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8월 2007-08-16   999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아름다운 청년

참여연대 새 보금자리인 통인동(종로구)에서 점등식이 있는 날이었다. 진종일 장맛비는 오락가락하며 불쾌하게 습기를 돋우고 있었지만 ‘아름다운 청년’을 만나러 가는 기분은 상큼했다. 물기를 털며 옥상에 올라서니 는개(안개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 속으로 펼쳐지는 산자락이 그림이었다. 그것도 영락없는 조선의 진경산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이다.

그 그림을 배경으로 한 청년이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청년마을 촌장이며 회원모임협의회 부회장인 박진호 회원(34세). 자그마한 체격에 짧게 깎은 머리가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 같은데 캐주얼 정장차림에 사무용 가방이 도시 직장인의 분위기를 살짝 풍긴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생활이 시작되면서 참여연대 회원 가입(2004년 5월)을 했다고 하니 ‘살짝’ 뒤에 숨은 모습이 그의 진면목이리라.

변죽을 울리지 않는 첫 질문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청년마을 촌장으로서 각오나 포부를 말해달라고 하자, “전 청년마을(청마)이 하나의 나무(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 청마의 구성원들은 나무 일부분이고 청마 구성원들끼리의 소통과 성장이 곧 청마의 성장- 나무의 성장- 이며 숲의 완성이라고 여겨요. 구성원들과의 소통이 잘 되는지 살피고 촌장으로서 소명감을 갖고 소통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모임의 횟수보다는 청마가 지향하는 약자와의 연대를 기억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갈 겁니다.”

또박또박 호소하듯 주장하는 화법 속에는 나무가 숲을 이룰 날이 멀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럼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싶어 참여연대 가입 동기를 물었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학생운동을 할 때 존경했던 선배가 참여연대 회원 가입을 권하면서 청년마을 모임을 적극 적으로 소개했어요. 약자와의 연대를 통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고 봉사활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아름다운 인생 아닌가요? 청소년기에는 목회자의 꿈을 꾸면서 낮은 데로 임하는 삶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대학 가서 시각 교정이 좀 되었죠. 더구나 청년마을 활동을 하면서 버마 사람들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컴퓨터 자판에서조차 ‘버마’라고 치면 ‘미얀마’로 자동으로 변경되는 ‘사라진 나라’를 위해 ‘프리버마 캠페인’에 그는 힘을 보태고 있다. 군부정권에 의해 미얀마라는 국명으로 개명되어버린 버마. 우리도 ‘광주사태’가 아닌 ‘광주항쟁’으로 기억하고 기록하길 원하듯이 프리버마 캠페인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되찾는 운동이고, 그 중심부에 그가 있다.

매달 첫째 화요일 12시 버마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고, 매주 화요일에는 종각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는 직접 피켓을 만들어 참가하고 있다. 그 열정의 시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이지요. 남을 이해하고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사랑이라 생각해요. 우린 치열한 투쟁과 노력으로 제도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루어냈는데, 아직도 우리 가까이에는 유린되는 인권과 탄압받는 제도가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죠. 작은 힘이나마 모을 수 있을 땐 동참해야죠. 다행히 사무실이 종각역 부근이니 1인 시위에 적극 참가할 수 있어 행복해요. 사랑하면 행복하잖아요.”

대학에서 전공했다는 심리학을 인용치 않더라도 사랑이란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답게 사랑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그의 개인 홈피에 들어가면 이런 글이 떠있다. ‘과거에는 혼자 사는 법을 배웠다면 이젠 같이 사는 방법을 배울 때 인 것 같습니다.’라고. 그러기에 그에겐 참여연대가 있고, 청년마을이 있는 게 아닐까. 프리버마 캠페인을 벌이면서 한국의 민주화 수준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현재 버마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한국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시간에 역동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제도적으론 성공했지만 이젠 내용을 담아야하는데, 사람들은 틀만을 고집하며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분위기가 오래가는 게 문제지요. 앞서 말했듯이 소통을 해야 성장하는 건데, 아직 갈 길이 멀고 먼 것 같아요.”

길은 멀어도 마음만 있다면, 함께 가는 길동무가 있다면 머지않아 그 길에 당도하리라. 수줍어하던 청년의 얼굴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빗소리 따라 한여름 밤은 깊어가고 이야기 또한 끝없이 이어진다.

주변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계획과 참여연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IT산업이라는 게 수명이 짧아요. 직장이라고 몸을 담고 있으니 끝없이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게 우선이죠. 참여연대는 이젠 저항이 아닌 소통이 참여연대의 방향이 아닐까요?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감시가 아닌 통합의 기능을 강화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요. 회원들의 도움이 이럴 때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함축된 말 속에 참여연대의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니 통인동 보금자리가 휘영청 밝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밝은 미래의 지름길이 예감이니까.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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