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796

검은 사자가 되려는 부시, 그를 생각함

깊은 산 속에 검은 사자가 살고 있었다. 큰 나무 밑에 누워 쉬고 있는데, 바람에 날린 나뭇잎이 사자 어깨 위로 떨어졌다. 순간 사자는 비위가 상했다. “이놈의 나무에게 꼭 복수하고 말겠다”고 벼르기에 이르렀다. 며칠 뒤 목수가 왔을 때 사자는 친절하게도, 수레바퀴에 쓰려면 이 나무가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수가 나무의 밑동을 베어 넘어뜨리자, 이번엔 나무의 신이 노했다. 검은 사자 어깨 가죽을 벗겨 수레바퀴에 대면 최고라고, 목수에게 일러주었다. 이리하여 서로 미워하던 사자와 나무는 모두 몸뚱어리를 망쳤다.

불타 석가의 전생설화 자카타의 한 토막이다. 이솝우화라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야기의 출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복수란 어리석은 짓이란 의미만 되새길 수 있으면 된다. “복수는 꿀보다 감미롭다”는 호머의 노래가 귀에 쟁쟁하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통쾌한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도, 복수는 어리석다. 저급한 정의다.

도시화에 이은 정보화에 밀려날 대로 밀린 산천과 논밭이 마음속의 정경으로만 멀어질 때, 가을은 더 이상 체험할 수 있는 풍요의 계절이 아니다. 정리는커녕 만사가 혼란스럽기만 한 것이 요즘 세상을 사는 우리의 심사인데, 가을 바람이 불어오기 전부터 스산하게 만든 것이 부시 정권의 전쟁론이다.

국제법상 전쟁은 인정되지 않는다. 국제연합 헌장은 전쟁뿐만 아니라 무력행사나 무력위협을 금지한다. 자위권 행사를 예외로 두기는 하나, 금지 원칙과 예외적 허용 사이의 분분한 해석은 안전보장이사회에 맡기고 있다. 어쩌면 명목이 앞서는 유엔 헌장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전쟁은 허용되지 않는다. 유엔 헌장에 무력 금지 조항을 두게 된 것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란 비싼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법이 테러와 같은 무력 도발에 두 손 놓고 돌부처처럼 행동하라는 것은 아니다. 참을 수 없는 불법행위에 대항하는 강제조치로 논의되는 것에는 전쟁 외에 보복과 복수가 있다.

보복은 위법하지 않은 행위에 대하여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복수는 비록 위법행위에 대항한 강제조치이지만, 무력 행사는 금지된다. 자위권 행사는 여러 까다로운 조건이 걸려 있다.

부시가 내세우는 것은 ‘테러와의 전쟁’이다. 체면상 전쟁을 들이댈 수는 없으니, 앞에 수식어를 붙였다. ‘테러와의’는 ‘정의로운’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니,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날카롭고 현명한 소수들은 부시의 테러 콤플렉스를 매카시 시절의 레드 콤플렉스에 비유한다. 어쨌든,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부시가 노리는 것은 전쟁이고, 전쟁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굳이 표현하면 복수일 뿐이다.

최소한 두 가지 반대론이 걸린다. 첫째, 작년 9월의 테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다. 그러나 이미 너무도 과하게 복수를 했다. 제대로 된 복수라면, 인명을 살상하지 않는 상징적 시설 폭격으로 그쳐야 했다. 양쪽의 피해의 양을 천칭에 올려보자는 것은 우리 인간성을 스스로 짓밟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미래의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단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공인된 문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이라크가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인과관계나 증거도 들어본 적 없다.

미국이 검은 사자가 되지 않으려면, 하워드 진의 지적대로 군사적 슈퍼파워가 아닌 인도적 슈퍼파워의 가치를 공부하는 수밖에 없겠다. 사족으로 덧붙이면, 복수가 멋있게 보이는 것은 조직폭력배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차병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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