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5월 2016-04-29   1220

[만남] 어른 아이 – 이인영 회원

어른 아이

이인영 회원

 

글.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참여사회 기자
사진. 이영미 미디어홍보팀 간사

 

 

자신은 남과 다르고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맛있지도 않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말을 내뱉고는 멋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큰 상처를 갖고 있다고 여긴다.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강하게 대한다.
종종 자살을 생각한다.
아무 이유 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남들을 바라본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가래침 뱉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인기 밴드그룹에 대해 “뜨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정색을 한다.

 

누구에 대한 묘사일까? 다들 짐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중2병’이라 불리는 사춘기 청소년들에 대한 설명이다. ‘중2병’은 사춘기 특유의 감수성과 상상력, 반항심과 허세가 최고조에 이르며 현실기피, 우울증, 과대망상 등의 증상을 보이는 중학교 2학년 또래의 청소년을 비꼬는 신조어다. 교사들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학년이라고 토로하는 중학교 2학년. 내가 오늘 만나야 할 인터뷰 대상자다. 이름은 이인영. 평소 <만남> 코너를 담당하는 호모아줌마데스의 딸이기도 하다. 엄마가 딸을 인터뷰하는 어색한 상황을 피하고자 막중한 임무를 대신 맡게 됐다.

 

참여사회 2016년 5월호 (통권 234호)

 

중2의 사생활

 

“어느 날부터 자기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거야. 핸드폰하고 새벽까지 라디오 듣고, 엄마랑 싸웠다고 라디오에 사연보내고…. 청소년 소설 보면 어려운 가정에 처한 아이들이 주인공이잖아. 자기도 고난에 처한 주인공이 되고 싶은 거야. 엄마가 이혼했으면 좋겠다고, 어떤 남자친구 만날지 궁금하대. 어떨 때는 ‘난 왜 살지?’ 그러면서 죽고 싶다고 하고….”

인영이의 ‘중2병’에 대한 호모아줌마데스의 증언이다. 아쉽게도(?) 그녀의 사춘기는 지난해에 끝났다고 한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중2병’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요즘 학교 생활은 어떠냐는 질문에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재밌어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숙제하는 것도 재밌고, 2학년 되면서 자치법정 판사를 맡았는데 그것도 재밌고요.” 

 

어떤 안건들이 올라오는데요?
“학생들이 화장하는 문제 같은 거요. 법정에서 안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데 처벌 내용이 ‘나의 다짐 쓰기’ 이런 거예요. 배심원들이 주로 처벌내용을 정하고 판사는 그걸 승인할지 말지 결정하는 거예요. 안건도 웃기고, 처벌하는 상황도 웃긴 거 같아요.” 

 

요즘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이 그거예요? 베시시 웃으며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연다. 
“요즘은 웹소설에 빠졌어요.”
무슨 소설인데요?
“그냥 남녀 주인공이 싸우다가 다시 만나는 로맨스 소설인데 재밌어요.”
아, 로맨스 소설. 오글거리는 로맨스에 열광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춘기의 특징이긴 하다.

 

친구들과도 로맨스 소설 얘기하고 놀아요? 
“소설 얘기, 연예인 얘기 많이 하긴 하는데 자주 못 놀아요. 친구들이 학원가서 밤늦게까지 있거든요. 저는 안 바쁜 학원 다녀서 괜찮은데, 애들은 학원가는 거 완전 싫어해요. 학원가면 수학, 영어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을 종합해서 배우는데 시험 기간에는 새벽 1~2시까지 공부하고 그래요. 어떤 학원은 법에 정해진 운영시간을 넘겨서 공부시키다가 걸렸대요. 이상한 창고를 구해서 매일 다른 장소로 오라고 연락해요.”

 

그런 친구들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나도 더 열심히 해야 될 거 같고 불안하지 않나?
“조금 불안하긴 한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요.”
엄마가 공부하라고 안 해요?
“공부하라고는 안하고 책 읽으라고는 해요.”

 

요즘 생활하면서 싫은 건 없어요?
“딱히 없어요. 꼭 해야 하는 학교 숙제는 먼저 해치우고, 하기 싫은 건 안 해요.
하기 싫은 건 뭔데요?
“책 읽는 거요.(웃음)”

 

좌충우돌 ‘중2병’ 에피소드도 과거 얘기가 되었고, 즐겁게 살고 있다는 15세 소녀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 참. 이번 달 인터뷰 대상자로 이인영 회원을 정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지!

 

국제NGO 활동가를 꿈꾸다

 

최근에 학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입법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지난번에 참여연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와 관련한 자원 활동이 있었어요. 교육을 받고 길거리에서 서명을 받았거든요. 그 이후에 친구들이랑 학교 가서 더 받으면 좋을 거 같다고 얘기를 했어요. 혹시 몰라서 담임 선생님한테 받아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교장 선생님한테 물어봐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교장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을 안 했나 봐요. 담임 선생님이 안하면 안 되냐고 그랬는데, 옆에 있던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하게 됐어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마다 교무실 돌면서 받았어요.” 

친구들이나 선생님 반응은 어땠어요?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애들이 많았고, 어떤 애는 베트남 전쟁 때 우리나라가 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왜 사과를 안 하냐고 하기도 했어요. 선생님들은 기특하다고 칭찬도 하고, 정부를 욕하는 분도 있었어요.”
호모아줌마데스는 인영이의 서명활동에 대해 “학교 봉사활동 시간을 받기 위해 참여한 거예요. 대의는 없습니다”라고 잘랐다. 아이들의 서명 활동을 대단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애써 피하려는 것이겠지만,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라도 하는 것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지 않던가. 

 

지난번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청소년 집회도 갔었죠?
“네. 인사동에서 학생들이 검은 넥타이하고 종이에 문구 적어서 앉아 있었어요. 정의가 죽었다 그랬나? 역사가 죽었다 그랬나? 뭐가 죽었다 그랬는데? (웃음) 집회가 끝나고 행진도 했는데 할아버지들이 현수막을 발로 차기도 했어요.”

 

이런 활동에 대한 정보는 주로 엄마가 알려주나요? 
“엄마가 알려주긴 하는데, 저도 관심이 있고 재밌는 거 같아요.”
아직은 단순한 호기심일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요즘 인영이의 장래희망은 국제NGO 활동가다. 
“꿈이 자주 바뀌는데 지금은 국제NGO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영어로 말하는 것도 재밌고, 티비 광고를 보니까 아프리카에서 쓰레기장에 사는 아이들이 나오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영이가 십 년쯤 후에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따뜻한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참여사회 2016년 5월호 (통권 234호)

  
 

참여연대 청소년 회원입니다 

 

“참여연대 회원인 엄마 때문에 참여사회를 읽다가 참여연대가 매달 적자인걸 보고 회원가입을 하게 됐어요. 적은 액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회비를 밀리지 않기 위해 용돈을 아껴 쓸 생각이에요.”
적자에 시달리는 참여연대가 안타까웠던 인영이는 불과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했다. 『참여사회』에서 가장 열심히 보는 지면은 단연 ‘튼튼날개’와 ‘투명회계’라고 한다. 

용돈으로 회비까지 내려면 힘들지 않아요?
“용돈을 잘 안 받아요. 별로 쓸데가 없어서….”
박보검이랑 송중기 좋아한다며? 브로마이드도 사고 그래야 되지 않나?
“그걸 붙이면 아무것도 못할 거 같아서요.”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에 이런 자제력을 가지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알뜰한 인영이는 네이버 블로그 활동을 통해 받은 콩을 모아서 참여연대에 기부하기도 했다.
“블로그하면서 콩을 받았는데 참여연대에서 콩을 후원받더라고요. 그래서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 지식인에 들어가면 랜덤으로 콩이 뜨는데 그거 잡으려고 클릭도 열심히 했어요.”

 

참여연대 회원이 많이 늘어서 인영이의 적자 걱정이 줄어야 할텐데…. 참여연대를 뭐라고 소개하면 회원이 많이 늘어날까요?
“송중기가 회원이면 가입하는 사람도 늘어날 텐데….”
중학생이 맞나 싶다가도 이럴 때는 딱 15살이다. 송중기 씨가 이 얘기를 꼭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여연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곳이니까 파산을 안했으면 좋겠어요.”
기승전‘재정’이다. 참여연대 회계 담당자보다 재정을 더 걱정하는 듯한 인영이는 스스로를 ‘고비용’이라고 부른다. 많이 먹는데 하는 일이 없고, 돈을 많이 쓰기 때문이란다. 인영이의 기준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고비용’이지 않을까 싶다.

 

어른 아이

 

세상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생기면 뭘 하고 싶어요?
“학업 스트레스를 없애고 싶어요. 공부는 하고 싶어지면 언젠가는 스스로 할 거라고 생각해요.”
옆에 있던 호모아줌마데스가 가난을 없애고 싶었던 게 아니었냐며 끼어든다.
“아, 맞다. 가난이야. (웃음)”

인터뷰한다고 리허설도 했다는 인영이의 대답은 오락가락했지만, 어떻게 해야 세상이 좋아지는 지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아이들도 인영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직 자신의 세계가 단단히 다져지지 않은 아이들을 ‘문제적’인 집단으로 보는 건 과도한 우려가 아닐까 생각했다.

요즘 학생들이 개념 없다는 말 들으면 어떤 생각 들어요?
“개념이 없는 건 맞는데 큰 사고를 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연예인 좋아하고 화장하는 정도?”

 

많은 어른들이 ‘요즘 애들’의 세태를 지탄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어른의 모습을 갖추었는지 궁금해진다. 아이들을 학대하고, 공부만을 강요하고, ‘어버이(연합)’의 이름으로 돈을 받고 세월호 참사 부모와 위안부 할머니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배후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사람들. 모두가 ‘어른’의 이름을 달고 있다.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어른 아이가 판치는 세상이다. 어른 같은 아이 앞에서 어른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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