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5월 2019-05-01   1097

[통인뉴스] ‘로힝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

“‘로힝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

존재를 부정당한 이들과의 연대

 

글. 전은경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월간 참여사회 2019년 5월호 (통권 265호)

 

“그녀의 남편은 미얀마군의 총에, 둘째 아들은 정글도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외신 통역으로 일했던 첫째 아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총살당했다. 가족의 시신마저도 미얀마군이 불태워버렸다. 그래서 그녀의 눈에는 항상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조진섭 작가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과 글. 두 다리를 세우고 앉아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온갖 짐들로 가득 차 있는 어두운 방에 앉아있는 그녀의 슬픈 눈을 마음에 담던 날, 국경을 넘은 연대를 고민했다. 로힝야 난민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는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진행 중인 제노사이드

로힝야는 미얀마 북서부 아라칸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 소수종족이다.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박해는 지난 40여년 간 지속되고 있다. 그 고통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불교도가 주류인 미얀마 구성원 대부분은 로힝야를 ‘벵갈리’라고 부른다. 벵갈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신분상으로 불법체류자로 취급한다. 같은 미얀마 땅에 살고 있지만, ‘다른 종족’으로 보는 것이다. ‘이슬람 침략자’ ‘바이러스’ ‘칼라(Kalar, 검둥이)’ 등 차별과 혐오의 말로 부르기도 한다.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아웅산 수치 역시 “로힝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Don’t use the word Rohingya)”며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로힝야가 인근 지역을 방문하려면 허가를 받거나 통행료 등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결혼도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이도 마음대로 낳을 수 없다. 산아제한 조치의 대상이다. 임신을 하면, 안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낙태를 해야 한다. 그러다 목숨을 잃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교육과 생업의 기회도 박탈당했다. 공직에 진출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시민권은 박탈되거나 부여되지 않았다. 

 

2015년에는 선거권과 피선거권마저 박탈당했다.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 무슬림들의 성지 모스크를 파괴하기도 하고, 이들의 거주지를 초소로 둘러쌓아 ‘열린 감옥’ 또는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여기에 더해 미얀마 군부는 2016년 경찰 초소를 공격한 로힝야 무장 세력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에 대한 구타, 살인, 고문, 자의적 구금과 처벌, 집단 강간, 방화, 재산약탈 등을 자행했다. 2017년에도 대규모 인종청소 작전으로 수만 명을 살해했다. 마을은 불에 탔고, 로힝야 난민들은 집단 강간과 폭행의 피해자가 되어 피난길에 올랐다. 로힝야에 대한 혐오와 차별, 탄압은 이렇게 사회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죽여야만 대학살이 아니다. 이러한 로힝야에 대한 박해와 학살은 한 연구결과가 보여주듯 ‘천천히 진행되어 온 제노사이드❶(The slow-burning genocide)’다. 유엔진상조사단(UN Independent International Fact Finding Mission on Myanmar) 마르주키 다루스만 단장은 유엔안보리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제노사이드’라고 했다. 잔혹행위는 계속되고 있고, 학살은 현재진행중이다. 미얀마를 떠나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난민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바뀌는 것은 없다. 로힝야의 박멸을 주장하는 미얀마 군부도 미얀마 대중의 견해도 그대로다. 로힝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에도, 여전히 수십만 명의 로힝야 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한국 정부의 대응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얀마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여전히 희박하다. 정부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1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은 미얀마 정부가 지난 7월 설립한 ‘독립적 사실조사위원회’의 활동을 기대하며, 난민들의 안전하고 조속한 귀환을 희망한다”고 했다. 또 “라카인 지역 재건에도 지속적으로 기여하면서 미얀마 정부를 비롯해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쉬움이 크게 남는 발언이었다. 로힝야를 박해해 온 미얀마 정부의 입장을 사실상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얀마 정부가 자체적으로 운영했던 조사위원회는 전직 고위 군인 등으로 구성되어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어려웠다. 국제적 조사요구에 대한 방어막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미얀마 정부는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의 입국조차 거부하고 있다. 언론과 인권단체들의 로힝야 학살 현장 방문조사도 불허하고 있다. 유엔의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없으며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의 조사위원회가 독립적이고 공정하며 국제기준에 따라 수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미얀마 정부의 자체조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로힝야 학살이 벌어진 라카인 지역의 재건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극명하게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 학살 책임을 부정한 채 라카인주 학살 현장 방문조차 불허하는 대신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라카인 지역에 대한 투자만을 강조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학살 현장을 지우기 위해 로힝야들이 거주했던 마을들을 밀어버리고, 그곳에 보안군과 타 지역 불교도들의 거주를 위해 수백 채의 새로운 주택들을 짓고 있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조사와 증거 보존 등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채 국가 주도의 증거인멸이 진행 중인 것이다. 

 

미얀마에 대한 투자 독려 멈추고, 국제사회와 협력해야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월, 주미얀마 한국 대사는 라카인주 투자박람회에 참석하고,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라카인주가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직접 와서 볼 수 있도록 잠재적인 투자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며 투자를 독려하고 나섰다. 실제로 라카인주의 주도인 시트웨(Sittwe)에서 한국 기업 ‘BXT인터내셔널’은 주 정부와 합작해 36헥타르 규모의 해안신도시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국 정부는 미얀마의 개발소외지역인 라카인주의 경제성장이 이 지역의 빈곤문제 해소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對 라카인 투자에 관심 있는 우리 기업들에 ‘책임투자(Responsible Investment)’를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가이드라인에 따라 책임투자를 독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포함해 고려하는 투자행위가 ‘책임투자’라면, 현 상황에서 라카인주에 관심있는 한국 기업들에게 책임투자를 독려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이런 한국 정부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로힝야 학살에 책임 있는 개인들과 무역에 대한 제재가 시작되었거나 논의 중이고, ‘보이콧 미얀마 캠페인’이 확산되어 실제 미얀마에 대한 해외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 

 

유엔진상조사단은 로힝야 학살을 조사한 후 명백한 ‘전쟁범죄’, ‘반인도주의적 범죄’, ‘제노사이드’라고 결론 내렸다. 학살 책임자들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고 하루빨리 로힝야 난민들이 원하는 대로 ‘존엄하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로힝야 당사자들의 동의에 의한 자발적 송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미얀마에 대한 투자 독려가 아니라, 미얀마 정부에 학살 책임을 묻고, 유엔 등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로힝야 난민사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일 것이다. 

 

 

민족·종족·인종을 뜻하는 ‘geno’와 살인을 뜻하는 ‘cide’의 합성어로 집단학살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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