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4월 2011-04-01   1695

경제, 알면 보인다-약탈적 금융, 서민을 노예로 만든다

약탈적 금융, 서민을 노예로 만든다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2010년 여름,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해커가 세상에 도전장을 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에서의 군사기밀을 폭로한 위키리크스가 주인공이다. 그 폭로에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창립자에 대해 노골적으로 살해 위협을 주문했다.

  위 키리크스의 목적은 단순하다. 정보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 통제에 반대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을 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정보를 은폐하는 것은 대중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저항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버린다. 정보가 은폐되는 것 못지않게 정보가 축소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전달되는 것 또한 위험하다.

  중동 전쟁과 같이 대형사건이 아닌 우리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빈번하게 일어나는 정보의 왜곡 또한 다수 대중의 삶을 전쟁만큼 위협할 수 있다. 그 위험은 사소하다는 것 때문에 종종 하찮게 치부되고 그로 인해 금융위기가 전쟁이나 다름없이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때까지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다.

  2008년 미국에서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보통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금융의 약탈이 늘 당연하거나 개인의 작은 문제로 치부되었다. 소득과 자산, 직업이 없는 사람들에게조차 집을 사라는 명분으로 대출이 이뤄지기도 했다. -일명 NINJA(No incom, No Job, NO asset)대출- 그들은 몇 년간 이자만 내다가 자신이 살던 집을 은행에 고스란히 빼앗기게 될 것이란 사실을 몰랐다. 부채를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투자 은행들은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금리와 상환액이 시장 상황에 따라 요동치는 매우 위험한 형태의 담보대출이었다. 금리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20년, 30년 동안 모두 갚게 되면 은행은 빌려준 돈의 두 배 이상을 되돌려 받도록 상환방법을 설계해 놓았다. 그렇게 두 배 이상을 되돌려 받지 못하면 은행은 집을 차지한다. 이자 수입과 집 둘 중 하나는 챙길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채무자의 서류를 직접 조작하는 수법까지 동원해 그들의 신용등급을 올려 대출을 받도록(거짓말 대출)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었다. 저소득층의 고된 노동의 대가까지 철저하게 약탈해간 셈이다.

  금융은 대표적인 정보 비대칭성이 강한 분야이다. 겉으로 달콤한 이야기들을 쏟아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황당할 정도의 이자를 약탈해 가는 구조로 설계된 상품들이 많다. 소비자들은 일상적으로 금융상품의 왜곡된 정보에 노출되어 금융비용으로 빚의 그물에 빠져버린다.

대출 부추기는 금융기관, 의도적으로 금융정보 축소·왜곡

소득이 불규칙하거나 거의 전무한 사람에게조차 신용카드 발급이 되는 세상이다.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카드 발급에 관한 규제가 강화되었지만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누구에게나 카드발급이 어렵지 않게 이뤄진다. 그렇게 받은 카드를 열심히 사용하다보면 카드사는 한도를 늘려주는 불필요한 친절을 베푼다.

  어느 날 부터인가 카드론 한도가 주어지고 휴대폰 문자와 우편물을 통해 ‘당신은 우수고객으로 우대금리 적용을 받아 바로 1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시작된다. 이미 여러 장의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 결제일마다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숨 막히는 상황에서 카드론의 유혹은 세상 그 무엇보다 반가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대출 신청 절차도 어찌나 간단한지 주저할 것이 없다. 그러나 카드론으로 생활비를 늘리는 사치는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카드값을 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빠듯한 소득에서 카드론 원리금이 함께 빠져나가 신용카드를 다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새 결제일에는 카드 대금과 카드론 상환이 겹쳐져 결제금액이 소득을 다시 뛰어넘는다. 이번에도 카드사에서는 친절을 베푼다. 청구된 금액에서 최소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갚아도 된다는 것이다. 금융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가 싶을 정도로 고맙기까지 하다. 수수료도 약간일 뿐이라고 금융사 직원은 친절하게 리볼빙(혹은 자유결제, 최소결제)결제 방식을 권해준다. 고급정보를 얻은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모든 빚의 그물 안에 숨겨져 있는 약탈적 이자를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카드론이 특별 수수료만 면제해주었을 뿐 이자율이 20% 후반이었음을 나중에 안다. 원금 상환을 유예해주는 초기 3개월은 카드사 직원에게 상품안내를 들을 때와 달리 너무 빨리 지나간다. 3개월이 지나 원금과 이자를 함께 납입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최소 결제만 하고 남은 결제금액에 붙은 약간의 수수료가 거의 30%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전문가가 지적해 주기 전에는 몰랐다. 그 수수료가 역복리(수수료에 수수료를 계속 붙여 상환해야 하는 구조)라는 사실도 숨겨져 있다. 전세보증금이 부족하거나 병원비와 같이 갑작스런 목돈을 써야 하는 서민들에게 은행 대출은 문턱이 높다. 대신 이러한 고금리 카드 대출 상품들은 집요하게 우리의 휴대폰과 우편물, 이메일 함을 두드려 댄다. 돈이 급한 사람들은 상품 안내 정보에서 이야기한 정보만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해서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써보지도 못하고 카드사에 꼬박꼬박 갖다 바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런 고리의 수수료를 고지해주고 상환을 할 때 현금흐름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었다면 다른 방법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혹은 어쩔 수 없이 빌려 썼다 해도 어떻게든 빨리 갚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금융정보가 왜곡되는 사이 어느 순간 자신이 쓴돈이 아니라 갚아야 할 이자 때문에 또 다른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지고 지독한 채무독촉에 내몰리게 된다.

  이러한 약탈적 금융판매가 오늘도 멀쩡한 직장인들의 휴대폰과 이메일함을 장악하고 케이블 TV를 통해 유일한 친구인 것처럼 포장되어 실시간으로 우리의 뇌를 자극한다. 멀쩡한 민간인을 사살한 미군들의 행동이 전쟁의 부수적인 희생일 뿐이고 그 민간인이 방탄복을 입지 않았다고 비난을 들어야 하는 황당한 논리처럼 결국 돈을 빌려 쓴 사람만 수치심을 갖는다. 그 사이 금융 정보를 왜곡해서 부당이득을 챙기는 카드사는 모든 문제를 빌려쓴 사람에게 뒤집어 씌운다.

  휴대폰 문자, 이메일, 케이블TV광고 등을 통해 대출을 부추기는 대출광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듯한 친절한 모습 이면에는 금융정보를 의도적으로 축소, 은폐하여 고금리와 각종 수수료로 부당이익을 챙기는 약탈자의 모습이 숨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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