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9월 1999-09-01   746

나쁜 방송이다 싶으면 바로 채널 돌리는 게 시민의 힘

개그맨 남희석

개그맨 남희석. 그를 보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 시종일관 장난치며 사람을 웃기는 이. 그러면서도 가끔 의미있는 말을 툭툭 던진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 시청자의 방송참여. 열한 살 때 ‘희극인’의 꿈을 품고 상경했고, 평생 남을 웃기며 살 거라는 그를 만나보자.

“네 명이 있다 보면 그중 꼭 한 명은 웃기는 사람이 있어요. 그 넷이 열, 스물이 되면 그 무리 중 제일 웃기는 왕웃음꾼이 또 나오죠. 그렇게 남을 웃기는 사람은 자기 말과 행동에 사람들이 즐거워하니까, 거기에 우쭐해서 계속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해요. 남을 웃기면서 얻는 쾌감이 죽이걸랑요. 고등학교 때도 그런 애들이 꼭 한 명씩은 있잖아요. 그게 바로 저예요.” 개그맨 남희석(29세). 그는 그의 나이 열한 살때 ‘희극인’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충청도에서 상경했다. 혈혈단신으로 올라와 설장고와 드럼을 배우고 짬짬이 연극을 하면서 개그맨이 되기 위한 꿈을 키워왔다. ‘아, 평생토록 남을 웃기면서 살 수 있다면….’ 혜화동 소극장가를 배회하며 가슴깊이 새겨왔던 그의 소원은 지금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그는 한국 개그계에서 손에 꼽히는 톱스타가 되어 TV브라운관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폭염이 아스팔트를 녹이던 한여름, SBS 등촌동 공개홀로 그를 찾아갔다.

“어! 여기 요즘 굉장히 일 많이 하는 데 아니에요?”

명함을 내밀자 그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이렇게 말한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참여연대 활동을 잘 전해 듣고 있는데, 참여연대 같은 데도 연예인 인터뷰를 하냐며 토끼눈을 떴다.

“여기에 회원 가입하고 싶다고 생각 했는데….”

그래요? 당장이라도 회원가입카드를 꺼내려던 찰나, 그는 찬물을 확 끼얹는다.

“그런데 말이에요. 연예인이라고 하면 행사같은 데 맨날 나오라고 할까봐 그게 겁나서 못하겠더라구.”그의 예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이 가진 장기를 가지고 시민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법인데…. 그러나 그가 ‘행사알레르기’를 가질 만한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저, 얼마전에 뉴스 보다 너무 분해서 술 한 병을 혼자 다 마셨어요. 경기은행 퇴출로비로 최기선 인천시장이 불구속 기소됐잖아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날 밤 쉬려고 일찍 들어갔다가 열받아서 술만 엄청 마셨다니까요. 왜냐, 제가 그 사람 선거운동 했거든요. 부평까지 가서 아줌마들 앞에서 인사하고 피켓 들고 왔다갔다 했는데…, 으이구 씨. 얼마나 억울하던지….”정치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아는 ‘정치권’이라야 고작 김형곤 뿐인데(정치코미디언이니까) 선거 때만 되면 왜 그렇게 불러내서 인사하라 그러는지 알 수 없단다. 그리고 선거운동 해주면 그만큼 정치 잘 해서 일한 보람을 느끼게 해줘야 하는데, 보람은커녕 실망만 떠안겨주니 돕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진다는 것. 그래서 그는 종종 정치권 부패현상을 지켜보면서 그나마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아마 참여연대 같은 데 없었으면 더 답답했을 거예요. 전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아마 한국사회에 시민운동하는 사람들마저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진짜 엉망진창이 됐을 거다,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부정부패와 진실왜곡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시민운동 하시는 분들이 항상 존경스러워요. 저처럼 비겁한 사람은 참여도 못하면서 시민운동가들이 더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모순도 갖고 있지만 말입니다.”그는 어떤 부채의식을 가진 사람처럼 입이 마르도록 시민운동가들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가끔 텔레비전에 비치는 시민운동가들의 눈빛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가끔 뉴스나 TV토론 보면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정부정책이나 재벌들에 대한 문제제기, 뭐 그런 것 하잖아요. 그때 나오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참 느낌이 좋아요. 절대 타협할 것같지 않은 그 눈빛….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요. 저 사람들 운동한답시고 얼마나 부모 속 썩였을까?” 그는 탁월한 재담꾼이었다. 진지하게 말하다가도 뜬금없는 말과 표정으로 일순간 웃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들었다. 말·표정·몸짓 3대 기법으로 웃기는 개그맨 남희석. 그의 주된 개그패턴은 Pun(말장난)이다. 말로 사람을 잡아끄는 ‘찰나적이고 일회적인 웃음’. 그는 스물여섯 정도 된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일순간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단다. 그러나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고 아이도 있게 되면(빙긋한 웃음) 그때부터는 정말 좋은 개그를 하고 싶단다. 그러나 지금은 좀 어려울 것같다. 이유는 아직 인생에 대해 깊이있게 소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인생을 더 살다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일 것 같아요. 김혜자 선생님 정도는 돼야 진심으로 보이지 않을까…. 좋은 생활도 할 수 있을 것같고. 지금은 좋은 생활…, 대신에 <좋은 사람들> 하고 있으니까, 쩝!”하하하. 사진기자도 매니저도 <멋진만남> PD도 모두 웃어버렸다. 그 순간, 남희석 씨는 짐케리처럼 표정을 바꿔 ‘개그맨의 문화간섭론’을 설파한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중성 있는 개그맨들이 사회문화에 깊이 개입해 ‘문화간섭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희극인’이 가야할 마지막 길이라고 봅니다. 저는 교수나 변호사 등 지식인이 내뱉는 독설보다 개그맨이 방송에서 한 마디 하는 게 훨씬 영향력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물부족 시대에 대비해 우리가 뭘 해야 하고,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 말들을 쏟아붓는 것보다 개그맨 하나가 나와서 ‘여러분, 아프리카는 지금 물부족에 시달립니다. 우리 모두 물을 아껴씁시다’ 한 마디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희극인’들도 공익에 나설 수 있는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모든 개그맨이나 연예인들이 공익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평소엔 연예인들을 ‘딴따라’라고 폄하하다가 무슨 사건이 터지면 ‘사회의 모범이 돼야 할 공인이… 어쩌구’ 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가 정말 못마땅하단다. 그리고 그는 기본적으로 연예인들에게 도덕성이나 사회성을 기대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연예인들은 절대 사회의 모범이 될 수 없어요. 에 나오는 애들 말고는 전부 부모가 하지 말라는 짓하면서, 무지하게 부모 속 썩이면서 연예인 된 거라구요. 그리고 저는 시청자들이 연예인과 방송을 대하는 태도도 좀 바꿨으면 해요. 예컨대 음주운전하다 걸려 사회봉사명령받은 연예인이 TV에 또 나온다, 그럼 어떤 얼굴로 TV에 나오는지 보는 거예요. 나왔는데 반성하는 빛은 전혀 없고, 참 가관이다. 그럼 채널을 돌리면 돼요. 나쁜 방송이다 싶으면 빨리 보지 말아야 해요. 이젠 시청자들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있는 연예인이 나와 진행하는 프로다, 그럼 안 봐서 시청률 떨어뜨리고, 프로그램 없애고, 그 연예인 못나오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는 시청자들이 좀더 방송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말한다. 말로만 항의할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좋은 방송이 되도록 시청자가 일정한 역할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방송을 위해 시청자와 제작자가 동시에 노력하는 길이라고….

개그맨 남희석. 시종일관 장난치고 웃기다가도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평생 남들을 웃기며, 웃기기 위해 살고 있다는데도, 그 말이 전혀 웃기게만은 들리지 않았다. 언젠가 한 선배가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재담꾼 남희석, 그는 스튜디오로 남들을 웃기러 들어가면서 한 마디 한다. “오늘 참 즐거웠어요. 가장 안정적인 인터뷰였던 것같아요.” 그때, 속말로 나도 그에게 한 마디 건넸다. “남희석, 당신이 있어 우리가 참 즐겁습니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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