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6월 1999-06-01   996

진보세력의 현실적 선택은 중선거구제

진보세력의 현실적 선택은 중선거구제

우리나라의 향후 정치의 틀을 바꾸게 될 정치개혁의 열차가 출발하였다. 이 열차의 종착역이 어디인가는 현재의 정치세력에게는 사활이 걸린 관심사이기에, 자신의 정치적 관점과 이익을 정치개혁의 내용에 관철시키려는 기존 정당들간의 샅바싸움이 지루하지만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현재 집권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선거구제도에는 합의를 보지 못하였지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에는 합의를 보았으며,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소선거구제 유지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반대로 현재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기존 정당의 입장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민주정치의 정착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떠한 정치개혁, 선거개혁이 이뤄져야 하는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정치개혁을 바라보는 기본관점을 정립하면서 논의를 풀어보기로 하자.

그 첫째는 극심한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깨뜨리고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기존정당 중 이념문제에 있어 가장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자민련 소속의 정우택 의원이 “앞으로는 이념과 정책에 따라 정당이 생성, 소멸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우리는 이에 동의한다. 민간민선정부의 출범 이후 자유주의정파가 집권까지 했음에도 현실정치에서의 대립구도는 ‘정책대결’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있기에, 기존 정당이 정말 ‘정당’인지 아니면 보스 중심의 ‘사당’, 동일지역 출신 인사간의 ‘지역당’인지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과열 혼탁 막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그리고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정책대결’의 축의 하나가 돼야 할 진보적 정치세력의 제도권 진입이 매우 어렵다. 현재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없는 소선거구제도는 기존의 정당구조에 편입되지 않는 사람의 당선을 극히 어렵게 만들어 왔음은 누차 확인됐던 바, 현행 전국구제는 폐지되고 전국을 단위로 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반드시 도입돼야 하고, 비례대표의 비율이 최소한 지역구 의원의 3분의 1이상으로 확보돼야 할 것이다(또한 이 비례대표 후보중 여성에 대한 할당을 대폭 높여 법으로 정해두어야 할 것이다). 단, 현재 여당이 추구하는 전국을 8개권역으로 나누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오히려 현재의 지역주의를 더욱 더 심화시킬 수 있으므로 완전 잘못된 발상이라 하겠다.

둘째 진보적 정치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막는 선거제도의 장벽이 철폐돼야 한다. 지난 5월 12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12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 전체 지역구 의원이 3명 이상 당선되거나 유효 득표율이 5% 이상인 정당에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키로 합의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현집권당은 정당명부제 도입과 관련해 진보정당의 제도권 진입을 막자는 데 합의한 것인 바, 이는 강력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과거 ‘민중당’과 ‘민중후보’ 전술 등을 통해 제도권 진입을 도모해온 한국의 진보적 정치세력의 과거 득표력을 고려하면, 비례대표 의석 배분을 위한 최저기준은 유효 득표율 2% 혹은 의석 1석 정도도 낮춰져야 할 것이다.

이상은 지역구 폐지 현실적 선택은 중선거구제

셋째 ‘정경유착’으로 표현되는 엄청난 정치부패를 종식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가 변화해야 한다. ‘부패공화국’으로서의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이미 잘 알려진 구문이다. 그리고 한보그룹 사건, 청구그룹 사건 등 최근의 사건만 보더라도 이 부패현상의 최고 정점에는 정치부패가 있다. 선거 때마다 선거비용이 천문학적 숫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고, 기업에 의해 음양으로 제공되는 이른바 ‘기업헌금’ 역시 대규모라는 것 역시 새삼스럽지 않다. 그리고 ‘떡값’ 수수에 대한 뇌물죄 처벌은 사회적 이슈가 된 대형 사건의 경우는 이뤄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가성’이 있니 없니 하면서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지금처럼 돈뭉치가 몰려 들어가는 정치구조, 당선을 위해 사활을 거는 과열, 혼탁선거의 행태를 혁파하지 않고는 정치부패의 근절은 불가능하다. 중앙당 축소, 선거부정부패 근절,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넷째 정치에 대한 주권자 국민의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국정조사권이 국회에 있는데 이에 대한 시민권리를 주장하려면 ‘국민소환제’의 도입이 최선일 테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기성 정치인의 불법, 탈법행위를 감시, 비판하는 노동조합 포함,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만큼은 법으로 허용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거구제 문제가 있다. 대, 중, 소선거구 어느 쪽이 진보·민주정치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 어느 한 쪽이 옳고 그르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1999년 현재 한국사회라는 조건을 외면하고서는 올바르게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원칙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으려면 98년 15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출한 전면적인 정당명부제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각 선거구에서 유권자는 정당이 작성한 후보자 명부를 보고 기표는 정당에 대해서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지역구를 폐지하는 이 안은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서 채택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남는 것은 중선거구제와 소선거구제 사이의 선택이다. 중선거구제의 경우 진보진영이 제도권에 진입하기가 보다 용이할 것이지만 잡다한 정치집단의 혼거(混居) 속에서 진보진영이 정치판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는 역할을 갖기가 힘들게 되는 문제가 있다. 소선거구제의 경우 1석을 위해 사투가 벌어지면서 진보진영이 지역구로 당선되기가 매우 어렵고 선거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현단계 진보진영의 목표는 집권은 아닐 것이다. 단기적·현실적 목표는 제도권으로의 성공적 진입이고, 중기적 목표는 한국 정치지형을 보수·자유·진보의 3자 정립구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진보진영이 영향력있는 집단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중선거구제가 현단계 진보진영의 일차적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다.

조국 울산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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