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2월 2001-02-01   1158

저임금+고된 노동+해고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

비정규직 찾아나선 4박5일의 현장보고

평생직장이 없어졌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는 급속도로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군이 확산되고 있고, 이미 그 수는 정규직 노동자군을 훌쩍 넘어 버렸다. 지난 97년 48%를 점유하던 비정규직의 비율은 IMF 위기를 겪은 이후 더욱 늘어나 정부 집계만으로도 53%를 점하고 있다. 파견철폐공동대책위원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비정규직으로 간주하지 않는 파견노동과 용역노동자들까지 합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전체 노동자의 80%에 육박할 정도라고 말한다.

점차 특수하고 다양한 형태로 노동자 생존의 목을 조르는 비정규 노동.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라는 것은 허울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모두 다 비정규 노동의 한 형태일 뿐이다. 단순 하위직으로 갈수록 더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려야 하는 그들은 새 천년이 밝아도 가슴 속엔 어둠만이 가득하다. 노동자의 권리조차 포기당한 그들.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문제를 타개할 방법은 무엇일까. 현장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파리목숨 같았던 KBS 비정규 운전직

파견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근로자파견법. 그러나 작년 6월 1일자를 전후해 KBS에선 이 법에 따른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졌다. 다름 아니라 파견직으로 2년 근무한 운전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파견직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 작년 5월 31일부로 KBS에서 해고를 당한 운수직 노동자 박씨 또한 이 파견법의 희생자이다. 그는 당시 KBS 앞 여의도 백화점 내의 휴먼링크 파견업체 소속으로 계약을 맺었다가 만기 이후 해고당했다.

“차는 재계약해도 사람은 파견법에 걸리니까 재계약하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정규직을 뽑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죠.”

해고 위기에 처했을 때, KBS는 사용자가 아니라며 모른 척했다. 그도 그럴 것이 KBS측은 용역회사와 계약한 것이니 그들의 근로조건까지 살필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박씨를 비롯한 운전원 해고자 30명은 KBS 본관 앞에서 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부당해고 철회와 고용안정을 논의하기 위해 KBS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체교섭의 꿈을 접어야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기 때문이다. KBS 노조도 파견근로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당시 어려웠지만 투쟁을 벌여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평상시 밤늦도록 일하고 토요일도 오후 3시까지는 운전석에 앉아 있어야 했어요. 급한 일이 있어 하루 결근하면 일당을 무조건 임금에서 제외했어요. 언제나 파리목숨 같았죠.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늘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그가 한 달간 뼈빠지게 일해 받는 돈은 고작 74만 원이었다. 야간수당이라곤 시간당 3,600원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싶었던 게 그의 작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는 투쟁을 계속할 형편은 못 됐다. 당장 입에 ‘풀칠’하려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잘 아는지, KBS는 용역회사로부터 임시인력을 구하거나 다른 렌터카 업체와 계약을 맺어 ‘재파견’ 하는 이중구조를 이용했다. 그는 이런 현실 속에서 전업을 해야만 했다. 현재는 자영업을 거쳐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 그때 당했던 부당한 조건을 생각하면 불끈 화가 치밀지만 노동자로서 용역회사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무기는 그에게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 그가 남긴 후일담이 더 가슴아프게 와닿는다.

“같은 운전직이라도 2년 후엔 용역회사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면 소속을 변경해 고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해고시켰어요. 그리고 KBS는 제3자일 뿐이라며 이런 문제에서 빠졌죠. 정말 억울한 건 우리예요. 어디서도 보호받을 수 없는 노동자. 그뿐인 줄 아세요? 같은 운전기사라도 KBS 차량부에 소속된 사람이면 대우도 좋고 인간적으로 대해줘요. 그렇지만 우리들은 용역업체 파견직이니까 아무도 신경도 안 써주죠. 그러니까 늘 불안해요. 늘 해고위협에 노출돼 있으니까….”

경비용 월동복도 안 주는 야박한 용역업체

영하의 추위에 관악산 줄기의 칼바람이 뺨을 때리던 늦은 오후의 서울대. 살갗을 에이는 한파에도 밤늦게까지 학교의 경비를 맡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도서관 4층 열람실 부근에서 들어오는 학생들을 체크하기에 바쁜 이종웅 씨(60세)를 만나보았다. 2교대로 24시간 근무한다는 이순 넘긴 늙은 노동자. 그에겐 올 동장군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손님일 게다.

“월급이오? 60만 원이에요. 그런데 올 겨울에는 용역회사에서 피복비까지 받으려 해서 더 난감해요. 아니면 피복을 반납하라는 거예요.” 한겨울 경비 서며 추위를 이겨낼 월동복 하나 마련해주지 않는 인색한 용역업체. 그의 얼굴엔 고단한 일과 열악한 임금에 지친 시름이 배어 있다.

현재 서울대 시설관리노조는 새로 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이다. 방화원(경비)과 미화원(청소)을 비정규직으로 계약하는 서울대가 작년과는 달리 6개 용역회사(의대ㆍ수원캠퍼스ㆍ관악도서관 청소, 공대 청소, 관악캠퍼스 경비, 나머지 청소용역 1개)와 각각 계약을 맺으면서 비정규직 노조의 단체협상도 매우 복잡해진 상태다. 작년에 1개의 용역회사와 단체협상을 맺으면 되었던 상황과는 천양지차. 서울대가 일부러 6개의 개별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도록 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들린다. 이씨가 속한 용역회사는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서약서를 요구했다. 서약서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 작은 실수를 하면 이를 빌미로 해고할 수 있도록 조치해둔 일종의 살생부인 셈이다.

“현재는 노조가 단체협상으로 해결할 때까지 계약 자체를 하지 말라고 지시해서 안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너무 불안합니다. 언제라도 해고될 수가 있고 고용승계는 불투명하고….”

탄식에 젖은 이씨의 말이다.

서울대 시설관리노조의 윤홍림 위원장은 이런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서울대가 용역업체와 계약하지 않고 직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기성회 노조가 있고, 아니면 생활복지조합에서 직영하면 될 것입니다. 신분보장도 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운영하면 용역회사가 이득으로 챙겨가는 마진을 없애고, 이윤 또한 남길 수 있어 오히려 서울대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현재 노조는 서울대 도서관측에 청소용역에 관한 표준계약서, 도급금액 산출내역서 등을 요구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알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측은 사업자가 아니라 제3자이므로 자신들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지 않고 있다. 비록 노조는 세웠지만 그들은 힘겨운 싸움을 펼치고 있다.

시간당 2,000원 받는 초중고 강사들

전국의 초등학교 수는 5,544개, 중학교는 2,741개, 고등학교는 1,957개. 학교당 강사가 1명씩만 있어도 1만 명이 넘는 수다. 교육부는 최근 교사 수가 많다는 이유로 강사 수만을 늘리고 있다. 현재는 대략 10∼13만 명의 강사들이 비정규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학교에는 최소 30명에서 최고 200명까지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있으며, 미술고와 같은 특수목적고에는 최고 400명까지 비정규직 강사들이 있다. 이들 외에도 정규직에 준하는 교사로 임시교사들이 있다. 또한 조교라는 신분으로 학생 7명에 한 명씩 채용된 ‘준교사’도 있다. 이들도 비정규직이다. 주당 44시간의 근무시간. 그러나 이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것은 다반사이다. 토요일까지 일하고 문서발송과 같은 잡무도 있다. 그런데 임금은 고작 시간당 2,000원. 전국초중고 강사노조 장명환 위원장은 비정규 강사들의 임금조건이 매우 심각한 실정이라고 전한다. 또한 해임과 관련한 권한이 이전까지는 교육청 소속이었으나 그 권한이 학교장으로 넘어가면서 자의적 판단에 의해 해임이 결정되기까지 한다. 학교와 업체가 계약을 하면서 강사를 집어넣는 불법적 사례도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모인 전국의 초중고 강사들은 200여 명 가량 된다.

“아직까지는 강사노조가 있어도 강사들이 선뜻 가입해 활동하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드러내놓고 활동하면 어느 학교에서 채용이 되겠어요? 고학력 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임시’로라도 일자리를 구하려는 교원자격을 가진 강사들은 그렇게 눈치를 보며 강사로 살고 있는 것이죠.”

지방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아직은 많은 수가 조직되지 않은 상태다. 초중고 강사노조는 지난해 있었던 3명의 해고강사에 대한 체불임금 소송에서 이겼고, 조악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조직의 외연을 넓혀가는 작업을 펼쳐갈 예정이라고 했다.

두 명이나 사망해도 퇴직금 안 준 악덕기업

만화가는 예술가인가? 전국 170∼180개의 사업장에서 원화나 동화를 그리는 2만5,000명의 애니메이터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받는 돈은 장당 500∼1,200원. 그것도 건수가 있어야 하며 없으면 배를 곯아야 하는 처지다. 한 달에 15∼20만 원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은 대개 새벽쯤에나 끝나니 심야택시로라도 집에 가려면 자비를 내야 한다. 현재 애니파워라는 벤처회사를 만들어 저임금ㆍ고강도 노동으로 시달리는 애니메이터들을 위한 대안을 만들겠다는 유재운 노조위원장. 그는 회사를 위해 몸바쳐 일하던 사람이 두 명이나 죽어가도 퇴직금도 안 주는 회사의 처우에 격분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퇴직금이라도 받아내기 위해서는 법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단다.

“회사는 우리를 개인사업자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무서조차 모르는 개인사업자가 어디 있냐고 되묻습니다. 단지 소득세만 내는 일용노동자일 뿐이죠. 애니메이터에게는 4대보험도, 퇴직금도 없습니다.”

노동부가 그들을 노동자로 여기는 판결을 내도 회사는 막무가내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단지 만화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뤄보겠다는 성취감으로 이 열악한 작업환경을 버텨내고 있다. 그러나 그 꿈에 비해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유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저생계비도 없고 고용불안에다 전망도 불투명합니다. 그러면 의욕도 당연히 떨어지죠. 결국은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을 하거나 알콜중독자가 되는 노동자도 있습니다.” 그의 분노는 이미 하늘을 찌를 듯했다.

중개인이라며 수금업무는 웬말

대부분이 40∼50대 주부인 보험설계사. 그들을 개인사업자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 출근부를 작성하고 회사의 지시를 세세하게 받고 있는 그들 또한 분명 노동자이다. “보험계약을 맺으면 보수를 많이 준다고 회사는 홍보하죠. 그러나 수당약속을 하고 한 건당 한꺼번에 수당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통 36∼48회로 나눠서 줘요. 나머지는 회사가 가져갑니다. 1∼2회씩 주다가 해고하면 그만이죠.”

전국의 보험설계사는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4,000명이 참여한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 이순녀 위원장의 말이다. 한 달에 1만 원 정도 수금이 돼야 되는데 보수도 없으면서 수금까지 시키고 안 들어오면 봉급에서 그 돈을 뗀단다. 그들은 엄연히 중개인이라고 말하면서 수금활동을 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원칙적으로는 회사에서 보험금을 수금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수금을 시키면서 거기에 드는 일체의 수수료나 비용까지 우리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한 주부는 암으로 수술을 하고 사경을 헤매는데 회사에서 전화를 해 마감이라고 경고를 했어요. 이건 착취예요.” 잔여수당이 1,000만 원이 넘어도 해고되면 받지 못하는 상황, 바로 보험설계사들의 현실이다. “저희는 회사가 작성케 하는 출퇴근카드를 제시하면서 우리는 개인사업자가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회사가 이것을 없애고 관리자를 파견해 직접 체크를 합니다. 노동부에서는 유권해석을 통해 노조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일하는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과 관리, 감독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이런 비정규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내면의 문제는 무엇일까.

“아침에 선전전 하려고 전단지 돌리는데 이를 막는 건 정규직 사원들입니다. 같은 노동자들끼리 너무한다 싶을 때가 있어요. 노동자는 하나이고, 단결돼 싸워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죠. 그리고 저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자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녀가 지적한 얘기는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감하는 문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실제로 교육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도 대학교수노조부터, 대학강사노조, 전교조, 전국초중고강사노조까지 모두 힘을 합치면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장명환 위원장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다.

“우리 같은 경우엔 교섭대상이 될 수 있는 회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부나 노동부가 교섭대상이 돼야 합니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무엇보다 선결돼야 합니다. 이유는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쓰면서 비정규직을 무차별적으로 양산했기 때문입니다.” 전국애니메이션노조의 유재운 위원장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점이다.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회자된 것은 작년 6월 롯데호텔 노조원에 대한 경찰의 반인권적 폭력진압 때문이었다. 당시 롯데호텔 노조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를 내걸고 파업했고, 투쟁중에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사측과 합의를 이뤘다. 롯데호텔의 사례처럼 한 사업장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합심은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노동권이나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제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가 아니다. 구조조정으로 정규직에서 떠밀려나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게 마련이고, 이것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의 문제라는 점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IMF 이후 계속되는 구조조정. 무엇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이제 고용 유연화가 아니라 고용안정이라는 것이다.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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