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0월 2013-10-02   1589

[읽자] 물건의 이야기, 제품의 쓸모

물건의 이야기
제품의 쓸모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10월의 책

 

아이디어 상품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 텐바이텐이나 펀샵에서 상품 정보 메일을 받아보는 사람이라면, 그게 아니더라도 온갖 상품으로 가득한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정말 쓸데없는 물건이란 걸 알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혹은 언젠가는 쓸데가 있을 거라는 (다른 사람이라면) 결코 믿지 않을 최면을 스스로 걸고는 지갑을 여는 자신을 발견해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아, 오해 없길 바란다. 그런 당신을 탓하거나 몰아세우려 하는 게 아니다. 도대체 어떤 물건이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놓고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 카드명세서 숫자를 높이는지, 그걸 만든 사람은 안 그래도 비좁은 우리 집구석이 언제 어디서 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물건으로 가득 찰 거라는 걸 예상이나 했는지, 나에게는 작은 슬픔과 후회를 남긴 이 물건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자는 말이다.

 

일상으로 자리 잡은 놀라운 발명품

 

제조업의 명가 독일에서 나온 『일상을 바꾼 발명품의 매혹적인 이야기』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흔히 쓰는 생활용품과 사무 용품부터 옷과 액세서리, 음식과 음료까지 400여 개에 이르는 물건의 탄생사를 다룬다. 이런 사전 형식의 책은 한 번에 전체를 읽기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곁에 두고 아무 곳이나 펼쳐보면 생각보다 재미난 이야기를 발견할 수도 있고, 아는 척하는 데에 도움이 될 소재를 많이 얻을 수 있어 유용하다. 지면 관계상 두 가지 이야기만 꼽아봤다.

 

요즘 한국에 국지성 호우가 잦아 장화가 유행인데, 고무장화의 원조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한다. 재미난 건 이들은 이런 신발을 만들기 위해 고무 즙을 종아리와 발에 붓고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수제화처럼 자기 발에 딱 맞는 장화를 가질 수 있었던 건데, 신고 벗는 데 어렵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이미 일상에 있었지만 상품으로 만들어지며 큰 성공을 거둔 물건으로는 훌라후프를 들 수 있다. 둥근 고리를 밀거나 던지거나 돌리는 놀이는 이집트 벽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1950년대에 미국의 거대 장난감 회사에서 ‘상품’으로 만든 훌라후프는 2년 만에 무려 1억 개가 팔려 눈을 돌리는 어느 곳에서건 이 둥근 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두의 삶이 그렇듯 물건에도 사연이 있고, 그 사연에서 지나온 삶을 발견할 수 있으니, 비록 지금 쓰지 않는 물건이라 하여도 우습게 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도 그러하듯이 말이다.

 

참여사회 2013-10월호 이미지 참여사회 2013-10월호 이미지

1 『일상을 바꾼 발명품의 매혹적인 이야기』
위르겐 브뤼크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 원제 Laptop, Laser, Litfaßsaule

2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 시즌 2』 조현경 지음, 어바웃어북

 

쓸모와 기쁨을 함께 전하는 별난 물건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은 ‘아이디어 큐레이터가 엄선한 비즈니스에 영감을 주는 제품 이야기’라 스스로 말하는데, ‘아이디어 큐레이터’는 남다른 호기심으로 남들보다 먼저 물건을 접하고 체험담을 전해주는 얼리 어답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기능보다 아이디어라는 관점에서 제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스토리를 전해준다는 의미다. 이 책은 이런 소개에 충실하게 재미와 웃음을 전하는 제품, 반전 아이디어로 고정관념을 깨는 제품, 감성 콘셉트로 소비자의 이성을 지배하는 제품 등 70여 개의 독특하고 신기한 물건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도넛 회사로 잘 알려진 크리스피 크림에서 자사 로고 색깔과 잘 어울리는 잔디를 이용해서 진행한 프로모션인데, ‘내 발 아래 작은 풀밭’이라 할 ‘잔디 슬리퍼’다. 신제품 홍보를 위해 진행한 이벤트였지만 온갖 열기로 가득한 도시 여름을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상쾌한 선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정말 잔디 위를 걷는 느낌인 데다가, 잔디를 키우듯 물을 주고 가꾸면 4개월 정도는 신을 수 있다고 하니 여름철 상품으로 제격이라 하겠다. 사쿠라 색SACRASAC도 기억에 남는데 지퍼 방식으로 가방을 세로로 이어 붙일 수 있어 ‘끝이 없는 가방’이라 불린다고 한다. 색깔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서 어떤 옷에든 어울리는 길이와 색조로 코디가 가능하다. 

 

쓸데없는 물건을 사고 후회하는 우리의 자화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이 정도면 지름신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해도 딱히 불만이 없을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서 구체화하여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노력으로 균형을 맞춰야겠지만 말이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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