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2월 2001-02-01   908

골 깊어가는 복지격차 현대판 왕자와 거지

비정규직들은 임금과 일반적 노동조건에서만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퇴직금이나 학비·주택자금 융자 등 기업복지 그리고 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즉, 비정규직은 임금·사회보장 등에서 이중·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들은 해고를 당해도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 의료보험은 직장 가입자로 등록되어 있으면 사용주가 보험료의 50%를 내 주지만 직장 가입자에서 제외된 비정규직은 지역 가입자로 등록되어 사용주의 보험료 50% 지원이 없어 정규직보다 보험료를 2배나 더 내야 한다. 국민연금과 퇴직금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직장에서 국민연금에 가입시켜 주지 않으면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을 장기간 가입하지 않았을 경우에 받게 되는 노후생활의 엄청난 불이익이다. 국민연금의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 얼마나 불이익을 당하는지 살펴보자.

국민연금이 처음 시작된 1988년부터 1999년까지 11년동안 국민연금에 자동가입되어 보험료를 납부해 온 정규직 A가 있고, 1988년부터 비정규직이어서 국민연금 가입대상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B가 있다고 하자. 둘다 1999년에 60세가 되어 현직에서 은퇴하여 A는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했고, B는 연금을 못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또 A, B 모두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 중 월급이 중간 정도라고 가정하고 A, B 모두 우리 나라 평균수명인 76세에 사망한 후, 부인들은 9년을 더 살아 85세에 죽는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A는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고 죽은 뒤에는 그 부인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되므로 총 25년 동안(16년+9년) 연금을 받게 된다. 여기서 A가 11년 동안 직장에 근무하면서 납부한 국민연금 보험료 총액을 1999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944만 원 정도가 되는데, A와 그 부인이 25년 동안 받게 될 미래의 연금 총액을 역시 1999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4,368만 원이 된다. 따라서 A는 연금제도를 통해 무려 3,424만 원의 혜택을 보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이라서 국민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B는 이 혜택을 한 푼도 못 받게 된다. 비정규직 B는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 것이며, 연금을 받는 A와 그렇지 못한 B는 노후생활의 삶의 질에서 ‘거지와 왕자’에 비유할 만한 차이가 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처럼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국민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그리고 고용보험 적용대상에서 얼마나 제외되고 있는지는 정확한 실태조사가 없어서 그 전모를 파악하기 힘드나, 기존의 단편적인 연구결과를 보면 최소한 비정규직의 70%에서 50% 정도가 4대 사회보험에서 제외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배제 문제가 쟁점화하면서 그 동안 정부에 의해 여러 가지 개선 조치가 이뤄지고 노동운동권에서도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먼저, 근로기간 규정 단축을 통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 확대를 추구해 왔다. 고용보험은 최초 입법시에 근로기간이 3개월 미만, 그리고 근로시간이 주당 30.8시간 미만인 근로자를 당연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키던 규정을 1998년 10월부터 1개월 이상, 월 80시간 이상(주당 18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이면 당연적용하기 시작했으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도 1998년 10월부터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에서도 임시·일용직 등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제외돼 있었으나 최근에 입법 예고된 국민연금법 시행령에서는 고용보험과 동일한 기준으로 근로기간 규정을 변경하여 2001년부터 이들을 사업장 가입자로 전환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사용주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반대하여 국민연금제도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보험의 경우에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와 1개월 이상 근무하는 단기간 근로자를 모두 직장 가입자로 전환시키는 조치가 2001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산재보험의 경우, 비정규직은 원천적으로 보험 가입자가 되며, 2000년 7월부터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최근의 사회보험 확대적용의 결과로 사회보험 가입자가 어느 정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고용보험의 경우에는 1997년 말 적용 근로자수가 428만 명이던 것이 1999년 말에는 605만 명으로 약 177만 명의 근로자가 추가로 가입됐다. 177만 명의 추가적용 근로자 중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적용규모를 구별하기는 어려우나, 후자의 규모가 약 7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산재보험의 경우에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범위를 확대한 이후에 적용자가 약 100만 명 정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지역 가입자로 분류되어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사업장 가입자로 전환시키면 약 177만 명 정도가 직장 가입자로 전환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최근 2∼3년 간의 ‘불완전고용 근로자’에 대한 4대 사회보험의 확대적용과 그에 따른 성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근로자가 아직도 사회보험망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99년 말을 기준으로 볼 때 고용보험의 경우에는 전체 임금근로자 중 52.7%(약 646만 명), 산재보험의 경우에는 40.6%(약 508만 명), 그리고 국민연금의 경우는 47.8%(약 598만 명)의 임금근로자가 아직도 사회보험망에서 제외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정규직을 사회보험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두 가지를 검토할 수 있다. 첫째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는 잦은 사업장 이동, 부정확한 소득 파악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이들을 위한 별도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존 사회보험제도의 확대적용에 대한 행정적 시행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즉,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근로자가 사회보험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누가 적용 대상이며 적용 대상자의 소득은 얼마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사업주에 대한 보험료 징수의 강제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사회보험 대상자의 자격 확인과 보험료 부과 및 징수의 강제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와 비정규직들의 신상에 대해 사업주가 정확하게 사회보험 행정기관에 신고하게 되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여기서 4대 사회보험의 자격 관리와 보험료 부과·징수 기능을 한 기관으로 이관시키자는 ‘4대 사회보험 통합론’과 맞물리게 된다. 이 방안은 4대 사회보험의 경우 동일한 대상자에게 별도로 사회보험 관리를 하지 말고 한 기관에서 하게 되면 그만큼 사각지대도 줄어들고, 더 많은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 보험의 보험 대상자는 자동적으로 다른 보험의 가입자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영자의 사회보험 관리까지 염두에 둔다면 아예 다른 나라처럼 사회보험료 징수를 국세청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확대는 훨씬 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비정규직이나 영세 사업장 근로자를 사회보험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는 행정체계의 정비 외에 보험료를 부담하는 당사자의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월급 수준이 너무 낮아 보험료 납부에 부담을 느끼는 근로자 계층이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경우 모두 소득 수준이 낮아, 보험료 부담이 생계에 미치는 영향이 실제로 결코 적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는 소득기준을 정해 놓고 아예 저소득 근로자를 보험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다른 제도를 통해 보호받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며, 저소득 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국가의 재정이 투입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일정 소득 이하의 저소득 근로자에게는 보험료의 일부를 국가재정에서 납부해 주거나 혹은 일종의 가입기간 인정제도 같은 것을 두어 보험료 체납으로 인해 사회보험의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태를 막을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권리찾기운동이다. 사회보험에 가입하면 사용주가 자동으로 보험료를 부담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의료나 실업 같은 사회적 위험에 훨씬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사회보험은 노동자들이 타도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될 삶의 동반자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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