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9월 2013-09-06   1366

[정치] 다시 시험대에 오른 소크라테스

다시 시험대에 오른 소크라테스

 

 

빨갱이에서 좌경용공, 종북세력까지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용어 중 하나가 ‘빨갱이’일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친일파들이 미국을 등에 업고 살아남기 위해 외세를 거부하는 민족주의 세력을 반미 공산주의 세력으로 몰아 제거하려고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빨갱이란 말의 효용성은 극도로 높아졌다. 무자비한 살육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말 한마디에 핏대를 세우며 원한을 풀었다. 이승만, 박정희 두 정권에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찰, 검찰, 정보기관 등 국가기관을 최대한 동원해 이 야만적인 행위를 부추기고 이용했다. 

 

 1980년대에는 ‘좌경용공 세력’이라는 말이 널리 유포되었다. 빨갱이라는 이름하에 너무 많은 정치적 탄압이 이루어지면서 그 효용성이 반감된 데 따른 것인지,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기능은 빨갱이란 말과 똑같이 국가기관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파를 색출해 탄압하는 데 있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빨갱이’나 ‘좌경용공’ 같은 용어들은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다. 국회 절반을 차지하는 야당을 싸잡아 빨갱이나 좌경용공으로 몰수는 없게 된 것이다. 특히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북한의 침략 위협을 전제하고 사용된 이 용어들은 그 현실적 기반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얼마 전부터 ‘종북세력’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기존의 ‘빨갱이’나 ‘좌경용공’ 같은 용어와 다소 혼용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종북’이 보다 일반화되었다. 처음에는 일부 극우세력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국회의원, 그리고 이제는 정부기관에서까지 일상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쓰임새도 대단히 폭넓다. 현 정부나 여당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종북’이란 딱지가 붙는다.

 

참여사회 9월호
2013년 6월 22일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규탄 촛불대회’에 반대해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정권 보위의 보검이 된 ‘종북세력’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 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종북세력’이 등장했다. 국정원이 대선 기간에 인터넷 댓글을 단 것은 종북세력들의 심리전에 대항하기 위한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빨갱이’와 ‘좌경용공’에 이어 ‘종북세력’이 국정원의 불법적인 활동을 정당화하는 전가의 보도로 다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말하는 ‘종북’에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재의 야권 정치인들이 모두 포함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같은 자치단체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낸시랭이나 김여진 씨 같은 연예인들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국민들도 역시 ‘종북세력’으로 규정된다. 

 

 이 쯤 되면 국정원이 ‘종북’이라는 용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해진다. 정권 보위활동을 국가안보라는 허울로 치장하고, ‘반공’이라는 철 지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다양한 의견이 보장되어야 하는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 그랬듯이 전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막아 현 정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청문회에서 나타난 여당 의원들과 주요 증인들의 뻔뻔하고 치졸한 행태는 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불법을 저지른 자들이 증인선서를 거부하며 큰소리를 치고, 국민의 대표라는 여당 의원들이 범죄 행위를 옹호하는 작태를 서슴지 않는다. 국정조사는 철저히 무력화되었고, 청문회는 이들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념 선전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본인이 임명한 검찰의 손으로 밝혀진 국정원과 경찰의 불법행위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던 정치인 박근혜의 자부심은 어디로 갔나? 아니,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통해 본인의 원칙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법 위에 대통령이 있고, 대통령 위에 ‘종북세력 타도’라는  대원칙이 있다. 설령 국가기관이 불법을 저질렀다 해도 ‘종북세력 척결’원칙에 맞으면 문제가 없다. 박정희 시대처럼 국민들은 자기 밥그릇만 챙기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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