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10월 2007-10-01   1079

배움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

지난여름 온 나라가 불볕더위와 학력위조 열기에 시달렸다. 기온은 열대야를 넘어 새로운 기상용어인 폭염경보까지 등장하며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절묘한 절기의 변화는 한여름을 추억으로 남겨놓았지만, 학력위조 파문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 여진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을 흔들며 도덕성과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이런 와중에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않고…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 선 모습은 깨끗하여…’라는 애련설(愛蓮說) 구절을 떠올리는 이가 있으니 참여연대 백년지기 1호 회원 기우봉 박사님(72세)이다.

지난 달, 강원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기우봉 회원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문장의 모델인 셈이다. 54년 서울대 전기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대기업의 임원으로, 중소기업을 경영하며 늘 에너지 문제를 화두삼아 면벽수행한 결과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위한 가공송전선 적용 타당성 연구>로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강원대 전기전자공학부 석사 과정을 시작으로 5년 반 만에 석·박사 과정을 끝났으니 그 열정의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쏟아나는지 궁금했다.

“나이가 있으니 혹 병이라도 생기면 논문을 못 쓸까봐 학기마다 동료 학생들보다 1과목씩 더 들었고 새벽까지 논문에 매달리는 일은 허다했지요. 어려웠던 점은 수학과 통계프로그램을 익히는 일이었죠. 그래도 목표가 분명하니 몸은 힘들어도 지치지 않더라고요.”

의지와 신념으로 무장한 칠순 청년의 독백이다. 고지에 오르고 나니 그제야 주변에서 환호와 환성으로 축하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기우봉이니까 해냈지, 아무나 못해.’라는 격려가 그간의 어려움을 순간 잊게 했다며 함박웃음을 날렸다. 굳이 학위가 왜 필요했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드리자 현명한 답변이 거침없이 나왔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우리나라, 매우 심각합니다. 정책의 변화가 절실한데 재생에너지에 대해 관심조차 없으니 책이나 자료가 있겠어요? 그래서 풍력발전개론서 같은 책을 쓰려고 다녀온 독일에서 직접 보고 느낀게 많았어요. 하지만 학력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잖아요? 남을 이해시키고 관료를 설득시키려면 어쩔 수 없이 학위가 필요했죠.”

번듯한 학력을 가지고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은 우선에 편하고 국민들에게 선심 쓰는 행정만 펼치니 미래를 바라보는 에너지 정책이란 나올 수 없다고 조용한 달변으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앞으로 석유는 40년, 천연가스는 60년이 지나면 바닥이 납니다. 우라늄의 매장량도 한정되어 있지만 원자력, 얼마나 위험한 에너지입니까? 순환하는 에너지인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풍력, 태양열, 태양광, 조력, 온도차 발전, 이젠 바이오에너지까지. 연구를 하면 얼마든지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데 그저 편한 것만 생각하고 생색내는 ‘심야전력’만 공급하니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한전의 경영적 차원에서 고정비라도 회수하겠다고 낸 제안인데 그 내용을 보면 당장 중단해야 됩니다. 소비자들은 심야전기료가 왜 싼지 모르잖아요. 이제 내가 앞장서서 제동을 걸어야지요. 에너지전환센터 감사라는 직함까지 맡고 있으니 그냥 봐 넘길 수는 없지요.”

멋쩍게 웃었지만 믿음과 변화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렇잖아도 참여연대 새 보금자리를 꾸릴 때 친환경적이며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할 방안을 뜻있는 사람들과 고심했지만, 결국 자금 앞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시민단체가 건물을 갖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편견이죠. 이게 회원들의 정성으로 지어진 빚 덩어리이지 참여연대 건물입니까? 셋방살이 하면서 어디 제대로 일 할 수 있었나요. 이제는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으니 더욱 열심히,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선두주자가 되어야지요.”

이 보다 더 든든한 후원은 없지 싶다. 집안의 어른으로 아랫사람을 다독여주는 마음이 혈연을 능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백년지기 1호 회원답고, 회원모임의 장자격인 ‘산사랑’의 초대회장님다운 격려라 절로 힘이 솟았다.

‘칠순의 늦깎이 박사님’이라는 호칭 때문에 여기저기서 조명을 받다보니 예정을 초과한 시간은 쏜살같은 모양이다. 휴대전화가 다음 행선지의 지로꾼 역할을 하는 듯 울려댔다. 자리를 정리하며 의례적인 질문으로 참여연대 활동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과,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드렸다.

“의정감시센터에서 시민로비단 모임을 만들어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도록 집회도 하고,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벌이며 국회의원들을 몰아세웠지요. 결국 반쪽이긴 해도 부패방지법이 제정되었고, 활동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산악회(산사랑)도 조직하게 되었지요. 퇴직하고 다시 만난 세상이라 힘이 마구 넘쳤어요. 비판이라…. 굳이 이야기 하자면 회원관리를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했으면 해요. 회원들이 더 소속감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모색하고, 물론 많이 고민하고 있겠지만 말이에요.”

흔히 모범답안이 나올 법한 질문이었는데 격려와 칭찬을 앞세워 함께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엿보여 훈훈했다. 점심시간 간사들이 손수 차린 소박한 밥상에 서슴없이 둘러앉아 맛있게 점심을 드시고는, 굳이 ‘밥값’이라며 넉넉한 인심을 올려놓았다. 직장 일에 쫓겨 한 끼 밥도 편히 못 먹는 당신의 딸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오후에 간사들은 푸짐한 간식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덩달아 즐거웠다.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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