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1월 2001-01-01   707

정치도 운동도 감동이 필요합니다

영화배우 송강호

“이젠 더 이상 NO.3가 아니다!”

송강호 개인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인트로에 뜨는 첫 번째 메시지다. 맞다. 영화배우 송강호는 더 이상 넘버3가 아니다. 영화 <반칙왕>에 이어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연속으로 주연을 맡았고, 그로 인해 부산영평상 남우주연상을 석권했다. 한 월간지는 그를 국내 최고의 배우로 꼽았다. 더 이상 넘버3가 아닌 그는 요즘 세상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겨울이라고 하기엔 너무 따뜻한 오후,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걷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5분 가량 늦게 도착한 송강호 씨는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전기난로에 신경을 쓴다. “어, 이거 왜 이래? 고장났나? 안 되네. 아이, 정말…춥죠?” 별로 춥지 않다고 해도 그는 계속 전기난로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매니저가 둘씩이나 번갈아 들어와 전기난로를 이렇게 저렇게 만져본 뒤에야 빨갛게 불이 들어오니 “된다, 된다. 아, 이제 되네. 고장 안 났구나.” 그렇게 아이처럼 좋아할 수가…. 그 순간 윤정은 사진기자가 “촬영하기 좋게 옥상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주문했다. 송강호 씨는 “그럼 그럴까요?” 하며 벌떡 일어났다. 전기난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셋은 녹차 잔을 들고 줄줄이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적절치 않은 장소임을 확인하고 또 다른 파라솔로 갈까 하다 전기난로가 있는 그 자리에 그냥 앉기로 했다. 타인에 대한 작은 배려를 잊지 않는 남자. 엊저녁 포장마차에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단한 인생을 함께 씹었던 선한 선배 같았다. 하지만 약간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가능한한 공식적 답변 선에서 마무리하려는 그를 바라보면서 ‘아, 이 사람…, 처음부터 너스레를 떨며 쉽게 친해질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적어도 몇 번의 왕래는 있어야 진면목을 보여줄 것 같은 진중한 사람. 아직도 그를 코믹 배우로 기억하고 있다면, 과감히 ‘새로고침’ 키를 누르라! 그는 그다지 웃기는 남자는 아니니까.

550억? 차라리 굶는 애들 밥을 먹여라

“요즘 경제 문제가 참 심각한 것 같아요. 행복의 수치가 돈과 관련되니까요. 제 친형도 구조조정 문제로 실업의 위기에 처해 있어요. 한 가족 중 한둘은 실업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 같더군요. 저희 집도 예외는 아니죠.”

최근 절감하는 가장 큰 사회적 이슈가 뭐냐고 묻자 서둘러 답변한 그의 말이다. 행복의 수치가 돈으로 결정된다는 말이 참으로 안타깝게 들려 그에게 물었다. 무명시절의 송강호와 톱스타 송강호, 무엇이 다르냐고.

“자본의 이중성을 느끼죠. 어쩔 수 없는 간사함 같은 것…. 저 자신도 달라지는 걸 느껴요. 예전에 같이 생활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과 만나도 이젠 할 말도 없고, 서먹서먹해요. 변화된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날 보며 이게 인간이구나, 자괴감도 들죠.”

그는 앞으로 돈을 많이 벌면 불우한 아동을 돕는 데 쓰고 싶단다. 결혼 전엔 못 느꼈는데, 막상 아이가 둘씩이나 생기니 지나다니다 보는 아이들도 모두 자기 자식처럼 느껴지더라는 것. 특히 결식아동 얘기를 들으면 본인도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해 “일단 좀 잘 먹여야 하는데…” 하며 한숨이 난단다. 그럴 때마다 정치권에 대해 치미는 분노는 참을 수 없는 지경.

송강호 씨는 노태우정권 시절 강제로 딱 한 번 ‘1번’ 찍은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정치는 정말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정치불신 때문. “국민 고생하는 걸 정치인이 피부로 느낄까요? 점점 더 정치허무주의에 빠지게 돼요. 국민들의 생각이 이 정도면 정치인도 한번쯤 다른 생각을 해볼 만하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지난 4월에 있었던 총선연대 활동은 유권자에게 신선한 청량감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그나마 시민단체들이 정치인을 감시하니까 이 정도지 아니면…, 말을 줄이던 그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희망을 시민운동에서 본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운동가들도 간혹 실망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사람이면 한번쯤 실수할 수 있는 건데, 그걸 너무 심한 도덕적 잣대로 재고 있고, 오히려 ‘병 주고 약 주는’ 언론이 더 심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더니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을 했다.

“서울 조형물 문제는 어떻게 보세요? 얼마 전 뉴스 보는데 앵커가 그러더군요. 파리 하면 에펠탑,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 서울 하면 딱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지름 200m짜리 대형 조형물을 한강변에 세우기로 했다. 거기에 돈 550억을 투자한다. 서울의 고리를 나타내는 동그라미로서…, 내가 정치인이라면 그 돈으로 굶는 애들 밥 든든히 먹이고, 한강변에 차라리 나무를 심겠어요. 외국인들이 그 조형물을 보고 ‘와, 서울 멋있다!’, 난 절대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맨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에 동그라미 하나 세워 놓고 그게 통일을 열망하는 겨레의 소망이다? 외국인도 웃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이 문제야, 정신!”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국민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다면 그런 아이디어는 나올 수 없다는 것. 다시 100만 실업시대가 되고, 경제는 곤두박질치며, 교육문제는 점점 심각해져 이민가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도 보수정치인들은 아귀다툼만 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라고 통탄한다.

쇠파이프를 든 ‘파업전야’ 사수대원

그가 이처럼 한국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그가 가진 ‘진보적’ 성향 때문이다. 80년대 중후반부터 부산지역에서 민족극연합회 활동을 했던 송강호 씨는 쇠파이프를 들고 16m영화 ‘파업전야’를 사수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부산대에서 철골 쌓아 막고 쇠파이프를 든 채로 경찰과 대치했죠. 그 무더위에 좋지 않은 화질인데도 수백 명의 학생들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보더군요. 마지막에 주인공이 몽키스패너를 들고 ‘나가자!’ 할 때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구호를 따라 외치는 걸 보면서 와, 저게 바로 영화의 힘이구나 했습니다.”

그는 명필름의 이은 감독을 좋아한단다. 『DMZ』이란 소설 한 권 달랑 들고 찾아와 ‘영화로 만들자’고 했을 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지만, 이은 감독은 ‘파업전야’ 만들었던 가락이 있기 때문에 “좋다, OK”한 거란다.

“지금은 비록 상업영화도 만들지만 선배들 맨날 통일운동 운운할 때 이은 감독은 ‘JSA’ 만들잖아요. ‘JSA’ 하나면 집회 수천 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부산에서 문화운동하다 집어치우고 서울 연우무대로 온 것도 이유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대중적 표현과 언어로 던져야지 맨날 목소리만 높이면서 거기에 사람들이 감동받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게 마뜩찮았던 것.

“전교조 활동의 정당성을 연극으로 담으려 했어요. 그때 연극만의 에너지로 왜 전교조가 옳은가 관객들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데, 그냥 전교조의 활동이 옳다, 이것만 주장하는 거예요. 그래서는 대중과 공감하기 어렵잖아요.”

시민·사회운동이 지금보다 더 대중적인 언어로 세상과 만날 때 우리 사회는 좀더 유연해질 거라고 그는 말한다. 때로는 30년씩 감옥에 있다 나온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일일감옥 체험하는 그에게 “힘들지” 할 때 느끼던 부끄러움 때문에 소모적인 영화보다는 뭔가 우리 역사와 사회를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는 리얼리즘 영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박찬욱 감독의 오랜 꿈 중의 하나가 인혁당 사건을 영화화하는 거예요. 저도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며 정확히 직시해야 할 진실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때로는 배꼽 빠지게 웃기고, 때로는 눈물범벅이 되도록 울게 만드는 우리시대 최고의 배우, 송강호. 평범한 우리와 닮아 더 정이 가는 그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언제 만나 소주 한잔….”

“좋지요. 5일 전에만 연락 주세요.”

상상만 하면 그대로 된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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