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3월 2004-03-01   707

[기획 2004 사회운동 동향] “목숨을 내놓아도 쌀은 내놓을 수 없다”

농민들이 목숨걸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이유


작년 한 해 농민들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이하 FTA)’저지 투쟁을 위해 상경한 날이 무려 114일(경찰집계)이다. 농사일손도 부족한 농민들이 그렇게까지‘한.칠레 FTA’를 결사적으로 반대한 이유는 분명하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이 취약한 한국농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칠 뿐 아니라 공산품 수출에도 큰 이익이 없어 결과적으로는 국가적 손실을 가져다주는 잘못된 협정이기 때문이다.

농업피해 불구하고 국익 실효성 불분명

우리나라는 인구 1500만(우리나라의 1/3)의 칠레시장에서 연 5억 달러의 무역적자(수출 5억 달러, 수입 10억 달러)를 내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체결로 우리가 얻는 것은 6%의 관세면제인데, 그 효과는 우리 환율이 72원 오르는 것에 불과해 급격히 변하는 남미의 환율정책으로는 경제적 이익을 낙관할 수조차 없다. 더욱이 칠레는 아펙(APEC) 보고르 선언에 따라 2010년까지 대부분의 관세 철폐 계획을 밝혔으며 실제로 매년 1%의 관세감축을 시행하고 있어 6% 관세면제 효과는 지속될 수 없다. 결국 국익 실효성도 불분명한 채 농업부분의 피해를 강요하는 정부의 요구를 농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갈수록 농민투쟁의 양상이 더욱 완강해지고 있다. 더 이상 양보할 것도 희생할 것도 없는 농민들의 절박한 처지 때문이다. 농업은 80년대까지 도시민들에게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정부의 계획경제 논리로 희생되어 왔으며, 90년대 이후로는 반대로 시장경제의 논리로 퇴출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산물 가격은 풍년엔 수요와 공급의 신성한(?) 시장경제 원리로, 흉년엔 신성한(?) 국가권력으로 긴급 수입 조치되어 턱없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그 결과 최소한의 생산비도 보장되지 않아 농가부채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농촌은 절망의 늪 속에서 야반도주와 자살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다. 더욱이 올해는 쌀 재협상을 앞두고 있어 농민들이 겪고 있는 위기감이란 일반 국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농업소득의 54%를 차지하고 있는 쌀은 농민들에게 있어 생존의 수단, 그 이상의 목숨과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국내 수입농산물의 60% 미국계 곡물메이저가 장악

2004년 쌀 재협상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농산물의 개방 폭 확대, 혹은 농민 생존권 보장의 차원이 아니라, 명백히 우리 민족의 식량주권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일이며 나아가 통일조국의 근간을 마련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즉 쌀 재협상 문제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이며 7000만 민족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곡물유통량의 80%를 5개의 곡물 메이저 회사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미 우리나라 수입농산물의 60%를 카길이라는 미국계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20년만 식량수출을 금지하면 미국 이외의 국가는 모조리 멸망할 것”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식량파워’는 엄청나다. 실제로 세계 곡물메이저들은 1995년 5월에서 1996년 5월까지 1년 동안 밀 가격을 무려 60%나 올렸다. 식량은 단순한 먹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무기가 되어 버렸다.

일찍이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이 비교우위론자들의 주장으로 1846년 곡물법을 폐지하고 식량을 해외에 의존하였다가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해상봉쇄로 온 국민이 기아에 시달렸고, 인공위성에 핵무기까지 보유한 구 소연방도 결정적으로 미국의 밀가루 포대에 무너진 사실을 떠올린다면 자명한 사실이다.

2002년 농업기반공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논이 제공하는 공익적 기능(홍수예방, 대기정화, 수질정화 등)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했을 때 연간 49조 원이 된다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의 한 해 예산이 112조라고 봤을 때 논의 경제적 가치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막대한 농업보조금(우리나라의 6∼10배)을 지원하면서 자국의 식량자급률을 100% 이상(미국 134%, 프랑스 198%, 캐나다 163%, 영국 125%, 스웨덴 103%, 한국 26.7%) 유지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업살리기는 식량주권 확보하는 길

농업이 이토록 중요함에도 정부는 규모화와 고품질화로 무장하여 FTA, WTO 체제를 극복하자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비단 미국의 캘리포니아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가까운 중국 흑룡강 주변의 200만 헥타르(우리나라 벼 재배면적 100만 헥타르)의 무농약 녹색미 재배단지가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할 목적으로 육성되고 있는 현실에서 규모화와 고품질화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농민들은 없다.

이것이 우리 농업과 농민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 국민들 중 쌀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없듯이, 식량주권을 지키는 문제는 결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적 문제이다. 더더욱 절대적 식량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의 사정을 고려했을 때, 쌀의 안정적 확보는 한반도 평화의 안전핀이며 통일조국의 초석이다.

쌀은 인권이며, 쌀은 문화이며, 쌀은 민족이며, 쌀은 주권이며, 쌀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며 한반도 일촉즉발의 전쟁 참화 속의 평화이다. WTO 쌀 수입개방을 막아내는 것만이 한국농업과 4700만 국민, 7000만 민족이 살길이다.

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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