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4월 2004-04-01   698

[칼럼] 선택

대통령 탄핵으로 야기된 시국상황은 한국사회를 전환기적 변곡점에 서게 했다. 탄핵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혼란과 갈등은 국민들에게 두 가지의 중대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진통의 과정이다. 하나는 한국사회 미래의 이념적 지향성을 결정할 선택이며 다른 하나는 한 달여 남은 총선에서의 현실정치의 선택이다. 이념적 선택의 대상은 진보와 보수이며, 현실정치 선택의 대상은 총선에서의 후보와 정당이다. 국민의 선택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를 탄생시키는 지속적인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누려온 부패한 수구세력을 청산하고 새로운 한국사회의 지평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념적 선택과 현실정치의 선택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일치하지는 않으며, 서로 상충되지는 않지만 일관성을 갖지도 않는다. 이념적 선택은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표출되고 있으며 현실정치의 선택은 정당에 대한 지지도와 친노, 반노의 논란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탄핵에 반대하는 것은 이념적 선택에서 기득권적 수구세력에 대한 강력한 거부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에 대한 거부가 곧바로 진보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득권 수구에 대한 거부가 진보의 선택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현실정치의 선택에서 모두 친노나 탄핵을 반대한 열린우리당의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의 두 가지 선택이 이렇게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국민들의 건강한 판단력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하겠다.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수구세력의 오만함과 무지함에 대한 냉혹한 심판이며, 당리당략에 눈이 먼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의 표현이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을 때에 이미 해체되었어야 했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대안적 보수를 대변하는 정당이 만들어졌어야 했다. 새가 날기 위해서는 좌우의 날개가 필요하듯이 우리사회의 전진을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이고 도덕적인 보수의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주의와 기득권에 도취되고 부패로 찌든 한나라당의 주도세력들은 불과 몇 시간 뒤에 내려질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마저도 알지 못한 채 탄핵을 통과시키고 만세를 부르는 무지몽매함을 보여주었다. 이미 최소한의 도덕성과 판단력을 잃은 것이었다.

판단력을 잃은 것은 민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낮다. 그리고 상당수의 국민들은 탄핵통과 전날의 대통령 기자회견에 곱지 않은 평가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고 그의 기자회견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이라고 해서 사소한 이유를 들어 대통령을 패대기치는 쿠데타적 만용을 용인할 만큼 어리석지 않음을 민주당은 보지 못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사람들이 탄핵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득권 세력도 아니고 보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략적인 목적에 눈이 어두워 부패한 차떼기당과 동침을 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내팽개치고 지지세력을 배신한 것이다.

탄핵정국은 국민들의 이념적 선택의 전환을 가져왔다. 지역주의와 기득권에 기생해온 부패한 보수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수구 보수의 종말이 온 것이다. 보수에서 진보로의 국민들의 이념적 지향성의 전환은 노무현 정부가 탄생되었을 때에 곧바로 치러졌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수구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을 탄생시킨 진보세력의 개혁요구를 외면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루어진 것이다. 소수당으로서의 한계로 인하여 수구세력의 발목잡기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개혁적인 변화로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우왕좌왕정권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여 국민들에게 진보와 개혁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탄핵반대로 수구적 보수의 종말이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이념적 대안으로 곧바로 진보가 선택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선택에서의 혼란은 현실정치의 선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탄핵반대가 탄핵저지에 앞장선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로 일부 이어지고 있으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전환되지는 않고 있다. 진보적 개혁세력마저도 친노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열린우리당에 대한 선택도 총선이라는 강요된 상황에서 차선 또는 차악의 선택이지 최선의 선택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으로 야기된 국민들의 이념적 선택과 현실정치 선택의 중첩되는 부분이 가져올 구조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수구 기득권세력의 몰락과 지역주의의 붕괴가 바로 그것이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의 상승은 정치적 선택에서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으며, 수구 보수의 몰락은 한국사회가 진보적 지향으로 이전되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탄핵반대의 국민의 목소리는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 열망이지 친노, 반노라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다. 총선이라는 현실정치의 선택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관계없이 국민들의 한국사회 미래의 이념적 지향의 선택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의 당선으로 이미 확인된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탄핵반대로 인하여 더욱 강렬하게 다시 확인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보수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기득권과 지역주의를 버리고 부패를 청산해야 한다. 동시에 진보도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의 열망을 어떻게 현실적 대안으로 실천할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절대 다수가 탄핵을 반대하고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왜 국민들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지를 바로 보아야 한다. 정권 초기에 누렸던 국민의 절대적 지지가 왜, 어떻게 상실되었는가를 진지하게 되새긴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질 것이다. 보수가 다시 태어나고 진보와 대통령이 변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다면 지금의 상황은 혼란과 갈등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과거를 청산하고 희망의 미래로 가는 대전환의 역사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장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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