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3월 2011-03-01   1453

위대한 시민-시지프스가 꾸는 1000일의 꿈

600여 일째 1인 시위 중인 시지프스 님


시지프스가 꾸는 1000일의 꿈

강지나
참여사회 편집위원

600여 일째 1인 시위를 하며 그 상황을 아고라와 다음 카페에 꾸준히 알리고 있는 청년이 있다. 그의 닉네임은 ‘시지프스’이다. 닉네임은 대학시절 알베르트 까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고 만들었다. 시지프가 힘들게 산꼭대기로 올린 바위는 다시 제자리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시지프는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청년 시지프스도 600여 일 째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한다. 행인들은 힐끗 보며 지나치지만 시지프스는 산꼭대기에 바위를 올리듯이 사람들 앞에 선다. 그와 함께 하루만 1인 시위에 동참해 보면 당신이 갖고 있는 시위에 대한 편견들이 없어질 것이다.

  1인 시위는 다른 시위보다 쉽다는 시각이 있다. 필자는 그와 함께 을지로입구역에서 1인 시위에 참여했다. 찬바람이 들이치는 지하철 입구에 서있는 것은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오늘은 별로 추운 것도 아니에요. 작년과 올 겨울은  영하 10℃까지 내려가는 날이 많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서 있으면 칼바람에 얼굴이 찢어지는 거 같아요.”(웃음)

  시위를 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역장이 경찰을 대동해서 방해한 적도 많았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1인 시위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혼자 서 있으니까 얼굴이 고스란히 노출돼 부담이 크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시지프스는 600여 일 동안 7시부터 9시까지 을지로입구역에 서서 1인 시위를 해왔다.

  “처음에는 이렇게 긴 기간 동안 거리에 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동참했던 사람들이 중간에 그만두면서 저도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촛불이 죽고 활동이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오기가 발동했죠. 1000일이 되는 날까지 꾸준히 할 겁니다.”

  오가는 시민들은 1인시위에 관심을 보일까? 필자가 현장에서 관찰한 바로는 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피켓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데이트하던 젊은 커플,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도 그의 피켓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와 함께 1인시위에 동참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었어요. 예쁘게 외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미적 감각이 발달해 외모에 관심 있는 것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잖아요. 1인시위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예상외로 외모가 깔끔하고 젊다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아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민은 누구일까?

  “미디어법 반대 시위를 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 한분이 오셔서 ‘자네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이런 행위는 멋지다, 응원한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런 사람이 진짜 보수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을 만났다는 게 기뻤어요.”    

  그는 사실 컴퓨터게임을 개발하는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일이 몰릴 때는 야근이 많아 시위를 끝내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날이 많다. 그가 계획한 인생설계에 의하면 지금쯤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있어야 하지만 당장은 1인 시위를 하느라 미뤄둔 상태다. 결혼 적령기여서 연애도 하고 싶고, 결혼 하라는 부모님의 압박도 거세다. “가끔 나는 내 인생은 제쳐두고 여기 서서 뭐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시지프스는 학창시절 공부만 하고 책에 빠져있었던 문학 소년이었다. 성격도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동아리 활동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불의를 보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신념은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그간 쌓여왔던 울분들이 그를 매일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게 했고,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활동을 아고라에 알렸다. 하지만 조직이나 단체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일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때 활발하던 단체들이 와해되는 것을 많이 목격하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1protest)도 사람들을 조직화하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제가 1인 시위 한다는 것을 알리고 동참하려는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공간이죠.”

  가장 궁금한 것. 그가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피켓에 쓰여 있는 구호는 ‘4대강 반대’, ‘부자감세 90조 원’, ‘결식아동 지원예산 삭감’ 등 시사적인 이슈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촛불이 사그라지면서 말로만 진보를 떠드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들은 ‘다 글렀다.’ ‘누구누구 때문에 안 된다’면서 냉소와 무력감을 드러냈어요. 하지만 저는 그들이 바로 촛불정신을 좀먹는 암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시지프스는 1인 시위를 통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의 1인 시위는 반MB 구호 뒤에 숨어서 나약한 위선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는 1인 시위를 하다보면 자신을 지지해 주는 시민을 만난다. 추위의 고통과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으면서까지 거리로 나선 600여 일. 긴 시간동안 그는 소중한 것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1인 시위 참선’이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하루에 1~2시간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긴 어렵잖아요. 그런데 1인 시위 할 때는 피켓을 들고 가만히 있어야 하니까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참선을 하듯이 여러 가지를 성찰하고 정리할 수 있었죠. 1000일간 1인 시위하고 나서 그것을 책으로 펴 낼 생각입니다.”

  시지프스에게는 꿈이 있다. 1인 시위를 시작한지 1000일이 되는, 2012년 4월에 1000명이 서울 곳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2012년 4월, 참여연대 회원들도 그날 함께 동참해보시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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