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0월 1999-10-01   889

총수체제의 온존과 예고된 실패

상성 신경영6년반을 평가한다

93년 2월부터 한국에 이건희신드롬이 불어닥쳤다. 87년 7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지만 사옥에 출근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고 조용한 5년을 보냈던 이 회장. 그는 이 시기를 전후해 돌변, 삼성의 변신과 개혁을 외치면서 전면에 등장했다. 2월 미국 LA회의(전자관련 사장단회의)를 기점으로 3월 도쿄(그룹사장단회의), 6월중순 독일 프랑크푸르트(사장 임원 미국 지사장회의), 영국 런던(유럽지사장 회의), 7월에는 도쿄·오사카·후쿠오카 등지로 임직원을 불러내 강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해외회의에서 그는 모두 1,800여 명의 임직원을 현지로 불러내 하루 평균 8시간, 어떤 때는 16시간을 넘어서는 강행군을 단행하며 그의 경영관을 전달했다. 당시 이 회장의 해외 특강시간은 모두 250시간에 달했고 그의 강연은 신문과 방송을 타고 그대로 안방에 전달됐다.

이 회장이 일본 도쿄회의에서 전 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시청하고 토론한 KBS의 <이것이 경쟁력이다>라는 프로그램은 대다수 그룹의 필수 프로그램이 됐으며,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들에게 스스로를 바꾸라며 쏟아낸 직격탄은 MBC를 통해 1시간 동안이나 안방에 그대로 전달,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각종 회의록은 현대, LG, 대우 등 국내 주요 경쟁그룹 간부들의 필독서가 됐으며, 그의 신경영을 다룬 책이 동시에 8권이 쏟아졌다.

재벌이라고 다 재벌이 아니다. 당시 삼성은 매출액 65조 원(95년 기준). 94년 매출액을 놓고 볼 때 30대 그룹 가운데 하위 21개 그룹 매출액 총계보다 많다. 삼성은 국내재벌 그룹의 지표이자 리더다. 재계 공동의 문제에서 움직여야 결과가 나오는 두 그룹중(나머진 현대) 한 축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망한 회사다”

고용인 수는 무려 18만 명. 그들의 부양가족과 삼성에 의지해 살아가는 협력업체, 또 그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그의 한 마디는 수백만 명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그의 발언은 삼성 내부 개혁을 말하면서도 사회개혁을 말하고 있었고, 이 회장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큰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그는 현 상황을 ‘등허리에서 진땀이 날 정도’의 위기로 규정하고 자기반성을 통해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자고 역설했다. 당시는 국내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호황으로 국내 경제도 최대호황을 구가하고 있던 시절. 이런 상황속에 국내 최대그룹이 스스로를 위기국면으로 규정한 것이다. 국내 최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이 저 정도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천하의 삼성이 위기라면 다른 그룹들의 상황은 위기+위기다. 자연히 삼성의 변신과 개혁은 다른 그룹들에게 경고로 다가왔다.

“삼성전자는 이미 망한 회사” “오는 2000년까지 남은 7년동안 죽기살기로 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나는 배수진을 쳤다. 1년간 회사문을 닫더라고 품질을 높이고 불량률을 개선하라” , “불량은 암이다. 질을 위해서라면 라인을 세워라”(질 경영)

“앞으로 국가경계는 없어지고 기업전체의 경쟁력만이 문제가 된다”(국제화), “2∼3등은 맨날 바쁘다. 1등하면, 선점하면 하나도 바쁠 것이 없다. 우리 여건에서 5∼10년내에 안 바꾸면 절대 일류 못 된다. 눈물을 흘리면서 외국에 나가야 될 형편이다.”(일류화) “명동은 복합화의 상징이다. 쇼핑도 하고 병원 문병도 가고, 호텔도 갈 수 있다. 이것이 ‘칼국수 장사도 되는’ 명동땅의 원리다. 공장도 분산시키지 말고 한 곳에 모아라”(복합화)

그의 관심은 인간의 도덕성, 인간성, 자율성까지 확대됐다. “골프처럼 국제화, 인류화된 스포츠도 없다. 골프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쳐라, 골프 제대로 배우면 헌법·질서·예의범절을 제대로 배우게 된다.” “ 뛸 사람은 뛰어라. 걸을 사람은 걸어라. 안 말리겠다. 걷기 싫으면 그만둬라.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마라.”

이 회장의 메시지는 보다 구체화 돼 갔다. 93년 3월 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삼성그룹 창립 55주년 행사차 1만 명이 넘는 삼성맨들로 꽉찬 이곳에 이 회장이 등장했다. “2000년까지 남은 7년은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살아남느냐, 아니면 주저앉고 마느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결단의 시기다. 오늘을 기해 지난 5년동안 싹튼 준비와 수련의 씨앗이 혁신과 창조를 통해 알찬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2창업 2기를 선언한다.”

삼성 임직원 최대불만 ‘7.4제’

반면 이같은 이 회장의 개혁주의는 93년 2월 새로 들어선 김영삼정부가 추진하던 개혁스타일과 시점, 내용이 공교롭게 맞아 떨어지면서 새정부를 향한 정치적인 제스처라는 폄하도 감수해야 했다.

그로부터 6년반이 흐른 현재.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당시 이 회장의 의도에 대한 논란 만큼이나 극단적으로 양분돼 있다. 우선 그가 역설한 내용 그대로 국내기업, 나아가 한국이 총체적인 개혁을 단행했다면 IMF지원체제로 우리가 빨려들진 않았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다. 사실 이 회장이 당시 추진했던 내용은 IMF가 강제해 우리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모든 것이다. 그의 말이 옳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 회장이 앞서 나갔지만 수년간 굳어진 타성과 관행을 바꿀 수 없었던 우리의 국민성, 가치관을 고칠 수 없었던 삼성 임직원과 국민들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똑똑했고, 제대로 비전을 제시했지만 시대보다 생각이 너무 앞섰다”는 게 이건희 회장에 대한 옹호론들이다. 실제로 그가 6년 전 부르짖었지만 일반인에게 생소했던 ‘개혁’ ‘질(質)’ ‘시너지’ 등은 지금 우리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그의 사고와 철학은 분명 앞서 있다는 것이다.

비판도 극단적이다. 재벌의 책임론과 관련, 그에 대한 평가는 사실 긍정보다는 비판기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경영의 상징처럼 돼 있는 ‘7·4조기출퇴근제’는 6년이 지난 후 ‘7’은 남았는데 ‘4’는 실종돼 버림으로써 삼성 내부 임직원의 최대 불만사항으로 부각돼 있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황제교육을 통해 형성된 가상현실을 현실인식의 토대로 삼았다는 게 비판의 단초다.

특히 ‘이 회장의 신경영6년’을 극도로 퇴색시킨 것은 승용차사업 진출. 이 회장의 당시 위기의식의 출발인 ‘기업은 망한다’는 진리는 삼성으로 하여금 “기존 기업의 여유가 있을때 신규분야를 과감하게 개척해야 한다”는 논리로 자리했다. 이것은 삼성이 승용차사업 등으로 사업을 늘리는 계기가 됐고, 기존 업체들과 심한 갈등을 빚었다. 신경영 선언 후 94년 진출한 승용차사업은 현대, 기아, 대우 등 기존 업체들과 대립했다. 이같은 갈등은 끝내 97년 기아자동차가 몰락하는 단초를 제공했고 우리 경제는 그해 11월 IMF 쇼크상태에 빠졌다. 우리를 IMF로 몰고간 것도 자동차고, IMF를 벗어날 수 있는 해법도 차산업에 대한 완벽한 구조조정에서 찾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차산업은 현재 IMF의 처음이자 끝인 셈이다. 그 책임의 뒤에는 이 회장이 있다.

조선분야에 대한 시설확대로 빚어진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등 다른 업체와의 마찰과정에서는 한라그룹이 무너졌다.

“우리를 IMF쇼크 속으로 몰고간 가장 큰 책임은 무능한 관리들에게 있지만 두 번째는 이 회장”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오가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대형적자를 내는 기업은 대부분 도요타, IBM, 마쓰시다처럼 일반적으로 단일업종 기업이다. 반면 GE처럼 기계, 전자, 가전, 반도체, 토목, 미사일이 다 합쳐져 있는 기업은 융통성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문어발 경영이란 편견은 어느 정도 수정돼야 한다.”

국내 대그룹 총수가 기업개혁을 외치면서 사회개혁으로 파장을 미친 것은 단군 5000년 우리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 회장의 선친인 고 이병철 회장도, 한국 경제사의 큰 기둥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시도하지 못한 것들이다. 또 앞으로도 나타날 것 같지 않은 미증유 사건으로 재계는 기억하고 있다.

이 회장은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이는 개혁실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또 IMF로 몰고간 주역 중 하나로 비판하는 사회에 대해 어떤 항변논리를 준비하고 있는지 주목된다. 현재까지는 그의 신경영에 대한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하지만 역사는 또다른 평가를 내놓을 지 모른다.

정승량 『성울경제신문』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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