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1월 2009-01-01   984

참여연대는 지금_박원석 처장 2차 공판: 죄가 있다면 국민 편에 선 것입니다




┃박원석 처장 2차 공판┃


“죄가 있다면
 국민 편에 선 것입니다”
 



지난 12월 18일 박원석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비롯한 촛불관련 구속자 5인(박원석, 한용진, 김동규, 권혜진, 백성균)에 대한 2차 공판이 있었습니다. 재판장에서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이 읽은 모두진술문입니다. 지면관계로 요약문을 실으니 전문은 참여연대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편집자주



촛불집회 발단의 배경과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여중생 여고생들이 주축이 되어 촛불이 시작될 때만 해도 그것은 우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촛불은 그로부터 100일이 넘도록 지속되면서 지난 87년 6월 항쟁에 이어, 우리 현대사에 획을 긋는 대사건으로 발전했습니다. 촛불운동은 특히 그 중심이 시민사회단체나 정당이 아닌 청소년, 네티즌, 주부 등 보통 시민들이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집회 시위와는 다른 시민참여의 새로운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면서,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기정사실화되었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국내 협의 절차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득도 없이 철저하게 밀실에서 이루어진 협상이었습니다. 검역주권마저 송두리째 포기한 협상이었습니다. 졸속협상, 굴욕협상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답변만을 되풀이했습니다. 무엇이 우리가 얻을 국익인지 정부는 분명하게 제시하고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이 느끼는 밥상의 불안과 공포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쇠고기 수입 강행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시점에 청소년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운동이 시작된 것은 국민 스스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실질적인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민주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정책결정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찬반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따라서 건강이나 생명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정책을 다수 국민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집단적 의사표시를 한 것은 우리 헌법의 국민주권의 원리나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그리고 저항권력 기본권)에 비추어볼 때 정당한 집회시위였으며, 권리의 행사였습니다. 오히려 부당한 것은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당한 국민의(권리의 행사와) 의사표현을 물리력으로 억압하고 봉쇄한 정부의 대응이며, 갈등을 악화시키고 사태를 키운 책임도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촛불 운동은 누가 주도한 것인가


촛불운동이 일부 반미반정부 세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의 허구성은 촛불운동 기간 열렸던 주요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의 구성만 살펴보더라도 곧바로 드러납니다. 일례로 지난 5월 2일 첫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1만여 명 가운데 중고생과 일반시민은 7천3백여 명으로 전체 참가자의 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진 5월 3일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8천 명의 참석자 중 중고생은 5천2백 명, 주부 등 일반시민은 1천4백 명으로 대다수 참가자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 또는 대학의 학생회 등과는 무관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대표적인 불법집회, 시위로 지목하고 있는 5월 31일 촛불문화제에도 참가자 3만 8천 명 중 시민은 2만 명, 주부 2천5백 명, 중고생 1천 명 그리고 네티즌 3천 명 등으로 시민사회단체나 정당 등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시민으로 분류된 참가자가 약 70%에 이르렀습니다. 최대 군중이 모였던 6·10 촛불문화제에도 네티즌 등 일반시민의 참여는 6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제가 인용한 참가자 숫자와 구성비는 모두 경찰이 증거자료로 제출한 정보보고에 따른 것입니다. 참가자 숫자를 터무니없이 축소하고 그 구성 또한 부정확한 경찰의 정보보고에 따르더라도 지난 촛불운동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생명의 안전을 지키고자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이 시작하고 주도한 것이며, 배후세력의 기획과 선동 운운하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광우병대책회의는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청소년, 네티즌을 중심으로 첫 촛불문화제가 열린 이후 사안의 중대성과 시급성을 느낀 시민사회단체들이 5월 6일 긴급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전국적으로 약 1,500개 단체들이 참여의사를 밝힌 가운데 만들어졌습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그 자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무효와 전면 재협상’을 포함한 4대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시민들의 촛불문화제를 지원할 것을 결정했으며, 실무적인 역할을 위해 상황실을 구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결정은 촛불문화제 준비와 개최에 따르는 부담을 네티즌이나 개인이 아닌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 감당하기로 한 것일 뿐,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중심이 된 촛불문화제의 성격에는 하등의 변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대책회의 상황실 구성원들이 집회의 실무적인 준비와 진행을 맡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들끓는 국민의 여론이 하나의 장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지원한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상황실장으로서 제가 한 역할 또한 국민의 의견과 여론이 정확하게 표출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노력한 것입니다. 따라서 대책회의나 저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불의한 권력에 맞서 ‘국민의 편에 선 것’뿐입니다. 



촛불집회는 불법, 폭력 시위였나


검찰은 지난 촛불문화제가 허가받지 않은 미신고 불법집회였으며, 차도를 점거해 교통을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한 불법, 폭력시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촛불문화제는 전체적으로 공연, 장기자랑, 자유발언 등이 어우러진 시민축제의 형식이며 그 가운데 정치성 구호도 나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문화제의 한 측면만을 부각시켜 전체를 정치집회로 보는 것은 지극히 자의적인 기준이며 판단입니다.

야간에 미신고 불법집회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야간집회를 허가사항으로 하고 있는 현 집시법 10조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신청이 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국민대책회의는 집시법 10조가 명백히 위헌적인 조항이고 촛불문화제는 따로 신고할 필요가 없는 문화행사이지만, 불법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수차례 신고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설득력 없는 사유를 들어 신고를 반려하고 결과적으로 미신고 집회를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책임은 경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경찰과 검찰은 5월 24일을 시작으로 국민대책회의가 불법시위를 주도했으며, 행진과 거리 시위과정에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방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폭력시위를 조장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5월 24일의 거리시위는 국민들의 거듭된 재협상 요구와 호소에도 불구하고 수입위생조건 변경고시를 강행하려고 했던 정부에 대해 보다 분명한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고시 강행을 막고자 했던 시민들의 절박한 심정이 비계획적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당시 저는 무대에 올라 네티즌들과 시민들에 의해 거리행진이 시작된 것을 현장에 있던 전체 참가자에게 알리고 동참을 권유한 바 있습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제가 불법 거리시위를 선동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의 행동은 현장에서 발생한 주요 상황을 전체 참가자에게 알리고 공유할 책임을 맡은 상황실장으로서 당연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며, 기왕에 시작된 행진이 보다 질서 있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만일 지금 제 눈앞에 동일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저는 당시와 같은 상황판단과 행동을 할 것입니다.

5월 24일 첫 거리시위가 시작된 이후 협상무효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효과적인 압력수단으로 거리행진을 계속해야 한다는 합의가 촛불문화제 현장과 네티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가능한 모든 합법적 방법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지만 모두 묵살된 상황에서 이는 불가피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대책회의는 거리시위가 평화적으로 질서 있게 이루어지도록 5월 말부터는 방송차량을 준비하고 자원봉사자를 조직, 배치했으며, 일관되게 평화시위의 원칙을 천명하고 고수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폭력시위의 근거로 밧줄을 이용해 경찰버스를 끌어내거나 파손한 사례 그리고 쇠파이프가 등장한 사례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이 같은 사례가 나타났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경찰의 조직된 폭력과 무자비한 시위진압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며, 경찰폭력에 흥분한 소수의 시위대에 의한 우발적 행동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국민대책회의는 이조차도 촛불집회를 불법, 폭력시위로 몰아가려는 경찰과 보수언론에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체를 호소했으며, 현장에서도 적극적인 만류와 제재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같은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보도 등을 통해 확인된 바입니다. 폭력을 조장하고 조직적으로 행사한 것은 오히려 경찰이었으며, 마구잡이식 연행과 무자비한 진압 그리고 거대한 명박산성이 바로 폭력의 증거들입니다.

경찰 폭력은 구체적으로도 문제가 되어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은 조사관을 파견해 촛불 집회 당시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뒤 보고서를 내, 절제되지 않은 공권력의 행사와 폭력진압 그리고 그로 인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얼마 전 촛불집회 당시 경찰의 폭력진압과 인권침해가 있었으며, 그 책임을 물어 경찰청장과 지휘책임자들을 징계하라는 권고를 포함한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실제 경찰은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려는 100여 명의 시민을 차도도 아닌 서울 광장 안에서 무차별 연행한 바 있으며, 5월 31일에는 경복궁역 인근에서 아무런 물리적인 위협도 되지 않는 시위대에게 살수하며 다수가 안면 등에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6월 10일 광화문 네거리를 가로막은 5M 높이의 컨테이너 장벽과 매번 집회 때마다 소통을 거부하는 이 정부의 태도를 상징하듯  겹겹이 둘러친 차벽이야말로 거대한 구조의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경찰의 무차별적인 연행과 폭력진압으로 약 1천5백 명의 연행자와 무려 2천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건의 고소고발이 있었지만, 지금껏 어느 하나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경찰과 검찰의 폭력시위 주장은 그야말로 도둑이 회초리 드는 격의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촛불운동의 의미, 교훈, 과제는 무엇인가


촛불운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시장 만능주의와 탐욕스러운 이윤추구에 제동을 걸고 시장독재에 강한 경종을 울렸습니다. 광우병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소에서 추출한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광우병위험으로부터 자신의 건강,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들었던 소박한 촛불은 광장과 거리의 투쟁을 거치며 이윤보다 인간이라는 깨달음으로 발전되고 승화되었습니다. 또한 광우병에서 시작된 촛불은 교육과 의료, 언론, 불, 전기, 가스 등 사회의 필수적인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촛불운동은 모든 것을 시장과 이윤의 논리에 내맡기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고 더 평등한 민주주의를 실현해 함께 사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시대의 과제이며 미래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 권력개념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장악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적 기본권을 억압하는 각종 악법을 추진하고 권위주의 정치의 도구였던 공안기구들의 권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어처구니없는 역주행입니다.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신에다 생존의 불안과 고통까지 겹친 지금, 언제 다시 촛불이 거리에 옮겨 붙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만일 다시 한 번 촛불이 거리에 옮겨 붙으면,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민생을 도외시한 채 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정책으로 우리 사회를 더 짙은 차별과 양극화의 늪에 몰아넣는 이 정권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이라도 촛불의 교훈을 되새겨 무엇이 국민과 소통하는 길인지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촛불운동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했던 국민의 자구적 실천이었으며 부당한 정책결정과 불의한 권력행사에 대항한 정당한 국민주권의 행사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의 자제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00일이 넘도록 수백만의 군중이 모였는데도 아무런 불상사가 없었던 것은 그 같은 국민의 평화의지와 노력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목적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진행된 촛불운동을 빈약한 근거와 편협한 논리로 불법, 폭력의 틀에 가두려는 검찰의 공소는 마땅히 기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8.12 박원석



○ 촛불원석지기지友와 함께해요.
  ㆍ2008년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밝혔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촛불에 담긴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합니다. 촛불정신을 훼손하는 부당한 시도에 맞서 촛불투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활동을 합니다. 양심수 석방을 위한 민가협 목요집회 참석 등 다른 촛불지기와 연대합니다.
  ㆍ박원석님의 재판, 수형 생활에 필요한 자원활동을 합니다. 면회를 통해 감옥에 있는 박원석님에게 바깥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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