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0월 2013-10-07   906

[경제] 리먼 브러더스 이후 5년

리먼 브러더스 이후 5년

 

 

5년 전 이맘때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다. 이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에는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이름이 붙었다.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가는 위기라는 뜻인 동시에, 전쟁까지 이어진 참담한 상황이 되풀이되는 걸 피했으면 하는 염원이기도 했다. 나는 당시에 ‘장기침체Long Recession’가 될 것이라고 썼다. 5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는 어디에 와 있는 걸까? 

 

유동성 함정도 불평등도 깊어져

 

우선 1930년대와 같은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과연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어서 대공황기에 일어났던 여러 정책적 오류(경쟁적 금융긴축, 그리고 보호무역)를 피해 나갔다. G20를 통해서 전 세계는 일제히 돈을 풀고 재정지출을 확대했으며 특히 미국은 ‘양적완화QE, Quantatitive Easing’라는 비전통적 금융정책을 세 단계에 걸쳐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2011년 주변국들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유럽의 위기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형태는 다르지만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도 사실상 무제한 채권 매입을 천명한 것이다. 세계는 마치 ‘노아의 방주’ 때처럼 유동성의 홍수에 잠겼다. 경제학 교과서의 그림대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케인즈 효과(이자율이 낮아져서 투자가 늘어남으로써 경기가 회복되는 경로)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불황기에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 얼마나 넓고 깊게 파일 수 있는지만 증명했을 뿐이다. 풀린 돈은 금융기관들로 몰려들었고 이제 월스트리트는 파산을 면하는 걸 넘어서 다시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실물 투자가 증가하거나 소비가 늘어나지는 않았는데 이미 실질이자율이 0의 한계zero bound에 도달했고 돈의 유통 속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돈은 금융부문과 상류 계층 사이에서 돌아다니며 미국과 신흥시장의 주가만 끌어 올렸다. 미국의 불평등 연구로 유명한 피케티와 사에즈 교수에 따르면 2009년에서 2012년까지 미국 경제성장의 95%는 상위 1% 계층이 누렸다. 적어도 현재까지 2011년 세계를 뒤흔들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에도 상륙한 ‘점령하라Occupy’ 운동은 이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지난 5년의 교훈

 

금년 6월, 버냉키 의장의 양적완화 정책 축소 예고로 세계금융시장은 마치 약간의 충격에도 무한히 출렁거리는 장난감 진동 진자처럼 ‘효율적으로’ 요동쳤다. 풀려난 돈이 몰려가서 흥청망청했던 일부 신흥경제 중 자원수출국은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됐다. 

미국 경제 성장률 회복의 내용도 의심스럽다. 그림에서 보듯이 2009년 10%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실업률은 금년 8월, 7.3%까지 떨어졌지만 고용률 역시 58.6%까지 추락했다. 430만 명, 즉 총 실업자의 37.9%가 장기 실업 상태이니 아예 구직 활동을 포기해서 통계상의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져 버렸다. 그 결과 실업률과 고용률이 동시에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실업률의 저하라는 청신호가 실은 미국의 하층 및 청년 노동자의 절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더 심해진 부의 양극화는 ‘부효과Wealth Effect(주가나 집값이 상승해서 민간의 소비가 늘어나는 경로)’마저 무력화시킨 걸로 보인다. 더구나 유럽과 미국 모두 재정긴축이라는 ‘마법’, 또는 정치적 협박에 걸려 있다. 유일하게 남은 수단인 재정정책마저 마음대로 구사할 수 없다. 

 

지난 5년의 교훈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위기는, 정부의 재정을 금융이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부와 소득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위기를 빠져 나갈 경로를 찾기 어렵다. 결국 일반 시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도 한국에는 시민들이 바로 그 방향, 즉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를 대선에서 요구했고, 스스로도 협동조합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정반대 쪽에서 ‘국민행복시대’를 찾고 있다. 연목구어!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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