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2월 2001-02-01   763

서강 지켜낸 외로운 투쟁 4년

강원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 속에 70 넘은 노인들이 힘겹게 경운기를 몰고 하나둘 모였다. 지난 1년 6개월 전 영월군에서 서강에 쓰레기 매립장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로 주민들은 언제나 이렇게 모였다.

지난 1월 8일에는 그 동안 농사를 망쳐가면서까지 쓰레기장 예정지 입구에 초소로 세워놓은 컨테이너 박스를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이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 철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마을 노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경운기와 트랙터를 타고 집결하고 있었다. 순박한 시골 노인들이 왜 영월군과 경찰, 법원에 맞서 싸움을 해야 할까?

영월군은 1996년 쓰레기 매립장을 설치하기 위해 전문가를 동원해 많은 예산을 들여 조사했지만 결과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나오자 조사결과 자체를 폐기했다. 그리고 나서 영월군 공무원들은 ‘자체 조사’라는 형식으로 각종 수치를 조작해가면서 인구가 가장 적은 서강 상류에 쓰레기장을 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4월 이후 영월군은 측량과 환경성 조사를 위해 9차례나 강제 진입을 시도했고, 이를 막는 주민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후 지난 11월 영월군은 시공업자를 동원해 주민들을 공무집행방해로 고발함과 동시에 영월법원에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하기도 했다. 영월법원측은 주민 대표 몇 명을 불러 몇 마디를 형식적으로 듣고는 주민의 입장을 정리해간 변론 자료마저 다 알고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뒤 법원은 주민들에게 공사를 방해하지 말고 컨테이너 박스를 치우라는 일방적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불복해 컨테이너 박스 자진 철거를 거부하자 지난 12월 22일 법원은 공권력을 동원했다. 주민들이 이를 저지하자 법원마저 주민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고발했다. 그 동안 지역언론에서 영월군의 행정 과오를 누누이 지적했지만 법원은 이를 무시하고 주민들을 범법자로 몰아갔다.

한편, 유근배 교수(서울대 지리학과)는 “이 곳은 소중한 생태계일 뿐만 아니라 단층지형으로서 쓰레기장을 건립한다는 것은 부적합한 일”이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월군 주민들은 20년 만에 내린 폭설과 혹한 속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1월 8일부터 며칠간 전경과 대치해 싸웠고, 법원은 전투경찰과 철거용역 노무자들을 고용해 컨테이너를 강제 철거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영월군청 항의방문을 계획했고, 이를 제지하던 경찰에 맞서 국도에 주저앉아 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안 김태수 군수가 저녁 9시경 현장에 나타나 주민들과 대화했고, 결국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주민들 앞에 그는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농사를 망쳐가며 구속을 각오하고 영월군의 잘못된 행정에 맞서 1년반을 힘겹게 싸워온 주민들이 드디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올바른 입지 선정 절차를 밟아왔다면 2, 3개월 동안 후보지를 철저히 조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업무를 방기한 채 밀실행정을 폄으로써 영월군은 많은 예산을 낭비하고 주민들을 괴롭히며 4년여 간의 긴 갈등과 반목을 낳았다.

실제 영월군은 동강의 수달과 비오리를 살려달라고 전국민에게 호소하면서 한편으론 서강의 수달과 비오리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주민들을 범법자로 모는 이율배반적인 일을 저질렀다.

서강변 주민들은 아직도 아무런 정화 없이 서강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서강이란 바로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것을 의미한다. 수달과 쉬리가 함께 뛰놀고, 비오리와 원앙이 무리지어 춤추는 생태보고 서강의 맑고 아름다운 자연이 언제까지고 지켜지기를 바란다.

최병성 서강 쓰레기종합처리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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