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2월 2016-01-29   643

[듣자] 2월, 한국 무대에 서는 조성진을 생각하며

 

2월, 한국 무대에 서는 
조성진을 생각하며

 

 

글. 이채훈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등.

작년 쇼팽콩쿨에서 우승하여 온 국민을 열광시킨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드디어 한국 무대에 선다. 2월 2일 예술의전당에서 <쇼팽콩쿨 입상자 갈라 콘서트>가 두 차례 열린다. 조성진은 낮에는 폴로네즈polonais, 4분의3 박자의 느린 폴란드식 춤곡 등 독주곡을, 저녁에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참여사회 2016년 2월호

조성진이 2월 2일 드디어 한국 무대에 선다

 

조성진이 이룬 쾌거를 계기로 클래식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이 높아진 건 반갑다. 이 열기가 풍요로운 문화의 힘으로 승화되려면 기억할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조성진 뿐 아니라 다른 젊은 연주자들도 아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K-클래식’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젊은 연주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조성진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고 평가되는 임동혁, 김선욱, 손열음, 문지영 등 주목할 만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이미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이 가운데 손열음은 선배로서 조성진에게 유럽 음악계의 정보를 주고 실질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솔로이스트로 뛰어날 뿐 아니라, 실내악과 듀오 연주에도 기꺼이 참여하여 음악을 즐기며, 단정한 글솜씨로 음악 칼럼도 쓰고 있으니 대견하다. 

 

대다수 젊은 연주자들은 손열음처럼 여유를 즐기지 못한 채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젊은 음악도 사이에도 승자독식의 관행이 굳어져, 음대를 지원하는 학생 수가 부쩍 줄었다고 한다. 최유준 교수의 지적대로, “끊임없이 콩쿨에 도전하고 연주 경력을 쌓아도 빛을 보기 어려운 클래식 연주자들의 처지는 험난한 ‘스펙 쌓기’의 정글 속에 있는 이 땅의 다른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다.” 조성진에게만 환호하고 다른 젊은 음악가들을 외면한다면 승자독식의 폐해를 강화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이들이 연주하는 작품과 작곡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조성진은 콩쿨을 앞두고 “쇼팽의 발자취를 직접 체험하며, 쇼팽의 생각과 행동을 그대로 느끼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쇼팽을 ‘고귀하게, 극적으로, 시적으로’ 연주해야 하며 ‘노스탤지어’를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그가 들려 줄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 E단조에 대해 알아보면 어떨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Op.11 (조성진 2015 쇼팽 콩쿨 결선 연주)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Chopin Concerto 1 Seing-Jin을 검색하세요.
https://youtu.be/614oSsDS734

쇼팽(1810~1849)은 39살의 짧은 생애 중 전반부는 폴란드에서, 후반부는 프랑스에서 살았다. 그가 숨을 거둔 뒤 그의 시신은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 매장됐지만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의 성십자가 성당에 안치됐다. 쇼팽의 유언에 따라 누나 루드비카가 그의 심장을 폴란드로 가져온 것.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폴란드를 떠나기 직전인 1830년 10월 11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초연됐다. 고별 연주회였다.

 

만 20살이 된 쇼팽은 온 마음을 담아서 이 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이 곡에는 러시아의 압제에 허덕이는 조국 폴란드의 현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첫사랑인 음악학교 동급생 콘스탄차 그와드코프스카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이날 연주가 끝난 뒤 쇼팽은 콘스탄차에게 반지를 주었다. 이 선물이 무슨 뜻이었는지 콘스탄차는 몰랐을 것이다. 쇼팽은 끝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그녀와 헤어졌는데, 이날 연주한 협주곡으로 모든 것을 말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폴란드의 흙을 은잔에 가득 담아 쇼팽에게 선물했다. 친구들을 기억해 줘, 조국을 잊지 말아 줘…. 

 

그해 11월, 쇼팽이 빈에 도착할 무렵 바르샤바는 혁명의 불길에 휩싸였다. 쇼팽은 조국에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총을 들고 싸우고 싶었다. 봉기의 대열 한 귀퉁이에서 북이라도 쳐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친구들은 만류했다. 쇼팽의 가냘픈 몸으로는 견디기 어렵고, 총칼이 아니라 예술로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폴란드 민중의 봉기가 러시아 군인들의 총칼에 짓밟혔다는 소식에 쇼팽은 미칠 듯 하느님을 원망했다. 파리에 도착한 뒤 그는 친구 마친스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눈물을 억누르며 콘스탄차의 안부를 물었다. “삶이나 죽음이나 내겐 같은 거야. 그녀가 나를 잊었다면 난 아무 부족한 것 없이, 외롭지 않게 살고 있다고 전해 줘. 그녀가 친절하게 내 안부를 묻거든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전해 줘. 아니,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가 너무 외롭고 불행하다고 전해 줘. 아니, 내가 죽고 난 뒤 내 뼛가루는 그녀 발밑에 뿌려져야 한다고 전해 줘.”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 E단조, 1악장은 고귀한 슬픔과 서정미, 열정적인 사랑이 넘친다. 특히 콘스탄차를 생각하며 쓴 2악장 로망스(링크 21:05)는 해맑은 동경과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 부분은 “아름다운 봄의 달빛이 스며드는 밤처럼,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이 반주하도록 작곡했다”고 쇼팽 자신이 설명했다. 피날레(링크 30:41)는 폴란드 크라코프 지방의 민속 무곡인 크라코비야크다. 

 

최소한의 예습을 하고 들으면 음악이 더 잘 들리지 않을까? 쇼팽 콩쿨은 단순한 경연대회가 아니라 전세계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참가하는 쇼팽 축제의 성격이 짙다. 참가자들은 폴란드를 떠날 무렵의 쇼팽 또래인 20살 안팎의 젊은이들이다. 2월 2일 <쇼팽콩쿨 입상자 갈라 콘서트>는 무척 아름다운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조성진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입상자들에게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 아쉽게도 표가 매진됐기 때문에 나도 못 가고, 대다수 『참여사회』 독자들도 못 가실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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