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10월 2007-10-01   1051

세계자연유산에 해군기지가 웬 말

고향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온 지도 어언 10년이 되어 간다. 제주에 대한 느낌은 제주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이국적인 풍광과 정취 그리고 청정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대한민국의 보고(寶庫)가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시절. 하루는 아버지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남제주군의 화순해수욕장에 가자고 하시길래 따라나섰다. 제주도 내 해수욕장이 모두 아름답고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지만 화순 해수욕장은 그 곳 모래의 특출한 부드러움과 산방산이 바로 앞에 보이는 수려한 경관을 지니고 있어 제주도민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열심히 물놀이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화순 해수욕장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한 무리의 공수부대원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완전군장을 한 채 나타난 게 아닌가? 해수욕장의 많은 인파는 금새 즐거움이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자, 괜찮습니다. 저희는 000 공수부대원들입니다. 오늘은 요 앞 산방산에서 레펠 훈련이 있어 방문 한 것이니 여기 찾아오신 관광객들께서는 개의치 마시고 물놀이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 무리의 대장인 듯한 자가 자신들의 느닷없는 방문으로 인해 해수욕장 분위기가 썰렁해짐을 직감했던지 자신의 검은 베레모를 멋적인듯 만지작거리며 해명 했다. 공수부대원들은 일렬로 열을 지어 움직이면서 곧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한참 뒤에 보니 그 높은 산방산 암벽을 레펠 하나에 의지해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 나와 달리 옆에 계신 아버지 표정이 짐짓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올 6월 제주도는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는 국가적 쾌거를 이뤘다. 우리나라에는 석굴암과 불국사 등 7곳의 세계문화유산이 있긴 하지만, 세계자연유산은 첫 사례이며 이웃 일본에 3곳, 중국 5곳 등 전 세계에서도 162곳 밖에 지정되지 않은 국가적 경사이다. ‘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됨으로써 제주도는 세계의 부러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세계적인 유산을 전 인류가 함께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막중한 의무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동북아 해군기지를 제주도 화순에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제주도민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지 않은가.

우리 정부는 겉으로는 세계자연유산의 쾌거와 영광을 전 세계에 알리며 홍보하자고 떠들지만, 정작 그 안으로는 지켜내고 보존해야 할 세계적인 자연유산 위에 군사기지를 세우려는 한심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전략을 위해 한강 이남인 평택으로 전초기지를 이동한다는 소식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끓은 지가 오래지 않은데, 세계 자연유산인 제주도마저 해군기지와 공군기지 그리고 미국의 MD(국가미사일 방어전략)체제로 편입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화순 해수욕장에서 맞닥뜨렸던 무례한 공수부대의 느낌이 현재 제주도의 상황과 오버랩된다.

윤형준 참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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