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634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쌈짓돈인가?

정당운영과 국고보조금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세금을 공돈 쓰듯 마음대로 쓰는 관행이 달라지지 않는 한 정당운영의 민주화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국가예산 즉 국민의 세금인 ‘국고보조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당 수입원 중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지난 98년의 경우 이월금을 제외한 각 정당의 수입 총액이 2,076억 원이었다. 이중 당원의 당비에 의한 수입이 260억 원(12.5%)에 불과했던 반면, 국고보조금은 818억 원으로 전체 수입의 약 40%에 이르렀다. 이런 구체적 자료를 접하면 정당은 국민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비가 아닌 국민세금으로 정당을 운영한다? 기실 국가예산으로 정당을 지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정치자금의 음성적 수수에 따르는 정치부패를 막을 수 있고, 선거비용과 정당의 운영비 지출의 증가추세에 따른 정당의 재정적 압박을 완화하며, 정당간 또는 후보자간 자금능력 격차의 해소로 공평한 경쟁을 유도하여 유능한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등의 분명한 이점(현안분석 138호)”이 있다. 정당의 공익적 측면에 대한 지원이라는 취지로 대다수의 나라들마다 정당에 대한 국고지원을 하고 있다. 다만 국고보조금이 국민의 세금인 만큼, 투명하게 애초의 취지에 맞게 쓰여졌는지에 대한 회계감사는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보조금관련 제 법규나 정당의 보조금 사용에 대한 사후 관리·감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정치자금법의 전면적인 개혁이 요구된다.

지난 7월 참여연대 시민로비단 회원들은 과천에 있는 중앙선관위를 직접 방문해, “각 정당의 98년도 지출내역 및 증빙자료”를 열람하였다.

세 차례에 걸친 열람과정에서 우리의 국고보조금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 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라 선관위는 각 정당으로부터 보고받은 “수입·지출 내역과 증빙자료”의 열람을 공고하고, 공고일로부터 3개월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열람기간이 끝나면 매년 가을쯤에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라는 두툼한 책자를 발간한다. 그러나 이 책자 어디에도 증빙자료는 찾아볼 수가 없다. 여기에서 첫 번째 의문이 생긴다. 유권자들은 3개월의 열람기간 동안 과천을 찾아가 직접 열람하지 않으면, 각 정당이 보고한 지출명세와 증빙자료를 비교·검증할 기회가 없다. 또한 열람기간 중에는 복사나 촬영이 금지된다. 유권자가 낸 세금으로 지급된 국고보조금의 지출과 그 증빙자료의 공개를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최소한 3∼4년 동안은 누구에게나 공개하여 국고보조금 지출의 투명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한편, 국고보조금에 아무런 상한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유권자 1인당 800원씩을, 그리고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가 있을 때마다 추가로 600원씩을 각 정당에 지급하고 있다. 원하지 않더라도 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의 성인은 매년 800원을, 선거가 있는 해에는 1,400원 이상을 정당에 지원해주고 있는 셈이다. 지난 98년 한햇동안에만 총 818억 원의 국민세금이 각 정당에 지급되었다. 이는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과다한 액수이다. 독일의 경우, 연간 국고보조금의 절대적 상한(연간 2억 3,000만 마르크)과 ‘국고보조의 총액은 정당이 스스로 재정을 꾸려나가서 얻게 되는 수입의 총액을 초과할 수 없다’는 상대적 제한규정이 있다. 우리의 보조금제도도 상한을 두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증빙자료 없이 마음대로 쓴 국고보조금

부실한 회계보고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열람 과정에서 회계보고가 너무나 엉성한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국민의 세금인 국가예산으로 각 정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이 아무런 용도제한 없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그 회계보고 또한 조금 과장해서 계모임의 회계장부보다 허술하였다. 현행법 하에서는 열람기간중 복사가 허용되지 않아, ‘보조금 지출명세서’와 ‘증빙자료’를 하나 하나 대조해가며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을 필사하였다. 그 결과에 따르면, 98년 전반기 동안 각 정당에 지급된 보조금의 총액은 537억 원이었는데, 이중 증빙자료에 도장이나 서명이 없는 경우가 219억 원(40.8%), 지출결의서를 제출한 경우가 126억 원(23.4%), 아예 영수증이 없는 경우도 1억 원(0.2%)이나 되었다. 이외에도 자체 영수증을 제출한 경우가 3.7%, 영수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0.05%로 조사됐다. 각 정당이 선관위에 제출한 보조금 사용 명세서와 증빙자료의 68%가 부실하다는 결론이다. 국민의 세금인 국가예산으로 지급되는 보조금의 투명한 집행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임에도 회계보고를 이렇듯 허술하게 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지난 19년 동안 국고보조금의 수입·지출내역에 대한 감사원의 회계감사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참여연대는 지난 7월 21일 감사원에 ‘각 정당의 98년도 보조금의 수입·지출내역에 대한 회계감사’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는 감사청구서를 접수하는 한편, 중앙선관위에 의견서를 보내 정치자금법 24조에 따라 회계보고를 허위로 한 정당에 대해 보조금의 지급을 중단, 혹은 감액할 것을 주문하였다.

국고보조금이 용도에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되고 있는 현실 또한 문제다. 정치자금법 19조에는 보조금의 사용용도를 인건비, 사무용품비, 정책개발비 등등으로 열거하면서 ‘기타 정당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고 명문화해 사실상 용도제한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는 보조금의 사용범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인건비나 임대료, 사무용품 등 정당 운영비는 당비나 후원금, 기탁금 등으로 충당하고, 보조금은 애초의 취지에 맞게 정책개발비 등 정당의 공익적 활동에 쓰여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고보조금의 용도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이뤄져야만 한다.

상한액 제한하고 감시 강화해야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고보조금 제도는 ‘지급액의 상한 규정’, ‘사용 용도의 제한’, ‘회계자료의 공개 및 감사’ 등 세 가지의 방향으로 전면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국고보조금의 상한을 정하고, 그 사용용도를 정책개발비 등으로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정당개혁이라는 연쇄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당의 수입이 지나치게 보조금에 의존함으로써 당원을 늘리고 후원금 모금에 주력하지 않고 정당의 체질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와 같이 의석수에 따른 배분이 아니라 정당 지지율에 따라 배분하고, 국고보조금의 총액제한과 상대적 제한을 두는 방식을 도입하여야 한다. 상대적 제한은 보조금을 각 당이 모금한 후원금 이상으로 지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매칭펀드(Matching Fund)라고도 하는데, 우리의 경우 당원의 당비와 국고보조금을 연동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지나친 보조금 의존으로부터 나타나기 쉬운 정당의 체질 약화를 방지하는 한편, 정당 지지율을 근거로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정책 대결을 도모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가예산으로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이 허술한 관리 속에서 정당의 쌈짓돈처럼 운영되는 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특히, 98년도 각 정당이 선관위에 보고한 회계자료가 부실함이 확인된 이상, 감사원은 정당의 국고보조금 지출내역에 대한 회계감사에 착수해야 할 것이며, 선관위는 회계보고를 허위로 한 정당에 대해 보조금을 감액하거나 지급 중단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강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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