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1월 2001-01-01   800

주민은 들러리 무늬만 자치

‘누구를 위한 지방자치제인가’라는 물음은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라고 묻는 것처럼 이미 식상한 우문일까. 하지만 ‘누구와 무엇을 위한’ 즉 ‘처음 그 일을 하게 된 목적’에 얼마나 내실 있게 도달해 가는가를 묻는 일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물음인 동시에 가장 날카로운 비판일 것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시민의 투표에 의해 벌어지는 지방선거. 하지만 자치단체장들은 시민들에게 만족할 만한 정치적 변화를 가져다 주었는가. 엄연한 자치단체의 평가주체인 시민이 그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평가의 주체인 시민은 또 어떠한가. 일부 시민들이 정책이나 공약보다는 인맥이나 이익에 의해 후보를 결정하고 이를 표로 연결시킴으로써 타락·부정선거를 낳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치인 못지않게 시민들도 바른 의식을 가져야 함은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시민들이 지자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평가하기 전에 “유권자 의식만큼 단체장의 의식도 따라가기 때문에 유권자의식이 향상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야말로 지방정치의 질을 높이는 직접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각 자치단체의 행사와 행정에 대해 시민들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직접 시민들을 만나보자.

지자제가 실시된 이후 박람회 등 각종 행사는 자치단체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 버렸다. 경주문화엑스포, 과천세계마당극제, 강원국제관광엑스포, 광주비엔날레, 하남환경박람회 등. 지방자치단체들에서는 자치단체의 예산을 확보하고 각 지역에 고유한 문화행사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너나없이 국제적 행사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국제○○’이라고 이름붙은 이 행사들은 종종 지자체 생색내기(?) 사업이라는 세간의 빈축을 사기도 한다.

“그저 돈 되나 싶어 너도나도 다 엑스포냐? 엑스포 소리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

경주 문화엑스포 사이트에 올린 한 네티즌의 절규아닌 절규는 그런 문화행사들이 지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 지 단박에 알 수 있기도 하다. 우선, 경주 문화엑스포에 대한 경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민 없는 경주문화엑스포

경주문화엑스포는 올해로 2회째 치러지고 있다. 1회를 마치면서 경주문화엑스포는 사실상 많은 반성을 해야 했다. 문화엑스포에 참여한 외국의 유물이 거의 모조품이었으며, 행사의 진행과정 등이 매우 어수선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엔 좀 차원이 다른 문화엑스포를 펼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결과는 지난 행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조직위원회 구성부터가 전문성을 결여한 낙하산 인사였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행사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이 아무런 문화적 컨셉도 없는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장이었다는 것부터가 시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전문경영인이 아닌 국가안전기획부 출신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장이 ‘문화엑스포’ 사무총장을 맡았을 뿐 아니라 조직위원회 직원들도 대부분이 행정 공무원이어서 독특한 문화의 향연을 꾸릴 적임자라고 보기 어려웠다는 게 이 시민들의 평가다.

게다가 행사를 열 때마다 진행자가 새로 교체되다 보니 행사의 연속성을 기하기도 어려웠다. 2000년에는 특별히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협력위원회가 조직되었지만 직접 일선에서 뛸 발은 턱없이 부족했고, 고작 허드렛일 정도를 함께 하는 수준이었다.

“엑스포와 관련해 경주시민이 주체가 되지 못했고 지방정부가 이 일로 이익 본 부분도 거의 없다.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행사기간 중에 주말마다 시가지행사를 했지만 홍보가 부족해 집안잔치에 불과했고, 실제로 돈을 번 사람은 시민들이 아니라 떠돌이 엿장수라고 생각한다.” 경주 시민 이진호 씨(31세)는 경주문화엑스포에 대해 낙제점을 부과했다.

또, 엑스포 홈페이지에 ‘퇴출돼야 할 문화엑스포’라는 글을 올린 이는 “세계문화를 한자리에 모은 것이 과연 세계 최초인가? 루브르 박물관에 프랑스 문화재만 있고 대영박물관에 영국 문화재만 있는가? 세계 최초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한자리에 모았다고 하는 것은 세계인으로부터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며 겉치레 행사에 불과한 경주문화엑스포를 질타했다.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 주민을 들러리로?

97년 세계연극제 행사로 시작된 이 행사는 지난해 지역 독립행사로 바뀌어 올해 3회 잔치까지 치렀다. 이쯤 되면 서서히 전통을 쌓아가며 내실 있는 세계적 축제로 발돋움할 때이다. 그런데 민간단체가 잘 꾸려온 이 행사를 관이 이끌어 보겠다고 뒤늦게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와 한국연극협회 주최로 열리던 이 행사에 경기도와 함께 예산만 대던 과천시에서 올해 초 갑자기 새 운영규정안을 들고 와 행사를 주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마당극 집행위는 이에 사무국을 철수하고 “집행위를 들러리로 만든다면 따로 나가 마당극큰잔치를 벌이겠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민간 주최 행사를 자치단체 주최의 행사로 전환하려던 과정에서 벌어진 이 해프닝 아닌 해프닝은 “성공적인 지역행사로 자리매김되면서 연륜을 쌓아 마당극큰잔치가 잘 되길” 바라던 시민들에게 불안감만 안겨주었다.

과천시는 부자동네로 소문난 도시다. 재정자립도(2000년도 기준) 95.2%, 전국 아파트촌 주거환경 1위(대한주택공사 선정),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1위(국토연구원) 등 과천은 통계 수치상 모범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주민들 또한 모범도시로 인정하고 있느냐, 그것은 아니었다. 올 여름에 시 산하 과천시민회관에서 수영장 회원권 등의 이용료를 최고 43.8% 기습 인상해 벌어진 소동은 과천시가 돈벌이에 급급한 자치단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한인입양아홍보회를 운영하기 때문에 행정기관과 부딪쳐야 할 일이 많은 한연희 씨(43세)는 “과천은 주민들을 위한 복지사업에서조차 돈벌이를 하고 있으며 복지문제를 행정적으로 개선할 의지조차 없는 것 같다”고 평한다.

물 건너간 용산구청장의 소파개정운동

지난 3월 주한미군을 상대로 한 성장현 전 용산구청장의 싸움, 그것은 자치단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작은 희망의 불씨였다. 주한미군이 지난해 용산구의 허가 없이 드래곤호텔 신축을 진행한 것을 안 성 구청장은 “주한미군이 불법건축물 시공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중장비를 동원해 강제철거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한미군이 한국 땅에서 임대료 한푼 안 내고 공여지를 맘대로 쓰고 있는 것을 용인한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에 대한 행정기관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 구청장의 활동에 많은 시민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냈지만 결국 구청장은 얼마 전 부정부패를 저지른 단체장이라는 이유로 벌금 100만원형을 받고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용산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단체장이 부정한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소파(SOFA)개정운동이 한풀 꺾여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묘선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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