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4월 2011-04-01   1209

안건모의 사는 이야기-선생이야, 조폭이야?

선생이야, 조폭이야?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너 한번만 더 머리 푼 거 내 눈 앞에 보이면 죽여 버릴 거야.”

  조폭이 하는 말이 아니다. 중학교 선생이란 작자가 한 말이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가 아는 윤이(가명)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윤이는 좀 조숙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볼 때도 있다. 윤이가 아침에 머리를 감고 안 말라 체육시간에 묶지 않고 푼 채로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선생이 한 말이다. 

  윤이 말을 더 들어 보면 가관이 아니다. 하기 싫은 CA(동아리 활동)를 친구가 대신 신청했기에 담임 선생한테 ‘또래 도우미반’에서 ‘악기 연주반’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학기를 시작한 첫 주라 다른 아이들도 반이 맘에 안 들면 다른 반으로 옮기기에 윤이도 용기를 내서 신청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그 담임선생이 “너 ‘악기 연주반’ 그런데 가면 날라리 돼!” 하더란다. 윤이 언니가 엄마한테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윤이는 망설였다.

  “엄마가 속상해 할까 봐…. 안 그래도 엄마가 대안학교 가라고 했는데 내가 일반학교 선택한 건데 어떻게 말해.”

  올해 스무 살 먹은 윤이 언니도 일반 고등학교를 들어갔다가 한 달도 안 돼 자퇴하고 대안학교를 다녔다. 윤이 엄마는 진보신당 당원이고, 참여연대니, 구속노동자 후원회니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곳이 스무군 데가 넘을 정도로 사회 활동이 많은 사람이다. 아이들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키웠다.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고 책이 많다. 아이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생각이 무척 깊고 억압에 익숙하지 않다.

  지난 금요일, 선생이 딸내미한테 정말 ‘죽여 버린다’는 말을 했는지 확인하려고 윤이 엄마가 학부모 총회를 갔다. 아이가 속한 반 엄마들이 열 명 정도 모여 있었다. 윤이 담임선생은 학부모들에게 학급 지도 방안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우리 반에 윤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하고 자기 딸 이야기를 꺼냈다. 윤이 엄마는 “네, 제가 윤이 엄만데요…” 하고 나섰다. 담임선생은 “윤이가 머리에 너무 신경 쓰고 교복 치마 줄여 입고 그러다간 화장도 할 거고, 화장한 뒤엔 또 더한 거를 할 거예요. 아이가 사춘기라서 그럴 거예요.” 하고 말했다. 윤이 엄마는 분명하게 “선생님, 윤이는 교복 줄여 입지 않았어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담임 선생은, 사오정처럼 “그 교복 어느 회사 제품이냐, 애가 교복을 둘둘 말아 입고 다니는지 확인해 보겠다, 왜 그렇게 작은 걸 사 줬냐”고 따지듯 말했다. 윤이 엄마는 치마가 작은 게 아니라 윤이 허리에 맞는 옷을 사 준 거라고 말했지만 선생은 믿지 않았다. 윤이 엄마는 분통이 터졌지만 다른 약속이 있어 그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윤이 엄마는 분이 삭지 않았다. 선생이 아이와 자기 말을 믿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설령 그랬다 치더라도 머리 길이가, 치마 길이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분이 삭지 않는 까닭은 또 있다. 아이한테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했는지 그걸 확인하려고 갔는데 그건 말도 못 꺼내고 치마 줄여 입지 않았다고 변명 아닌 변명만 하고 나온 게 더 화가 났다.

  윤이 엄마 말에 따르면 윤이 담임은 자기가 교사가 천직이라고 했단다. ‘아버지도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셨고’ 어쩌고 해서 아이를 잘 다룬다고, 그래서 생활지도부를 계속했다고, 아이들이 무섭다고 하는데 최대한 부드럽게 하려고 매일 노력한다고, 자기를 믿어 달라고 했단다. 가증스럽다. 믿을 걸 믿으라고 해야지.

  윤이 소식을 들은 날은 서대문구 은평구에 있는 ‘은평시민넷’이라는 단체에서 ‘JOB담(잡담)’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그 행사는 다달이 한번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사였다. 그날은 정상용 선생이 강연자로 오셨다. 정상용 선생은 지난 번 공정택 전 교육감 때 일제고사 반대 활동과 관련해 최혜원, 설은주 선생 등, 7명의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파면을 당했다가 이번에 대법원 판결로 복직했다. 덧붙이자면 정상용 선생을 비롯한 7명의 선생을 파면시킨 공정택 전 교육감은 결국 뇌물수수죄로 감옥으로 갔다.

  정상용 선생은 그 강연에서, 아이들에게 시험으로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학교 교육을 비판했다. 그리고 홍세화 선생이 한 말을 빌려 “교사는 안정된 직장인이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윤이 엄마한테 전화 한 통이 왔다.

  “아냐, 엄마 괜찮아. 에구 이쁜 것. 걱정 마. 윤이아. 알았지? 걱정 마.”

  전화를 끊는 윤이 엄마 눈에 눈물이 맺혔다.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윤이가 ‘엄마 걱정시켜서 미안’하대.”

  아마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고는 윤이가 전화를 한 듯하다. 그날 밤, 윤이 엄마는 집에 들어가서 윤이한테, 언니가 다니던 대안학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냐고 물었다. 그 대안학교는 학비가, 밥값을 포함해서 한 달에 10만 원, 형편이 어려운 아이는 그것도 면제인 학교였다. 윤이는, “1년 뒤에 운이 좋으면 좋은 선생님 만날 수도 있는데, 지금 막 친구들 사귀고 있는데 나 학교 그만 두고 싶지 않아. 그냥 견뎌 볼게. 엄마,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 하더란다.

  그런데 그 선생, 지난 금요일 제 눈에 좀 얄미워 보이는 아이에게 화분 관리를 하라고 ‘지시’하면서 또 그런 말을 했단다.

  “너 꽃 하나 떨어질 때마다 니 손가락 부러질 줄 알아!”

  그 선생 나이가 50대 중반, 체육 선생이라는데 이건 선생이 아니라 조폭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폭력을 배운 사람이라서 그런가. 이런 선생이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생활하니 아이들이 폭력에 물들고, 졸업할 때 교복 찢고 밀가루 던지고 난리 피우는 거 아닌가. 이젠  제발 이런 선생 교단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윤이 엄마도 보통은 아닌데, 그 선생, 여태 그렇게 활개치고 살았나? 이번엔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안건모 님은 20여 년 동안 버스 운전사로 생활하며 쓴 일터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집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의 저자로, 현재 중·고등 학생부터 청년들, 노동자, 농민, 장애인, 또 세상을 사람이 사람답게 살 만한 곳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분들이 함께 쓰고 함께 읽는 월간 <작은책>의 발행인입니다. 안건모 님은 좬참여사회좭 3월호부터 우리 사는 세상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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