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0월 2002-10-24   1304

압구정동은 전깃줄에 휘말려

성북역에서 용산으로 가는 지상철을 타고 옥수역으로 가서 지하철 3호선을 갈아타고 한강을 건너 압구정동으로 간다. 지하철은 강변에 늘어선 현대아파트 사이로 미끌어져 들어간다. 현대백화점에서 갤러리아백화점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압구정동을 둘러볼 참이다.

벌써 오래 전이지만 압구정동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구정물’이라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비슷한 말이 떠올랐던 것뿐이었지만, 그 뒤에 압구정동에 관해 쏟아진 이야기들을 살펴보노라면, 이런 연상이 꼭 아무것도 아닌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압구정동을 말 그대로 ‘구정물 동네’ 취급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압구정동이 이렇게 막 다루어진 데에도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는 하다. 먼저 어느 날 갑자기 고관과 부자들이 모여 동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는 1970년대에 이곳 강가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투기와 비리의 풍문이 넘실거렸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다카키 마사오식 근대화의 또 다른 일그러진 초상이 되었다. 그 뒤 한국 사회가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접어들던 1990년대 초에 압구정동은 다시금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신세대’의 중심지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압구정동은 이번에는 소비사회화의 일그러진 초상이 되었다. 이 두 가지 초상은 잘못된 정치와 경제가 그린 것이었기에 아무리 휘황하게 치장을 했어도 아니 휘황하게 치장을 하면 할수록 압구정동은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초상으로 여겨졌다.

1970년대 초까지 이곳은 배밭이었다고 한다. 현대아파트와 동호대교 사이의 강가 쪽에서 아직도 시퍼렇게 잘 살고 있는 커다란 포플러 나무들은 그때의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나지막한 언덕들마다 배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강 건너 저편으로는 응봉과 남산이 보이고, 그 사이로 멀리 북한산 줄기들도 보였을 것이다.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그 아래로 백로며 갈매기들이 느긋하게 날아다니고, 배들을 싣고 한강은 유유히 흘렀을 것이다. 그러니 단종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한 ‘무서운 삼촌’ 세조의 장자방이었던 한명회가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유유자적하며 노닐기에 아주 맞춤한 곳이었을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런 모습이었을 이곳이 하루아침에 다른 모습이 된 것은 1970년대 강남에 밀어닥친 개발 붐 때문이었다. 배가 자라던 나지막한 언덕은 물론이고 갈대가 무성하던 강가의 습지까지도 모두 불도저로 밀어 없애고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졸지에 돈벼락을 맞은 땅부자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했고, 그렇게 들어선 아파트에 고관과 부자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압구정동은 갈매기를 벗삼아 노니는 한가로운 강가의 시골동네에서 고관과 부자들이 시커먼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서울의 신흥부촌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천지개벽하는 일이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멋진 얼굴을 파는 성형외과

압구정동은 ‘왕회장’이 만든 동네이다. 현대아파트와 함께 현대백화점은 압구정동을 대표하는 시설이다. 한국의 백화점들은 대부분 꽉 막힌 상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안은 밖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햇빛이라고는 전혀 들어오지 않고 완전히 전기불빛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 때문에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더 번쩍이는 것 같다. 너무 깨끗하고 휘황해서 옷차림을 다시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이 다른 곳보다 유별나게 더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어딘가 더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압구정동이 주는 어떤 위압감, 아니 위화감의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은 ‘부자들의 압구정동’을 상징하는 공간이지 않은가?

현관에서 우연히 안내판을 보게 되었는데, ‘하늘정원’이라는 글자가 내 눈을 잡아끌었다. 옥상을 정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곳에 몇 번 왔으면서도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올라가 보니 대나무며 잔디를 심어 놓았다. 커다란 시멘트 상자의 꼭대기가 풀빛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공연장과 카페도 들여놓았다.

마침 외국인 밴드가 노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앰프를 크게 틀어놓아 그 소리가 귀를 때린다. 꼭 이렇게 앰프를 틀어서 시끄럽게 노랫소리를 들려줘야 하나? 조용하게 쉬었다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도무지 그럴 여지를 주지 않는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은 택시나 버스를 탄 기분이다. 그러나 옥상을 이렇게 정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서울처럼 척박한 곳에서는 대단히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더 은은하게 운영해서 새들도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대백화점을 나서서 길 건너편을 보니 유난히 성형외과 간판이 눈에 많이 띈다. 상가마다 성형외과가 들어서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이곳만이 아니라 압구정동의 곳곳에서 성형외과를 볼 수 있다. 마치 편의점이나 음식점이 들어서 있는 것처럼 성형외과가 들어서 있는 것 같다. 하기는 요즘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성형을 하는 세상 아닌가? 그리고 압구정동은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곳이고 그 유행에는 옷뿐만 아니라 얼굴도 포함될 터. 그러니 이곳에 멋진 옷을 파는 옷가게들이 들어서는 것처럼 멋진 얼굴을 파는 성형외과가 들어서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사바늘만 봐도 긴장하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어처구니없는 일로 여길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고가도로 아래의 건널목으로 길을 건너 현대아파트 맞은편으로 간다. 건널목을 건넌 곳에서 현대아파트 쪽을 보니 동호대교의 끝자락과 현대아파트가 어울려 서 있는 모습이 어지럽다. 큰길을 가운데 두고 강가의 땅에는 아파트 단지를 들여놓고, 그 건너편에는 땅을 골라서 상가를 들여놓았다. 보통 아파트 안이나 입구 쪽에 상가를 들여놓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고급스러운 모습을 띠도록 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아무래도 상가가 아파트 입구에 늘어서 있으면 그 둘레가 소란스럽고 지저분해지게 마련이니까.

강 건너에서 볼 때는 영 형편없지만, 이곳에서 보는 현대아파트는 꽤 그럴듯한 모습이다. 쑥쑥 치솟은 요즘의 고층 고밀도 아파트에 익숙한 눈으로 보자면, 이 아파트는 저층으로 느껴질 정도다. 여느 아파트처럼 무뚝뚝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요즘의 고층 고밀도 아파트처럼 사람을 질리게 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지은 지가 오래되어서 여기저기 낡기도 했으련만 그냥 보기에는 그렇게 낡아 보이지도 않는다. 부자들이 사는 만큼 계속 투자를 하고 있어서 그럴 테지만.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고 병들어 못 쓰게 되지만, 나무는 사람의 시간 범위 안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커지고 무성해진다. 우리는 그 덕을 누리며 쾌적하게 살 수 있다. 현대아파트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곳의 아파트 단지는 더욱 더 쾌적한 곳이 되었다. 곳곳에서 커다란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드리우고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5∼6층 높이까지 자란 낙엽송들은 보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무성한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곳이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무슨 공원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름만 로데오

눈을 돌려 이쪽의 상가들을 보니 서울의 여느 곳이나 다름없는 한심스런 풍경이다. 가로수들은 아름답게 잘 자라고 있지만, 상가의 모습은 소란스럽고 지저분하다. 예전에 지은 오래된 상가와 얼마 전에 새로 지은 상가들이 함께 줄을 맞춰 서 있지만, 잘 살펴보지 않으면 새것과 옛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간판들이 난장을 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창마다 요란스레 선전문을 붙여놓고 있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 낡은 상가의 옥상에는 텔레비전 안테나들이 이상한 벌레의 더듬이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다. 이런 모습은 새로 지은 건물에서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엉망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성수대교를 지나 도산공원으로 이르는 길을 건너 ‘로데오 거리’를 향해 나아간다. ‘압구정역 상권’을 지나 ‘로데오 거리 상권’으로 가는 것이다. 본래 로데오 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로스앤젤레스의 부자동네인 베벌리힐즈에 있는 상가가 아닌가? 거기에는 유명의류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도 압구정동의 부자들을 겨냥하고 비슷한 가게들이 숱하게 들어섰다. 이 때문에 이곳을 로데오 거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서울의 곳곳에서 로데오 거리를 만날 수 있다. 문정동에도, 목동에도, 잠실에도 로데오 거리가 있다. 심지어 용인의 수지와 부천의 상동에도 로데오 거리가 생겼다. 로스앤젤레스의 로데오 거리는 로스앤젤레스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근사한 거리지만, 우리의 로데오 거리들은 어떤가? 과연 그렇게 근사한 거리들인가? 그냥 이름만 로데오 거리가 아닌가?

로데오 거리는 압구정동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다. 권리금은 1억∼2억 원에 이르고, 평당 임대가는 1000만∼2000만 원에 이른다. 이태원처럼 이곳도 그 입구에 쇠로 만든 아치를 세우고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라고 문패를 달아 놓았다. 그 꼴이 정말 우습기 짝이 없다. 거리를 멋있게 보이도록 세워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볼품없게 만들기 위해 세워놓은 것 같다. 아예 세우지를 말든가, 세우려면 정말 멋있게 만들어 세우든가. 정말 로데오 거리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곳에서는 엉터리 거리조형물이 아니라 멋지게 잘 자란 야자나무가 사람들을 맞는다. 자연과 거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간판들의 홍수

조금 안으로 들어가니 길가의 상가 뒷길과 만나는 네거리가 된다. 여기서 갑자기 눈이 어지러워진다. 사방을 돌면서 보니, 모든 공간이 크고 작은 간판들로 가득 차 있다. 정말 작은 빈틈도 없이 모든 공간이 간판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마치 서로 자기네가 최고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듯하다. 그렇게 달려드니 눈이 어지러워 정작 간판의 글자는 읽기도 어렵다. 비싼 곳에서 장사를 하니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고, 그러자니 이 난리를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인가? 정말 로데오 거리에서는 눈을 씻고 보아도 볼 수 없는 난장판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가게들이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볼거리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물건을 사고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구경하며 즐긴다.

간판들의 홍수를 헤집고 길을 걷자니 영 정신이 사나워져서 견디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잠시 눈길을 낮추니 이번에는 여기저기 길가에 널린 쓰레기들이 ‘하이루, 방가’ 인사를 한다. 어찌 이리도 너저분할까?

오가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멋대로 버려서 그럴 뿐만 아니라 길가의 가게들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길가에 내놓는다. 오가는 사람들이 더럽다고 타박을 하건 말건 가게 안에 쓰레기를 둘 데가 없으니 그냥 내놓는다는 것인지? 하기는 오가는 사람들도 이런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내놓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정말 로데오 거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곳에서 거리는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며 쉬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거리에 물건은 물론이고 쓰레기를 내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저기 걷다가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파 목을 축이려고 하니 다른 곳처럼 이곳에서도 한잔 걸칠 수 있는 맥주집들은 이층이나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 거리에서 바람을 쐬며 가볍게 한잔 할 수 있는 곳은 좀처럼 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곳은 전혀 없는 것 같다. 나야 두 발이 튼튼하니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비단 맥주집만이 아니다. 일층에 있는 가게들에도 문턱이 있고, 보도도 영 좁아 터지기만 해서,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이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정말 로데오 거리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 2층 건물에도 그런 사람들을 위한 엘리베이터를 마련해두고 있다. 부자 동네다운 시설과 친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돈 많은 바보들

인터넷으로 압구정동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대체로 그 정체성을 1990년대에 들어와 새롭게 떠오른 젊은이의 거리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명동을 대체했다는 주장이 눈에 띄었다. 구체적인 정보는 주로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옷가게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점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한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곳의 옷은 대체로 아주 비싸고, 이곳의 음식은 대체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이런 곳에서 즐기고 노는 젊은이들은 어떤 젊은이들인가?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우리는 젊은이의 거리라면 으레 옷가게와 음식점을 떠올리게 된다. 명동, 신촌, 대학로, 그리고 압구정동에 이르기까지 예외는 없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게 정상적인 것일까? 젊은이의 거리 운운하는 정보들이 왜곡된 젊은이의 거리에 관한 상을 만들고 나아가 결국 젊음을 왜곡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압구정동을 둘러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비싼 곳이라고 해서 결코 좋은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로데오 거리의 엉성한 스테인리스 가로등을 보라. 나라 전체에서 소문난 부자동네고, 그런 부잣집 자제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지만, 고작 그렇게 엉성한 가로등을 세워놓았을 뿐이다. 거리 자체를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생각 따위는 이 거리의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로데오 거리라는 이름만 멋대로 옮겨왔을 뿐, 정작 그 거리를 배우겠다는 자세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로데오 거리의 물이 흐려지면서 부잣집 자제들은 청담동으로 옮아갔다지만, 그곳이라고 해서 별로 다를 것은 없다. 거리는 여전히 엉망이다. 잘 자란 버즘나무 가로수들이 거리에 생기와 정취를 불어넣고 있을 뿐이다.

성형외과가 넘쳐나는 이곳에서 정말 뜯어고쳐야 할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이 동네의 얼굴인 거리이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서 위를 올려다보면, 아니 구태여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앞을 보기만 해도, 길 위로 어지럽게 뒤엉킨 시커먼 전깃줄들이 종횡으로 오가는 것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가 그런 것처럼 압구정동도 똑같이 엉망으로 전깃줄에 휘감겨 있는 것이다. 이렇듯 어지럽고 너저분한 거리는 그대로 내버려둔 채, 고급 의상실이며 음식점으로 들어가서 부를 과시하는 저 부자들. 이들에게는 졸부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돈 많은 바보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는 서울에도 정말 로데오 거리 같은 곳이 생겨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경제적 능력이라면 그런 거리는 당연히 생겨났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황도 문제임에 틀림없다. 돈이 많아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이 사회의 병폐가 드러나는 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거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하기만 해도 좋겠다. 지금의 압구정동은 또 하나의 쓰레기통일 뿐이다. 발 아래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머리 위에는 전깃줄이 어지럽게 뒤엉킨.

홍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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