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0월 1999-10-01   900

징수불편 이유로 50원 더 붙인 도로공사를 고발합니다

경인고속도로 경차 통행료 부당인상에 항의하는 강석민씨

고대 중국에 ‘새둥지’라는 뜻의 조과라는 선사가 있다. 선사가 날마다 소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참선을 했기 때문에 얻은 법명이라 전해진다. 이 조과 선사에게 당대의 시인 백낙천이 와서 물었다.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이에 조과 선사가 답했다.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

격높은 수행법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백낙천이 어이없어 되물었다.

“그런 것쯤이야 세 살 먹은 아이도 압니다.”

다시 선사가 말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쉽게 알 수 있으나 백 살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

전산처리가 어려워 50원을 삼킨다?

인천에 있는 한 금속공업사에 다니는 강석만 씨(37)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굳이 남다른 점을 꼽는다면 오늘의 한심한 정치행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지역에서 나오는 건강한 생활정치’뿐이라는 판단으로 한 지역시민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시민이라는 사실. 그런 그가 요즘 들어 ‘악한 것을 피하고 선하게 행동한다’는 평범한 문구가 얼마나 중요한 함의를 품고 있는지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그 연유는 이러하다.

강씨는 몇 년 째 매일같이 경인 고속도로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경차 운전자다. 그런데 지난 8월 22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 또 한번 ‘열을 받고야’ 말았다. 경인 고속도로의 종점인 신월 인터체인지를 지나다 다음 날인 23일 0시부터 소형 승용차의 고속도로 통행료를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입간판을 본 것이다. TV나 라디오를 가까이 하지 않았던 그는 항상 그런 식으로 일방적인 ‘기습인상 통보’를 받아 왔다. 좀 일찌감치 알릴 수는 없나, 강씨는 슬금슬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애써 눌러야 했다.

한데 강씨를 폭발시킨 화근은 그 다음에 버티고 있었다. 그가 알기로 경차는 소형 승용차 통행료의 50% 할인율을 적용받는데 그렇다면 550원이어야 할 통행료가 600원이 아닌가. 의아해 이유를 물을 수밖에. 그랬더니 징수원의 대답은 이해도 쉽지 않은 ‘절상의 효과’라는 것이었다.

“사사오입, 즉 550원에서 반올림을 한 것이라더군요. 기가 막혀, 1원 단위에서 사사오입을 하는 것은 봤어도 10원 단위의 사사오입은 처음이라고 했더니 말을 못하더군요. 그리고 왜 매번 하루 전에 인상 사실을 알아야 하느냐, 미리 알릴 수 없나 따졌죠.”

그렇게 실갱이를 벌이자 옆에 있던 다른 징수원이 나섰다. 이번에는 컴퓨터 전산처리상 50원 단위가 힘들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 징수원은 차라리 솔직해야 했다. 50원짜리 준비가 귀찮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아니 어떤 컴퓨터이길래 교통카드로 하면 처리가 가능한데 현금으로 받으면 힘들다는 것일까. 그리고 준비가 안됐으면 올리지 말아야 당연하지 올리는 건 마음대로 하고 엉뚱하게 그 피해는 시민들이 져야 한단 말인가. 강씨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다음에 나선 이는 ‘자포자기형’이었다. 차라리 자기가 물어낼테니 그냥 가라는 것이었다. 오죽 시달렸으면 이럴까 싶어 짐짓 망설였으나 그래도 아닌 것은 역시 아니었다. 왜 애꿎은 징수원이 부당하고 관료적인 고속도로공사의 횡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 말이다. 강씨는 정식으로 부당함을 제기하는 것이니 절대 대신 내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서 550원을 내고 지체된 출근길에 다시 올랐다.

원칙도, 명분도 없는 들쭉날쭉 징수체계

회사에 도착한 강씨는 한국도로공사에 연락을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전산실에서 한 것이라 모른다는 답변에 강씨는 기운이 빠졌다. 경인 고속도로의 징수체계의 변화과정을 돌아보았다.

경인 고속도로는 원래 지금의 종점인 신월인터체인지가 아닌 영등포로 들어가기 직전, 양평동 끝지점이었단다. 그러던 것이 목동 신시가지가 들어서면서 도로의 길이를 축소한 이후 통행료는 500원이 되었다. 얼마 후 도로를 확장하면서 통행료는 1,000원으로 인상되었다. 그리고는 50% 할인되는 경차 통행료 500원을 현금으로는 받지 않고 교통카드를 사용하게하거나 현찰 1,000원을 내게 했던 것이다.

울화통이 터지는 일은 원칙도 없고, 명분도 없는 들쭉날쭉 징수체계 뿐이 아니었다. 고속도로의 길이를 축소하고 넓이를 확장하면서 심각한 교통정체가 뒤따랐다. 인천에서 신월까지는 도로폭을 편도 4차선으로 주다가 고속도로 종점을 기점으로 목동 신시가지를 통과하는 곳은 편도 2차선으로, 다시 목동 들어가는 길은 3차선이니 당연했다. 게다가 목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전부 지하편도 2차선이어서 평소에도 출퇴근 시간대에는 시속 4∼5km로 거북이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데 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경인 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통행료는 꼬박꼬박 받으면서 교통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다 부당징수에 무책임까지, 강씨는 이번에는 결코 묵과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차 뒤에다 ‘경차 통행료는 550원만 내고, 권리를 찾읍시다’라는 문구를 붙여 부당징수를 알리는 한편 아침저녁으로 징수원들과 번거롭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길들여지지 맙시다!

벌써 한 달째 지리한 싸움을 계속해 오면서 강씨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악한 것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결코 녹녹치 않음을 느끼고 있다. 이는 곧 악한 것을 판단해 그것을 거부하는 동시에 선한 것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마다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임을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소송대상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강씨는 통행료 부당징수와 관련해 법률적 검토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본이 바로 선 나라’라는 공익광고를 떠올린다. 교사로 평생을 봉직한 한 시골학교 할머니 선생님이 기본을 가르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광고 말이다. 그 광고를 보면서 강석만 씨는 참 좋은 광고임에도 ‘거짓말 하지 말아라’ ‘싸움하지 말아라’ 등등 어린 학생들에게 하지 말라는 주문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었다. 기왕이면 자라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긍정적이고 밝게 생활할 수 있는 교육방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는 ‘골치아픈 어른’들의 생활태도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기본이 바로 선 나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때 그는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저도 사실 최근에야 생활 속에서 권리를 찾는 일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나름대로 그릇된 일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려 노력해 왔는데 많이 길들여져 있었던 모양이에요. 이번 일을 겪으며 포기하고 길들여짐으로써 부당한 현실을 못 보고, 정당한 자기 권리마저 차압당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원 까짓 거 없어도 살지 했다가 나의 권리를 50원에 팔고 마는 것이라는 자각에 이른 거죠. 우리 길들여지지 맙시다”.

손정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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