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1월 2010-11-01   1325

아주 특별한 만남-안건모 회원

 

‘작은책’에 담아내는 세상의 큰 이야기꾼

안건모 회원

이경휴 수필가, 『참여사회』 객원기자

정직한 노동과 가난하고 소박한 민초의 삶,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실체다. (박노해 『나 거기에 그들처럼』 중에서)


필시 자연은 저희들끼리 무슨 언약이 있었던 것 같다. 산천은 절묘하게 가을 색깔을 풀어내고 하늘은 어디까지 달아나 버렸다. 거기에다 삽상한 바람은 보너스다. 바쁘게 달려왔던 사람들이 가을볕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도심의 가을걷이인 듯 거리마다 울긋불긋한 치장에 문화라는 이미지가 덧칠 되어있다. 늘 그래왔듯이 광화문 광장도 예외는 아니다. 북악을 배경으로 한 풍경만은 평화, 그 자체이다.

  더구나 G20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들만의 잔치’는 요란하다. 과연 MB정부는 의장국의 자격이 있는 걸까, 자국의 민생과 민주주의보다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줄을 서야하는 정상회담에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어야할까, ‘국가적 경사’,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정부의 요란한 홍보 뒤에는 노점상 단속에 군대도 동원할 수 있는 경호안전특별법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며, 1박 2일 동안 천문학적인 행사비용은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건지 생각해 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의문뿐인 G20정상회담이다.

  주말 세종문화회관에서 화려한 어떤 결혼식이 있었다. 하객으로 참석하여 ‘부러움 끝에 시샘하는’ 격으로 축하를 하며 지켜보았다. 모든 상황들이 차고도 넘쳤다. 20대 부부의 출발치고는 많은 걸 가지고 시작하는 듯했다. 연신 박수를 치면서도 손에는 힘이 빠졌다.

  밖으로 나오니 지하 갤러리에서 자칭 ‘실패한 혁명가’ 시인의 사진전이 열렸다. 사진은 이 세상 가장 작고 힘없는 사람들 실상을 흑백으로 담고 있었다. 금방 보고 나온 화려한 결혼식과 대비되는 ‘난민 텐트에서 태어난 아이’를 보며, 사진이 주는 강렬한 느낌과 사실성에 압도되었다. 사진이 뺄셈으로 진실을 전달한다면 글은 덧셈으로 진실과 온기를 전하는 게 아닐까.

  읽을거리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세상에, 작고 소박하고 따뜻함이 담긴 한 권의 잡지가 한 손에 쏙 들어왔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작은책>(도서출판 작은책)이다. 발행인 안건모(52세)님이 ‘아주 특별한 만남’의 주인공이다. 워낙 유명세(?)를 타는 분이라 다소 긴장을 하며 서교동 태복빌딩 5층에 있는 ‘작은책’ 사무실을 찾았다.

  건물 1층에 있는 가게의 상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문턱 없는 밥집’을 시작으로 기분 좋은 가게, 어린이 어깨동무,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민족의학연구원… 소위 ‘좌빨’ 건물로 통한단다. 


시위로 막힌 도로가 세상에 눈뜨게 해

약속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각오(?)는 하고 문을 두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소박한 밥상에서 한솥밥 먹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중이었다. 주뼛거리자 열렬히 환영하며 숟가락을 덜렁 쥐어준다. 단숨에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를 보는 순간 작은 체격이지만 강건하고 다부진 인상이 <작은책>의 발행인답다는 느낌이 왔다. 검은 뿔테 안경은 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노동자’라 한다. 그의 이력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바람에 ‘공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간략하게 요점 정리를 하면, 어려서부터 어렵게 살아온 끝에 마지막 잡은 직업이 버스기사였다. 2006년, 시내버스 20년 현장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안건모 지음, 보리출판사, 2006년 6월) 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진솔한 삶의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웠다. 이로 인해 그는 세상을 움직이는 글쓰기의 ‘달인’이 되었고, 나아가서는 <작은책> 발행인으로 소외받고 사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 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버스기사로서 열악한 환경에서 어떤 힘이 그를 움직이게 했으며 책을 낸 동기가 궁금했다.

  “80년대, 버스를 몰고 시내로 들어가면 종로통은 시위 때문에 늘 차가 막혀있었죠. 어떤 때에는 30분도 넘게 갇혀있는 거예요. 그러면 책을 읽었죠. <태백산맥>도 그렇게 다 읽었고, 대신 라디오는 틀지 않았어요.”

  따라 웃었지만 그 차에 탔던 승객의 입장에선 ‘유별난 기사’로 기억했지 싶다.  

  “예전에 홍제동 살 때 주민 독서실에서 본 책 한 권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또 변하게 했어요. 좬쿠바혁명과 카스트로좭라는 책을 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되었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노동자의 삶을 그대로 전달하는 유용한 도구가 글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내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걸 책으로 묶어냈던 거죠. 책이 내 삶을 바꿨습니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의 내용 일부를 인용해 당시 그의 심정을 짐작해 본다.

  “사업주와 관리자들이 탄압하는 그 유치한 형태를 마음껏 비꼬면서 통쾌했습니다. 그동안 노동자로서 살아오면서 주눅 들고 억눌렀던 마음에서 벗어나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작은책>-역사의식이 담긴 이 시대 안내서

점심을 끝내자 그 상은 바로 <작은책> 홍보판이 되었다. 이번 달 책을 선두로 지난 호의 책들이 작고 아기자기한 꽃밭을 이루었다. 11월호는 표지도 정겹다. 빨간 고무장갑을 낀 어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아 빨간 고무‘다라이’에 김치를 버무리고 있다. 냄새 난다고 번번이 안 들고 가는 자식을 향해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습이 우리네 엄마를 연상케 하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책다운 표지였다.

  <작은책>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갔다. ‘작은’의 의미는 무엇이며, 다른 월간지와 무엇이 다른지, 어떤 점을 자랑할 수 있느냐고 여쭸다.

  “이거 무슨 시험 치는 것 같네” 하며 껄껄 웃었지만 표정은 전혀 수험생답지 않게 여유만만에 여유작작했다.

  “작게 판형을 짠 건 경제적인 면만 생각한 것은 아니고 그보다 일상의 소박한 이야기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거 아닙니까? TV 드라마 보면 맨날 큰 이층집에 사는 재벌 이야기에 불륜 같은 걸 소재로 다루지 않나요?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사람들을 세뇌시키니 사람들이 비판이나 역사의식이 없어지죠. <작은책>은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역사라고 해서 조선시대 운운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파악하는 글로 채워지는 게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고 이게 <작은책>의 큰 자랑거리예요.” 

  그러면서 ‘작은책 글쓰기 모임’의 글 중 한 예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시중에 나돌고 있는 <작은책>류의 월간지에 있는 독자 투고 글을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아버지가 택시 기사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도 잘 살 것이다…’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서는 그런 글은 쓰지 않습니다. ‘왜 아버지가 열심히 일을 해도 우리가 어려운가, 사납금은 채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며, 구조적으로 어떤 모순이 있기에 아버지가 열심히 일을 해도 우리는 항상 이렇게 가난한가’하는 내용에 진정성을 담아서 사회에 알리는 게 ‘작은책 글쓰기’의 역할이고 특징이죠.”

  때문에 이 ‘작은책 글쓰기 모임’은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경남, 충남 등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매달 소개하는 ‘작은책 강좌’도 있다. 이번 달 강좌는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의 ‘의료민영화의 진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작은 덩치에 옹골찬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간 출판된 책으로는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 『누가 사장시켜 달래?』,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로 우리 이웃들의 지나온 과거를 보여주는 역사책이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글쓰기’로 소통과 이해를 넓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11월 6일, 7일 개최되는 전국노동자대회로 이어졌다. 7일(일요일) 오후 3시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전태열 열사 40주기 정신을 계승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임을 대중과 같이 공감하는 대회이다.

  그는 현재의 노동현장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40년 전보다 먹고 사는 건 좀 나아졌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노동현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지면서 비정규직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죠. 그러니 노동자 간에도 반목과 질시가 생기고. 기륭전자, 콜트-콜텍, 동희오토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지금껏 싸우고 있는 사실을 이 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 안타깝죠.”

  이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교묘하게 노동현장을 탄압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떼어먹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흥분했다. 남 일이 아닌 자신의 일처럼 여겨 발 벗고 나서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5개월 치 월급 600만 원을 못 받아 노동부에 진정을 냈는데 두 달이 지나서야 검찰로 넘어갔다는데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아는 변호사에게 물어봤더니 기소돼봤자 벌금 100만 원이면 끝이래요. 민사소송이 남아 있지만 소송 걸 때 가압류부터 해야 하는데, 그런 놈들은 벌써 재산 다 다른 데로 빼돌려놨겠지요. 아예 월급을 주지 않는 회사도 있는데 최저임금법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상습적으로 임금을 안 줘도 되는 나라, 군사독재가 부자 편만 들어줘서 자본독재로 변해 노동자들의 목줄을 죄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노동자의 삶은 갈수록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그는 1936년 조지 오웰이 영국 탄광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한 좬위건부두로 가는 길좭에 나오는 노동자의 삶이, 2010년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그 현장의 이야기가 작은책이 펴낸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와 한겨레 기자 4명이 노동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쓴 『4천원 인생』이라고 했다.

  그럼 이런 글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안건모식 글쓰기’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읽은 사람들이 버스기사가 왜 짜증을 내며 차를 모는지 알겠다고 하더군요. 또 좬4000원 인생좭을 읽은 사람이 그럽디다, 식당가서 아줌마들에게 반찬 독촉 함부로  못하겠더라고.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서 사회는 약자 편에 서서 조금씩 변해가는 거죠. 소통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이죠.”

  소통, 그렇다. 이 세상은 아름다운 말과 글로서 얼마나 번지레하게 치장되고 있는가. 더구나 툭하면 쏟아내는 희망이라는 허상虛像.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이미 판은 짜놓고 많은 사람들을 들러리 세우고 세뇌시키는 세태에서 이런 글은 세상을 바로 비추는 거울이요, 찬물 한 바가지다.

  “안건모식 글쓰기? 한마디로 쉬운 글쓰기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 내 주장을 펼치는 거죠. 말하자면 소통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기사나 칼럼은 지식이나 진실을 전달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끔 합니다.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글쓰기입니다.”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줌이다. 뿌리는 땅속으로 무수히 뻗어가면서 곧은 가지를 흔들며 불어오는 바람이다. 열악한 노동현장을 환기시키는 결정적인 바람이리라.

  마지막 질문은 참여연대 이야기로 돌아왔다. 회원 가입 동기와 참여연대를 위한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드렸다.

  “회원 가입은 아마 2004년으로 기억합니다. C간사의 영향이 컸지요. 인간관계라는 게 사회생활에서 아주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 양반이 참여연대 그만두면 저도 회원 탈퇴할 생각인데…….”

  모두 따라 크게 웃었다. 그는 사람을 만나면 인터뷰만 하는 게 아니라 조직을 만든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그가 참여하는 여러 단체의 얼굴이 그려졌다. <작은책>은 초창기 어려운 시기에도 참여연대에 지원을 많이 했다. 회원과 시민에게 드리는 선물용으로 <작은책>을 보내와서 참여연대에 힘을 보태주었다. 그는 쏟아낸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비판할 게 뭐 있나요? 어디에서도 못 건드리는 문제를 잘 집어내잖아요. 천안함 사건만 봐도 잘 알듯이. 꼭 필요한 조직이 잘 돌아가는데 내가 뭐…….”

  겸손한 발언으로 ‘접수’하며,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택시 운전대를 한 번 잡고 싶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택시노동자들이 심하게 착취를 당하는 현실을 사회에 알리고 싶어요. 세상을 움직이는 건 노동입니다.”

  <거꾸로 가는 택시>로 장안을 또 떠들썩하게 할 징조이다. 자칭 ‘감옥 한 번 안 가고 편안하게 살아온 사람’이 내뱉는 양심선언으로 들려왔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