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6월 2004-06-01   850

“평화란 ‘우리’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인터뷰-이대훈 협동사무처장

십 년 전 참여연대 창립준비위원으로 출발해 상근자, 사무국장을 지내고 지금도 협동사무처장으로서 평화운동가로서 ‘활동가’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 이대훈 씨가 바로 그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일의 특성상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몸과 마음의 동력이 떨어져 능력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이 사람 ‘이대훈’은 한결같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자기생각이 확실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3년째면 벌써 ‘고비’를 실감하는 까마득한 후배 활동가들에겐 그 십 년이란 세월이 생각대로 살기에 쉬운 일로 느껴지거나, 한평생 삶의 여정에서 독하게 눈 한 번 질끈 감았다 뜨면 지나갈 꿈의 시간으로만 다가오진 않는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직업으로든, 소신과 의지를 생명으로 여기는 활동가로서의 삶으로든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그의 ‘멈추지 않는 길’을 새삼스레 들춰보는 것도 참여연대 10주년을 반추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이제 참여연대의 과거와 미래를 평가하고 전망하는 시기인 만큼, 협동사무처장으로서가 아니라 ‘운동가 이대훈’으로서의 해답을 구했다.

시민운동의 본질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

창립을 준비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용산 시절 얘기를 해볼까요. 우선 경제수준에 맞는 곳으로 사대문 근처에서 전철역하고 가까운 곳으로 용산이 제일 유력했어요. 그런데 사무실 앞에 홍등가가 있는 게 불편했던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서민들의 복잡한 생활의 한 단면이었고, 또 시민운동은 중산층운동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미군기지와 홍등가, 그리고 용산역이 안고 있던 여러 가지 근현대의 기억들이 꼭 기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의미를 던지는 곳으로 이해하고 입주를 했었어요. 그런데 임대를 하고 청소하려고 보니 그곳은 허름한 정도가 아니라 죽은 쥐에 바퀴벌레가 나오는 소굴이었어요. 겨우 임대료만 준비해 출발을 했던 터라 모든 것을 몸으로 때우는 형편이었습니다. 초기 상근자들이 힘들게 청소하고 페인트칠하고 틈만 나면 이삿짐센터 노동자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초기였기 때문에 사안 하나 하나 논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무언가를 새로 창조해낸다는 보람에 그 당시 많은 분들의 행복한 얼굴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안국동 사무실은 거의 ‘한강의 기적’ 수준입니다. (^^)”

초기 사무국장은 현재 사무처장처럼 조직운영과 사업진행에 대한 총괄 역할을 했었습니다. 당시 사무국장 자리에서 직접 실무를 할 때와 지금 협동사무처장이라는 자리에서 보는 참여연대는 어떻습니까?

“많은 차이와 함께 연속적인 문제도 있겠지요. 일단 개인적으로는 제가 가장 불행한 사무국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 없이 회원 200명에서 출발했던 초기였고, 하루살이가 걱정되는 좌충우돌의 시기였죠. 당시는 규모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행복(?)했지만 월말이 되면 또 어디서 돈을 빌려 상근비를 해결할지 걱정하는 일이 아주 싫었지만 불가피했죠. 점점 체제가 정비되고 규모가 커지면서 그것을 조절하는 역할이 사무국장과 사무처장으로 그리고 후에 2인의 사무처장제로 확대되었습니다. 지금의 양대 사무처장과 운영을 담당하는 총무팀이 따로 있는 것이 그만큼 규모를 반영했다고 봅니다.

다른 하나는 참여연대가 계속 직면하고 있는 문제, 팽창.확대되는 조직과 사업의 문제를 적절하고 바람직하게 대중운동으로서 수용할 것인가 하는 연속된 고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언론과 경쟁해서 손색없는 대안적인 정책과 담론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평범한 시민들과 같이 호흡하며 참여할 수 있는 운동,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대중운동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두 가지 기대욕구가 항상 함께 있었죠. 초기 힘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아무래도 전문성과 의식이 높은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여러 가지 면에서 미숙해서 일반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의제를 뽑아내 대중적 에너지로 하는 시민운동은 잘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의식을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화두로 초기부터 고민해왔고 상당한 개선조치가 있었지만 아직도 유효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 창립준비위원부터 1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 함께 한 사람으로서 그 의미는 남다를 것 같습니다. 10주년의 의미와, 이 시점에서 정작 참여연대가 돌아보며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여연대는 그동안 꾸준히 성장해왔고, 시대상황의 변화와 발맞춰 능동적으로 대처했다고 생각합니다. 알려진 분들 외에도 알려지지 않고 힘쓴 많은 숨은 일꾼들 덕분이며 그분들에게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10주년이라고 해서 9주년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계기를 삼으려고 하는 것은 중요하죠. 짧지 않은 세월을 거치며 초기에 비해 규모가 커지고 경험이 상당히 많이 축적돼 있는데, 이것은 조직 안으로만의 축적이 아니라 참여연대의 성과가 시민운동의 성과와 함께 꾸준히 퍼져나갔다는 것을 의미하죠. 한 번 종합적으로 돌이켜 보기에 좋은 시기인 듯 합니다. 올해의 총선, 작년의 대선결과가 보여주듯 정치권에서 개혁이 주류가 되는 중요한 상황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의미심장하고 본질적인 변화가 객관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 가까워졌다고 보고 참여연대나 다른 사회운동이 다 함께 이 문제를 직시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개혁노선이 주류화 되는 정치.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정치권에서 정책정당의 기능이 확대되면서 참여연대 같은 정책적인 시민운동의 역할에 어떤 질적 변화가 필요한, 그런 대변환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지역주민운동 구상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역회원들을 비롯한 많은 회원들이 지부에 대한 요구가 많이 있습니다. 지부에 대한 요구와 논의는 초기부터 계속 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초기 여러 가지 논의의제 중 참여연대가 대중적.서민적이면서도 높은 정책 수준을 겸비한 바람직한 방안을 고민할 때 역시 지역에 기초한 또 지역 주민들이 시민단체에 기초한 운동이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닐까 하는 구상도 있었어요. 그런데 참여연대 사업이 특히 중앙 권력을 상대로 했다는 점, 그리고 지역에서 이미 지역운동을 전개하는 상태인데, 이름 걸고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지역단체의 자발성을 존중하면서 참여연대가 돕는 방식으로 지역공동체와 수평적 관계를 맺자는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당연히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기본적인 원칙과 이념을 정해 놓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이른바 공동체.파트너 단체가 된 것이죠.”

지부조직설립이 어렵다면 지역회원들을 위한 다른 대안이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참여연대를 크게 1단계로 본다면 지역에 기초한 새로운 참여연대 운동을 일종의 2단계 참여연대로 구상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국제엠네스티(amnesty)의 지역조직 방식을 적절하게 참조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국제앰네스티 본부는 200여 명의 상근역량을 두면서 정책과 정보, 감시와 여론화 등 높은 수준의 정책적 인권운동을 전개합니다. 반면 지부는 본부로부터 제공되는 방대한 정책과 정보를 기초로 그야말로 지역 주민들의 자발성과 참여를 통해 인권의식을 사회 저변에서 확산시키려고 하지요. 딱히 사무실을 갖추지 않고서도 지역 앰네스티는 한 두 사람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역할을 맡아 회원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월1회 정도 모임을 가지거나 본부의 지원을 받아 캠페인을 벌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운동의 조직 방식에서도 ‘어깨에 힘 들어간 모습’을 너무 많이 봅니다. 진부한 전형을 벗어난 참여연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지역주민운동을 구상해 보는 것도 어떨까 하는데요. 여기에 큰 자산이 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축적된 정책역량과 여론화의 기반을 이미 참여연대가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반을 살려 참여연대의 큰 변화로 시도해 보고, 초기 참여연대가 갖고 있었던 운동의 취지를 되살리는 게 어떨까 합니다.”

‘평화’란…

평화운동에 관심갖게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오랫동안 사회운동 단체에서 일하는 것 말고는 새로운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몇 년간 사회과학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참여연대 추진모임에 참여할 즈음에 국제인권제도에 대해서 공부할 생각으로 기회를 찾다가 결국 사무국에 상근하면서 좀 연기되었죠. 상근하면서 사회복지개혁운동, 뒤집어진 세계화 논의, 그리고 IMF위기를 겪으면서 생각이 흘러 국제관계 문제를 좀 색다른 각도에서 사회운동과 관련이 되는 방향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다행히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늦깎이 학생이 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인권에 대한 관심이 평화의 영역으로 확대 된 것이었죠.”

한국에서의 평화, 평화운동의 개념은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전투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오랫동안 위험했고 평화통일론은 한 때 금기시되기까지 했습니다. ‘적’을 통해 존재가 입증되는 분위기였지요. 사회운동을 평화운동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평화통일에 대한 관심이 오랫동안 있었지만 이는 대체로 남북한 국가 차원에서 전쟁이라는 방법의 거부를 의미하는 것이었지, 좀 더 깊게 남북한사회 양자의 폭력적 체제와 군사주의, 군사적 이념과 적개심으로 자기 의미를 규정하는 이런 의존성에 대한 성찰로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었지요. 요한 갈퉁이 말하는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의 논의를 충분히 수용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대체로 우리 사회운동은 민족적인 틀 안에서 진행됐고 이 틀을 벗어나는 논의는 제약되기가 쉬었습니다. 민족이라는 것이 사실 상상의 산물이지만 근현대사의 중압감이 있었지요. 대중적인 인식도 제약이 됐습니다. 환경운동 측에서 핵발전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호응을 얻었지만, 주한미군의 핵전력과 전략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면 인기가 없게 된다는 것이지요. 다행인 것은 최근 미국의 이라크침략 문제, 이라크 파병 문제가 여론화되면서 이것이 미국에 대한 사회적 재성찰로 증폭되고 있는데, 아마 본격적으로 평화운동이 전개되는 시기를 맞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과연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사회적으로 던지고 있는 셈인데 이는 곧 우리는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진정한 평화 의식의 출발점이라고 보입니다. 평화운동은 특정한 이슈를 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경각심으로부터 우리가 속한 체제를 재검토하는 사회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운동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평화란’을 말하신다면.

“평화는 폭력에 대한 성찰이지요. 폭력을 통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대안적인 사회를 찾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또 비유하자면 ‘우리’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폭력이 ‘우리’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대한 애정이 이라크인들에게는 잔인한 폭력으로 나타나는 셈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평화란,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 대한 성찰로부터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것이기도 합니다. 집단의 경우에도 ‘위대한 민족’이나 ‘자유의 수호자’와 같은 ‘우리’에 대한 집착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평화의 관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이나 폭력에 반대하는 것을 평화주의로 보기도 하는데 저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집단이건, 우리가 아닌 그들에 대한 상상력을 어떻게 갖추느냐에 따라서 폭력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죠. 지금도 어린이들이 쉽게 ‘일본놈들’ 하는 인식을 배우지만,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했던 야만적인 일에 대해서는 보통 그렇게 인식하지 않습니다. 민족적 색안경을 끼는 것이지요. 보통 ‘우리’하면 피부색부터 시작해서 언어와 관습이 비슷해야 안전함을 느끼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불안을 느낍니다. 폭력의 유혹은 이 불안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 안보주의자들이 북한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일사불란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속성을 갖는 이런 집단들은 위험합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공격성으로 발전시키지요.

지금 미국이 추구하는 세계 패권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면도 있고 또 강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미국인들이 부시와 네오콘 세력에 제공하는 일종의 자아도취, 즉 ‘우리 미국인’에 대한 우월성을 즐기면서 그로부터 허구적인 위안을 찾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기 집착이 너무 강해서 다른 집단에 대한 이해나 성찰이 부족한 경우는 우리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 은근하게 뿌리 깊은 백인숭배와 인종차별주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태도,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다른 사회에 대한 이해의 수준, 외국어 학습에서의 편견, 일부 한국유학생들이 개도국에서 보이는 오만한 태도 등을 보면 우리 사회에도 ‘우리’에 대한 집착에서 출발하는 잠재적 공격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평화의 성찰은 이런 집착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인숙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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