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500

미국패권주의는 몰락하는가2-이라크전쟁으로 전세계 줄서기 강요하는 미국

이라크전쟁으로 전세계 줄서기 강요하는 미국


9·11 테러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문명세력과 테러리스트 및 ‘악의 축’ 국가로 대변되는 문명파괴 세력간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부시 행정부와 미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는 부시 행정부의 바람일 뿐, 새로운 세계 질서의 요체는 9·11 테러 이후 한층 맹위를 떨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이를 견제·제어하려고 하는 다자주의 사이의 대결에 있다. 그리고 이 승부의 중대한 분수령은 이라크 문제가 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초기에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없어도 이라크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가 미국 안팎의 반발이 거세지자, ‘선 유엔결의 후 이라크 공격’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유엔이 미적거리면 미국이 직접 나서겠다는 압력도 높여가고 있다. 특히 미국 측에서는 이라크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안을 유엔을 통해 관철시키고, 이를 이라크가 수용하지 않으면 군사 행동에 나선다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기도 하다.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의 이라크 공격

부시 행정부가 국제법을 무시하고 미국 안팎의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이라크 공격을 강행한다는 것은, 전세계에 걸쳐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미감정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다. 이는 또한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미국의 일방주의를 막지 못하면 세계의 안정과 평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각성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알-카에다와 같은 반미 테러조직의 강화와 확산에 촉매제 역할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공격을 강행하더라도 전세계에 걸친 ‘반미’의 힘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가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세계 질서의 중심에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싫지만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세계 각국 정부의 현실적인 딜레마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여 ‘세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낳고 있기도 하다. 부시 행정부의 오만하기만 한 일방주의가 맹위를 떨칠 수 있는 것도, 부시 행정부 스스로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불참하는 나라가 늘어날수록 입 다물고 있는 만만한 동맹국에 대해서는 거센 참전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예상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감행되면 전세계의 정치·경제는 또 다시 요동칠 것이 확실하다. 특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라크 전쟁이 터지면 자칫 중동 지역 전체가 분쟁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처럼 전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줄서기’를 강요할 것이고, 후세인 정권은 미국의 공격을 이슬람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며 이슬람 국가들과 단체들에게 ‘성전’에 나설 것을 촉구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태도는 단호해 보이지만, 이라크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다. 이라크는 전쟁을 반대하는 국제여론을 등에 업고 있고, 부시 대통령의 9월 12일 유엔 연설 나흘 후인 16일에는 무조건적인 유엔 무기사찰단의 이라크 복귀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유엔에 전달했다. 특히 이라크는 무기사찰단 복귀의 전제조건을 거두고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도록 사찰단의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파격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제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공격의 숨은 의도

이라크의 파격적인 양보에 부시 행정부는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일부 언론은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파들이 사찰 재개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하기까지 한다. 즉 사찰이 재개되고 대 이라크 경제제재가 완화되면 미국이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의 대 이라크 전쟁 계획은 표면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거론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즉, 반미성향의 후세인 정권을 친미 정권으로 대체해 중동에 대한 장악력, 특히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것과 함께,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한 목적에서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문제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와 미국 내 양심 세력의 목소리를 계속 무시한다면, 이와 같은 해석은 갈수록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숨은 의도’를 폭로하고 널리 알릴 때 반전 여론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전쟁으로 계속 길들여진다면, 이라크와 함께 ‘확전 목록’에 올라 있는 북한과 한반도의 운명도 숙명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한반도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선 석유의 대부분을 중동 지역에서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석유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극심한 경제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이라크 공격을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부터 전투/비전투 병력 파병과 전쟁비용 지원요구를 받을 것도 뻔한 일이다.

북한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해 전쟁을 벌이면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은 관심 밖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북미회담은 거의 이뤄지지 않거나, 이뤄지더라도 실질적인 협상을 위한 대화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렇게 될 경우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인 변수인 북미관계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며,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체제생존을 모색해 온 북한은 또 다시 시련의 시기를 맞을 수도 있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북미관계가 계속 정체되면 남북관계 역시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높다.

‘남의 불행’과 잠재된 한반도 위기

반면에 북한이 미국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의 가능성도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핵, 미사일 등 북미간에 맞서 있는 첨예한 문제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2003년에 1994년보다 심각한 전쟁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그런데 미국이 이라크 공격에 나서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은 적어도 이라크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라는 ‘남의 불행’을 통해 미국의 대북한 군사행동 및 이에 따른 한반도 전쟁 위기를 ‘잠시’ 피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는 중장기적으로 더욱 위험한 상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공격을 강행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규정한 대량살상무기 및 독재정권을 ‘전쟁으로 다스리겠다’는 오만한 발상이 관철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성공할 경우 이라크와 함께 대량살상무기 최대 위협 국가이자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은 그 다음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게 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정신이 팔려 북미간의 핵심적인 문제인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한 협상을 하지 않고 이러한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이라크 전쟁의 종결과 함께 부시 행정부의 최대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로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91년 걸프전 직후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한을 정치적, 군사적 응징에 초점을 맞춘 것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이 후세인 제거라는 이라크 공격의 목표를 달성할 경우, ‘이제 남은 나라는 북한’이라는 미 강경파의 시각이 득세할 가능성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걸프전 직후 파월 당시 합참의장이 “이제 남은 것은 김일성과 카스트로”라고 말했던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욱식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