실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90년대의 대표적인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1990년 보안사령부(현재의 기무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사찰 대상 민간인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들고 탈영해 그 목록을 공개한 사건이다. 이 목록에는 당시 정계와 노동계, 종교계 등에 대한 사찰 기록이 담겨 있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초라한 권력의 종착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번 민간인 불법사찰은 과거와 남달랐다. 사찰에 사용된 통신 수단이 각종 범죄에 필수적으로 동원되고 있는 ‘대포폰’이라는 사실이다. 일명 ‘대포폰 게이트’이다. 과거가 합법을 가장한 사찰이었다면 지금은 태연하게 불법을 동원하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이 감시의 정도와 범위를 한층 강화하고 확장시킨 부정적 결과이다. 무엇보다도 대포폰 출처가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라는 것은 대포폰 출처가 사실상 청와대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현행법상 대포폰 사용은 불법이며, 이의 대여 또한 명백한 불법이다. 이 모두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기 위해 동원되는 범죄를 성립케 하는 직접적인 수단들이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명백한 범죄에 해당한다. 이 지점에서 청와대는 범죄의 소굴이 된다.

  청와대의 대포폰 사용은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어떤 목적에서건 간에 침해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고 준수해야할 책무가 있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은 민간인 불법사찰을 감행했다. 왜 그랬을까? 많은 사람들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린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닉슨의 권좌를 유지, 지속시키기 위한 정치적 음모였다. 우리는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켜보면서 모두를 감시하겠다는 권력의지 배후에 숨겨진 정치적 목적을 분명히 확인하면서 동시에 권력의 황혼을 느낀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권력이 커질수록 남용할 위험도 커지게 마련”이라고 갈파했다. 그래서 권력은 국민의 신체를 권력이 요구하는 엄격한 규율과 훈련에 길들이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권력은 미세한 정보의 그물망 속에서 국민의 일상의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하고 싶어 한다. 권력의 눈에 스스로를 의식과 생각을 가진 자유롭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행위자로 간주하는 국민들에게는 감시와 처벌이 필요하다. 권력은 그런 국민들의 신체를 감금하고 일상을 감시하고 처벌할 때 자신들의 권력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손에 무제한적으로 장악된 권력이 얼마나 자주 재앙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권력은 국민에게 유해한 권력이다. 그런 사람들은 정치적 권위를 소유하고 국가기관을 지배하지만, 다른 견해에 대한 관용이나 존중심이 없다. 만일 권력이 민주적 제도와 법의 지배에 의해 제약되지 않는다면, 권력은 자기 앞에 방해물이 있을 경우 무조건 화를 내면서 치워버리려고 한다. 루카누스의 경고에 따르면, “강한 자는 마땅히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는 것을 얻지 못하면 모든 것을 가지려 한다.” 권력은 자신의 적을 거리낌 없이 ‘위협’하고 을러대고 마침내 ‘제거’해 버린다. 그러므로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타인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박탈하고 타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을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일방적인 관계로 간주하거나, 권력자가 독점할 수 있는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푸코는 권력을 한 사회 안에서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작동하는 인간 지배의 ‘기술’과 ‘전략’으로 인식했다. 물론 그 권력의 전략적 목표는 인간의 ‘신체’였다. 푸코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권력의 작동방식이 시대마다 달랐다고 본다. 예를 들어 왕권시대의 권력은 신체에 대한 잔인한 폭력이나 고문과 같은 ‘공포의 행위’로 권력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었다면, 근대의 권력은 감옥의 제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감추면서 신체를 ‘부드럽게 통제하고 지배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벌의 이러한 개선이 ‘죄수에 대한 인간적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 때문이라기보다는 권력의 기술이 근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푸코는 보았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감시

인간에 대한 권력의 ‘부드러운’ 지배방식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산출하는 공리주의적 통제 방법이 아닌가. 프랑스 대혁명 직후인 18세기 말에 감금이라는 형벌제도가 도입되면서 근대적 감옥이 탄생한 것도 바로 그런 논리의 확장이다. 근대적 감옥의 대표적 형태는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Panopticon이다. 중앙의 감시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죄수를 감시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원형감옥으로서 감시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감옥 안에서의 감시자와 죄수들 사이의 관계는 감옥 바깥의 사회에서 권력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예컨대 학교에서 모든 동작과 활동이 온갖 시험 장치를 통해 세밀히 규제되고 기록됨으로써 학생은 엄격한 규율에 길들여지고 순응되듯이, 군대나 공장의 규율과 통제의 장치 속에서 군인과 노동자들이 예속화되는 현상도 바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규율을 내면화한 결과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를 ‘인간에 대한 인간의 감시’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불평등한 현실이 깊게 반영되어 있다. 이 점에서 감시는 무엇보다 권력의 요청이라 할 수 있다. 권력의 정치적 속성, 즉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사회는 감시를 필요로 하며, 모든 권력은 규율의 내면화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감시 그 자체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국민 통제는 근대적 감시의 실질적 출발점이다. 모든 근대사회는 감시사회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정보에 대한 통제’와 ‘사회적 관리’라는 관점에서 감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이것은 감시의 ‘행정적 기능’에 주목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행정적 기능이 정치적 지배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행정적 기능을 위한 감시제도를 언제나 정치적 지배의 도구로 활용한다. 하지만 이런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는 민주주의뿐이다. 민주주의는 그러한 권력의 행사에 책임이 따르도록 되어 있는 ‘계약’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권력분산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권력분산에서 현실화될 수 있다.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의 분립은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행정부나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 3권 분립이고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만일 입법부나 사법부가 자기 본연의 존재 목적인 입법 활동이나 사법 활동을 했다고 그것이 행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감시를 한다면 어떻게 3권 분립이 이루어질 것이며, 어떻게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누군가 나의 사적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몸을, 소유를 그리고 인격을 낱낱이 검열하고 통제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허용해야 하는가? 나의 몸, 소유 그리고 인격이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곳에서 주권을,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독재의 그림자, 감시의 내면화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어둡고 추운 독재시절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복원하여 밝은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감시의 내면화가 사찰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에서 촘촘하고 미세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배회하는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뿐이다.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 때 모든 국민은 기존의 법과 질서를 일종의 ‘자연법’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사회 질서 구축과 사회 안정을 외치는 권력 앞에 ‘순치’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존재를 그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감시하고자 하는 저 권력 앞에서 우리의 자유와 저항선은 있는가? 민주주의가 국민들이 스스로에 대해 권력을 갖는 것으로 간주된 실존이라면, 민주주의가 국가를 고사시키는 열린 과정, 국민에 내재적인 정치라고 한다면 우리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민주주의를 가장한 사이비민주주의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의 자유와 저항선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열린 과정이기에 어떤 확정적 규정도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재발명을 요구한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를 의식과 생각을 가진 자유롭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행위주체로 간주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저항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감시와 처벌이 불가능한 민주주의의 재구성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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