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1월 2009-01-01   868

참여마당_삶의 길목에서: 세밑의 헤프닝





세밑의 헤프닝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세밑에 친구를 불러 회포를 풀었다. 사느라고 서로 바빠 담도 없는 옆집에 사는 친구이건만 무슨 계간지 나오듯 드문드문 본다. 친구 가족이 돌아간 뒤 상을 치우고 만족스런 기분으로 컴퓨터 앞에 가서 앉았다.

아이들이 쓰다가 끄지 않고 둔 컴퓨터의 내 계정으로 들어가 보니 어, 이게 뭐야? 바탕화면이 엉뚱하게 바뀌었다. 바탕화면에 깔아둔 폴더와 파일들의 아이콘도 보이지 않는다. 원고, 수업, 논문, 번역……. 몇 년 작업하여 모아둔 것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이들이 달려와 여기저기 찾아보고 이것저것 눌러보는 동안 나는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 깜깜하기만 했다. 내 인생 몇 년이 순식간에, 그리고 너무도 간단히 증발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리의 무력한 노력에 화면은 처음과 같은 상태로 요지부동이었다. 급기야 눈물이 솟구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이들이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내일 아저씨를 불러서 고치면 살릴 수 있을 거야.”

눈앞의 컴퓨터는 블랙홀처럼 소중한 내 인생의 한 자락을 꿀꺽하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버티고 있었다. 내 머릿속의 컴퓨터에 비로소 깜빡깜빡 불이 들어오더니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료들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건가? 그것들은 나인가? 그렇게 많이 갖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나? 쓸데없이 많이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욕심껏 쌓아두기만 한 건 아닌가? 수시로 세간을 점검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미련 없이 처분하는 것처럼 가상의 곳간도 자주 정돈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육체의 비만은 경원하면서 정신의 군살은 방치한 건 아닌가? 머릿속의 컴퓨터는 또 번거롭긴 하겠지만 나중에 복구할 수 있는 것과 완전히 날려버린 것들을 재빠르게 가늠해보고 있었다. 잠정 추계는 5:5 훌훌까지는 아니어도 손 털고 일어설 만했다.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미적대고 있다가 한방 맞은 건지도 몰랐다. 상황을 받아들이자 마음은 평정을 회복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의 컴퓨터는 어느새 ‘내 머릿속의 지우개’로 변신하여 방금 전만 해도 충격적이었던 사건에 과거라는 옷을 입혀 서랍 속에 밀어넣고 닫으려 하고 있었다.

그 때 집에 돌아갔던 친구가 달려왔다. 아이들이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나보다. 컴퓨터를 가지고 무슨 짓을 한 거냐며 화내지도, 혼내지도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앉아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나보다. 친구를 안심시켜 돌려보내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켰다. 이게 또 웬일인가. 거짓말처럼 모든 폴더와 파일의 아이콘들이 되살아났다. 이미 마음을 비웠지만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들이 되돌아오니까 그래도 기뻤다. 그것들을 잃어버린다 해도 큰 문제없음을 확인한 터라 마음은 가벼웠고 자유로웠다. 인디언 어느 부족은 서른 가지 물건이면 한평생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던데……. 진짜로 날려버린 뒤 후회 말고 빨리 백업해두라는 주위의 충고를 아직도 따르지 않고 있는 나의 안일함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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