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2월 2004-02-01   256

[역사로 풀어보는 사회이야기] ‘빨간 색안경’ 낀 마녀, ‘차떼기’에 나서다

2004년 새해가 밝자 마자 ‘5.6공 차떼기 색깔당’의 원내총무가 무슨 계시(?)를 받았단다. “김정일 호감세력은 노무현 지지세력”이란다. 분단 반세기 동안 줄기차게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레드 콤플렉스’를 또다시 불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1950년 2월, 미국의 매카시 의원은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무시무시한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을 계기로 이른바 ‘매카시즘’의 광풍이 시작되었다. 매카시와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인들, 진보적 언론인과 예술인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과 심지어는 국무장관과 군 장성까지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무슨 증거나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매카시가 받았다는 ‘계시’만 있었을 뿐이다.

르네상스 문화가 최고조에 이른 15~17세기 유럽에서는 약 50만 명가량의 사람이 마녀재판으로 사형을 당했다. 마녀로 몰린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약간 더 신통력이 있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병을 낫게 해주거나 운명을 점쳐주었던 무당이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거나 ‘사바트’라고 불리던 악마의 연회에 참석한 적도 없었다.

매카시즘과 마녀사냥의 역사적 결말은 이렇다. 1954년 12월 상원청문회에서 비열한 방식이 들통 난 매카시는 견책조치를 받고 공직을 사임했고, 1957년에 초라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그 후 매카시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렸던 사람들은 모두 사면 복권되었다. 마녀사냥은 근대 과학의 발달로 사람들이 더 이상 미신을 믿지 않자 은근슬쩍 사라졌다.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와 권력자들이 면죄부를 팔고, 몰래 정부(情婦)를 두고, 성직을 매매하는 것을 눈속임하기 위해 마녀사냥을 했던 것을 시민들이 깨달은 것이다.

빨갱이도 없었고 마녀도 없었다. 다만 빨갱이와 마녀의 희생을 필요로 한 권력자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2004년 한국의 역사에서 색깔론의 운명은 어떠할까?

작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정부패와 비리혐의가 있는 국회의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직후 색깔론이 나온 것은 역사상 우연의 일치일까?

박상표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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