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2월 2011-02-01   1791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지하철 막말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지하철 막말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대중의 탈 뒤에서 웃으며 돌 던지는 사회


기명균
이주원 참여사회 7기 인턴

 

20대 여성, “인제 나 내리니까 앉어”
할머니, “말 조심해. 그러는 거 아니야.”
20대 여성, “모르는데 말을 걸잖아. 모르는 인간이 말 거는 거 싫으니까!”
할머니, “인간이 뭐야 인간. 아버지 같은 할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20대 여성, “속 시끄러우니까, 나한테 말 걸지 마. 괜히 말 걸다가 욕 얻어 처먹어 모르는 애한테.”
 
 지난 2010년 연말 논란이 된 한 동영상 속의 내용이다. 1분 40초가량의 이 동영상은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과 그 옆의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동영상은 순식간에 인터넷 곳곳으로 퍼져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영상 속의 여성을 ‘지하철 막말녀’라 부르며 비난했고 여성의 미니홈피를 찾아내 개인 신상정보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인터넷이 탄생시킨 막말녀 논란, 정당한가

2010년 한 해 동안 ‘지하철 막말녀’처럼 ‘OO녀’라는 제목이 붙은 동영상이 많은 화제가 되었다. 그 동영상들은 대부분 지하철과 같은 우리 주변의 장소에서 촬영되었다는 점, 동영상 속의 인물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점, 그에 대해 네티즌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점 등에서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OO녀 동영상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개똥녀가 그랬고 가장 최근의 지하철 폭언남이 그랬다.
 
  물론 동영상 속의 그들은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고 개방적인 인터넷 공간의 특성상 비난 여론이 자유롭게 형성되는 것을 문제라고 볼 수만은 없다. 기존 언론이 아닌 일반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여론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 교수는 “근대 시민은 복수를 실현할 권리를 국가에 이양했다. 그러나 이 이양된 처벌의 권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누리꾼들의 집단행동은 근대 사법제도의 구멍을 보완하는 요소이며 직접적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가진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또한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여론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의 장점을 잃어버리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법적 조치를 통해 네티즌을 규제하기보다는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네티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지,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은 왜 인터넷에 올렸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영상 속의 인물들은 개인 신상정보가 공개되어 사회생활이 힘들어질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는 꾸준히 생기고 있지만,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당장 보이지 않는다.

‘내가 너보다 낫다’는 우월감 표출

한 사람이 지하철에서 취한 행동이 왜 인터넷에 오르며, 그 많은 네티즌들이 왜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제보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정 인물의 잘못을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은 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동영상을 보는 네티즌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몇 분짜리 동영상에 드러난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판단한다. 그래서 동영상 속 인물은 인격적으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이 보는 건 짧은 영상 속의 단편적인 것이기에 그 영상만으로 사람 자체가 나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인격 대 인격의 관계에서 자신이 더 우위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태도를 네티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모든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 따라서 네티즌들이 왜 위와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지, 왜 착각을 하면서까지 누군가의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지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는 점점 20대 80의 법칙이 지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한국사회는 20%보다 적은 소수가 80%보다 많은 것을 가지는 승자독식 사회다. 그러다 보니 승자가 되지 못한 80% 이상의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이 패배자라고 여기게 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우스갯소리가 유행할 만한 사회인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일명 ‘루저’들은 인터넷상에서나마 누군가의 위에 서는 ‘승자’가 되고 싶다. 지하철에서 개똥을 치우지 않거나, 어른들에게 막말을 하는 따위의 행동을 비난하고 공격함으로써 누군가의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로운 놀이터와 꽁꽁 묶인 놀잇감

그런데 단순히 누군가의 우위에 서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현상을 전부 설명하기에, 네티즌들의 행동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인신공격뿐 아니라 개인 신상정보를 공개할 정도로 해당 인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데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네티즌들의 비난은 인터넷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행위가 하나의 놀이문화가 된 것과 관련이 있다.

  요즘 인터넷 공간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것으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과 같은 사이트를 들 수 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 세상의 언어로 소통한다. 특히 디시인사이드는 다른 커뮤니티로 유행어가 전파될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 네티즌들이 끼리끼리 모여 글과 댓글로 수다를 떠는 이곳은 일종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놀이터에서 각자 본명이 아닌 닉네임을 앞세워 신나게 놀다 보면 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 말하기도 하고 상황을 왜곡하기도 한다.

  OO녀에 대한 공격이 전개되는 양상도 이와 비슷한데, 실제 사례와 비교해 보자. 동영상을 처음 마주한 네티즌들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우선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군대 보내라”
  “못생긴 애들은 피해의식이 쩔어서 그런가”

  그 감정들이 쌓이면 OO녀가 나쁘다, 잘못했다는 여론이 형성된다. 그 이후에 중요해지는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비난하느냐다. 놀이터에서는 재밌게 노는 사람이 왕이다. 마찬가지로 OO녀를 비판하는 공간에서는 보다 재밌게, ‘까는’ 사람이 영향력을 갖는다.

  “주옥같은 기사에 주옥같은 드립 기대해봄다” 
  “헤헤 재밌는 개드립 기대합니다”

  누가 더 재밌게 ‘까는지’의 경쟁이 펼쳐지면, 네티즌들은 좀 더 ‘재밌게 까기’ 위해서 인신공격을 하는 등 점점 더 자극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면 사실은 과장·왜곡될 수밖에 없다.

  “머리 아픈 애 아냐? 장애인인 듯”
  “지하철 폭행남이랑 만나면 재밌겠다”

  그 과정에서 동영상 속 인물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 이상의 비난을 받게 되고 심하게는 개인 신상정보가 공개되기도 한다. 네티즌들이 인터넷 공간이라는 놀이터에서 동영상과 동영상 속의 인물을 놀잇감 삼아 한바탕 놀고 나면 만신창이가 된 놀잇감만 남는다.

막말녀 향해 막말하게 만드는 군중심리

놀잇감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이 놀이는 쉽게 질리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확산된다. 그 확산의 배경에는 군중심리가 있다. 거리를 걷다가 어느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으면 왠지 모르게 나도 그 줄에 끼고 싶은 심리가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다. ‘OO녀 동영상’에 대한 판단을 하는 사람들 역시 군중심리를 비껴가지 못한다. 이 사건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동영상에 대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이미 대다수가 ‘그녀는 나쁘다’, ‘그녀가 잘못했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가능한 다수의 편에 섬으로써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따라서 OO녀를 옹호하는, ‘소수 의견’은 좀처럼 제시되지 못하고 OO녀를 비난하는 ‘다수 의견’은 더욱 그 세력을 키워간다.

  군중심리는 그 비난의 과격함에도 영향을 미친다. 귀스타르프 르 봉의 저서 『군중심리』에 따르면, 개인이 군중이 되면 자신이 큰 힘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평소 억눌러왔던 본능이 터져 나오면서 자제력을 잃게 된다. 그러면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게 되고 야수처럼 단순하고 난폭해진다. 군중의 역동성이 때로는 막힌 곳을 뚫어내는 역사적 변화의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 과격함이 또 다른 희생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OO녀 동영상’을 둘러싼 비난이 과격한 것도 군중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너도나도 OO녀를 비난하는 분위기 속에서 각각의 개인이 타인의 반응에 자극을 받아 상승하게 되어 점점 과격한 비난을 퍼붓게 된다.

만만한 사람을 나무람으로써 정의 추구 욕구 해소

그렇다면, 우리는 네티즌들의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동영상을 촬영해 인터넷에 게재한 사람들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동영상을 촬영하는 이들은 자기 나름의 제보자 심리로 동영상을 찍는다. 공공장소에서 잘못된 행위를 한 사람을 인터넷에 올리는 방식으로 ‘신고’하여 그 행위의 대가를 받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지키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임에도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법이 아닌 도덕의 문제이기에 덜 이슈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점에서 ‘지하철 막말녀’, ‘개똥녀’의 행동에 대한 문제 제기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곽동수 교수(한국싸이버대학교 컴퓨터정보통신학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비해 옳은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비난 여론이 과장되는 것은 루머나 문제제기를 하면서 과장시키는 현대 한국 언론 탓이 크”지만 “욕먹을 만하니까 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부당한 사회를 살면서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꾹 참아온 정의 추구 욕구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OO녀 사태’를 설명한다. 고위층이나 사회지도층의 큰 잘못을 알면서도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참아왔던 대중의 정의 추구 욕구가 만만한 OO녀에게 터뜨려졌다는 이야기이다.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못한 채 살아오다가, 혼내거나 나무라더라도 나에게 큰 피해를 줄 것 같지 않은 만만한 상대에게 분노의 형태로 그 욕구를 터뜨리는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무수한 대중으로부터 이 정도로 강한 질타를 받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따져봐야 할 일이다.

  또한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하고 인터넷 상에 동영상으로 올리기까지 하는 행위가 해당 인물의 인권 침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도덕적인 잘못을 한 사람이기에 동영상 촬영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촬영자 입장이 있겠지만, 과연 ‘도덕적인 잘못’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 가능한지 애매해진다. 네티즌들이 동영상을 보고 분노하여 인신공격을 하고, 영상 속 인물의 개인적인 신상을 노출하기까지 하는 것 역시 문제다. 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네티즌들이 집단으로 한 개인을 공격하여 피해를 주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행위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그런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욕먹을 만하니까 욕하는 거야’라는 논리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이는 기술적으로는 눈에 띄게 발달했지만 아직 인터넷 공간에서 지켜야 할 ‘네티켓’이 성숙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익명성, 개방성, 자유로움 등 인터넷이 가진 장점들이 매우 쉽게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할 때다. 

인터넷 여론, 익명이 가져온 선정성, 무책임성

지하철에 개똥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개똥녀’의 잘못을 1이라고 봤을 때, 인신공격은 물론이고 개인 신상정보가 공개되어 몇 개월 뒤 치른 면접에서까지 불이익을 받아야 했던 그의 피해는 몇일까? ‘개똥녀’가 욕먹을 만한 짓을 했다고 보는 사람들은 ‘개똥녀’가 1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개똥녀’가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의 놀잇감이 되고 이리저리 패대기쳐지는 사이 ‘개똥녀’의 잘못은 100으로 불어났다. 문제는 죄가 100으로 불어나는 과정을 네티즌들이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들은 1만큼의 죄를 저지른 한 개인이 100만큼의 피해를 입고 사회적 불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욕먹을 만 했어’라고 말한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개념인 죄를 수치로 표현하는 것이 무리일 수는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서는 죄가 1인지 100인지 몇 분짜리 동영상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실제로 비난을 받았던 동영상 속의 인물들은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 죄가 1에서 100으로 불어나는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일방적이라서 제3자가 당사자를 옹호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약간의 잘못을 저지르고 산다. 오늘 밤 너무 피곤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지하철에서 당신이 무심코 했던 행동이 동영상으로 찍혀 내일 아침 인터넷에서 핫이슈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지하철 OO남? OO녀’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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