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7월 2010-07-01   1721

그 사람 그 후-민주적 대학자치로 비리 사학재단 지켜내기



민주적 대학자치로 비리 사학재단 지켜내기




박병섭 상지대 비대위위원장(법학과 교수)


강지나 참여사회 편집위원



지난 5월 25일, 50줄 넘은 교수가 삭발을 했다. 20대에 해병대에 입대할 때 삭발하고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30년 전에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삭발을 한다”고 그는 말했다. 지켜야 할 학교? 바로 사학비리의 상징이 된 상지대학교다. 17년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상지대 문제는 그의 삭발결의에서 보듯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임 이사장이었던 김문기 씨가 다시 복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얼마나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이다. 6월 24일 삭발을 한 민머리에 그 사이 새싹처럼 잔머리가 송골송골 올라온 박병섭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나보았다.


지난 5월 25일 상지대 비리 재단 퇴진을 촉구하며 상지대 교수, 교직원 10명이 삭발을 단행한 후 박병섭 비상대책위원장이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_프레시안
박병섭 교수가 상지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7년 전 김문기 전 이사장이 입시부정혐의로 구속된 후였다. 상지대 사건이 한참 떠들썩했을 때 박병석 교수는 독일에서 유학중이었다. 독일 유학생들 사이에서 공동으로 받아보던 신문지상에 상지대 사건이 일주일 내내 보도되는 걸 보고 그는 “뭐 이런 학교가 다 있나?”라고 그저 개탄해 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많은 민주인사들이 상지대 임시이사회에 참여하고, 특히 평소 존경하던 김찬국 교수가 1대 민주총장으로 취임하는 걸 보고는 총장을 보필해서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어 보자 결심하고 기꺼이 귀국길에 올랐다.

“그때 학교민주화를 다시 일구기 위해 새롭게 동참한 교수가 28명이나 되었지요. 김문기 씨는 좌파교수들이 학생들을 선동해서 학교가 좌지우지되고 있고 자신은 김영삼 정부의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줄곧 주장해왔는데, 우리는 그 후 16년간 학교를 투명하게 일구기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저도 기획실장부터 부총장까지 학교보직을 많이 맡으며 일했는데 지금까지 우리학교가 마치 비리사학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검찰수사, 검찰계좌추적, 감사원감사, 교육부감사 등 안받아본 조사가 없을 정도였어요.”


상지대 비리, 그 구체적 실상

박 교수는 김문기 이후 임시이사회체제에서 교수재직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도 상세히 상지대 비리사건들을 알고 있다. 보직교수로서 업무를 맡아하면서 관련 문서들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상지대라고 얘기만 많이 들었지 대다수 사람들은 구체적인 김문기 씨의 비리행적을 세하게 모르고 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의 비리행각은 이사장에 처음 취임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김문기 씨는 ‘빠고다가구’라는 가게를 하면서 민관식 씨(당시 국회의원)를 지원했고 1972년 민관식 씨가 문교부장관이 되자 학교에 책걸상을 납품하면서 부를 쌓았다. 그리고 이듬해 민관식 장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상지대학(당시 원주대학)의 관선이사로 부임하게 되었고 74년에는 정식이사가 된다. 원 설립자인 고 원홍묵 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협박에 의해 강제로 이사직 인수장을 받아냈다고 한다.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 대학원관에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옛 비리 재단 쪽 인사들의 정이사 선임을 결정을 반대하는 펼침막이 걸렸다. 사진제공_한겨레
74년 이사장이 된 후 비리혐의로 구속된 93년까지 19년간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김문기 씨는 처음 4년을 제외하고는 이사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이사회 관련 회의록은 모두 이사들의 이름을 목도장으로 파다가 만든 허위 문서였던 셈이다. 그래서 사실 이사회를 열지 않았기 때문에 78년 이후에는 정식 이사장 자격을 갖고 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법원판결이 나왔을 정도다.

그 외에 교수임용상의 뇌물거래, 교수들을 길들이기 위한 부당한 교수 재임용 탈락조치, 입시부정, 친인척을 활용한 족벌경영 등 수많은 비리들을 저질러 왔다. 교수임용시 뇌물거래로 그 당시 1억을 준 사람도 있다고 하니 그렇게 횡령한 돈의 전체액수는 상당했을 거라고 추측된다. 코미디 같은 일도 있었다. 도서관에 책이 필요하면 청계천 헌책방에서 무게로 달아다가 한꺼번에 사와서는 그냥 서고에 꽂아 두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그중 가장 분노할 만한 사건으로 1986년 용공조작설을 들었다. 당시 교수임용과정의 뇌물수수혐의에 대해 분노한 총학생회 측이 총장실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며칠 농성이 진행되던 어느 날, 옥상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불온선전물이 뿌려졌다. 결국 공권력이 침투되면서 학생들은 용공세력이라는 죄목으로 잡혀갔고 그 이후 총학생회 활동은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 나중에 이 사건은 한 직원의 양심선언으로 대학당국의 지시를 따라 조작된 사건임이 세상에 밝혀졌다.

“이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김문기 씨는 일부 좌파교수들이 학생들을 선동해서 자신을 쫓아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지금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용공조작이라는 것이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그런 바탕 하에서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접근들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용공조작을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반국가적인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김문기 씨는 1993년 한의대 입시부정사건으로 19년간의 긴 부패와 비리의 꼬리가 밟히게 되었고 쇠고랑을 찼다.



16년 간 이뤄낸 민주적 운영의 성과들

박병섭 교수는 이사장이 공석인 임시이사회체계 하에서 16년을 보내면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우선, 학사운영이나 등록금책정에 있어서 학생, 교수, 직원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투명하게 운영했다. 직원들이 올해 결산과 다음해 예산을 보고하고 교수, 학생들과 협의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사실 총학생회가 더 어려워했어요. 협의체가 없는 다른 학교에서는 총학생회가
내년 예산안을 못 보니까 그냥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가열하게 주장하면 되지만, 우리 총학생회는 예산안을 이미 봤으니까 사실 타당하면 그 예산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일반 학생들로부터는 불만의 소리를 많이 듣게 되니까 총학생회가 타 학교에 비해 많이 괴로워했죠.(웃음)”

이런 투명한 운영체계는 대학 각 부서의 불필요한 사업경쟁이나 예산 부풀리기를 막는 제어장치역할도 했다. 학생들과 협의한 결과 필요 없다고 생각된 예산을 절차에 따라 삭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최근 대학 경쟁력 강화와 선진화를 외치면서 교수들의 연구실적을 Top-Down 방식으로 쥐어짜내려는 흐름에 대해서도 학문공동체의 철저한 자발성과 동의를 기반으로 한 규제의 방식을 취했다. 그 시발점은 학생들의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의 연구 실적이 너무 낮은 것에 대해 시정조치를 약속해 달라고 등록금협의체에서 학생들이 주장했던 것이다. 그 요구를 받아 안고 그가 부총장으로 재임했던 기간 내에 교수협의체에서 거의 1년 동안 협의를 했고, 결국 정년이 보장된 교수라 해도 학술진흥재단에 2년간 논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1호봉에 해당하는 연구수당을 깎는다는 조항을 만들어 냈다. 물론, 논문을 제출한 즉시 모두 돌려준다는 조건이었다. 이런 노력들은 가시적인 성과도 만들어 냈다. 상지대는 2008년 학진 등재 고지 전국 연구실적 3위, 2009년에는 2위를 차지했다.

박 교수가 외부 인사들을 만나서 이런 학교의 실험들을 얘기하면 다들 놀라는 반응들을 보였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상지대가 비리로 얼룩지고 현재는 교수들이 맘대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인식이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강하게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경쟁력도 민주적 대학 자치에서 강해져

박병섭 교수는 독일에서 헌법을 9년이 넘게 공부하면서 헌법정신이 삶의 가장 근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실천하고 싶은 헌법의 가치 중 하나가 바로 교육자치, 대학 자치이다. 대학자치란 국립대학은 국가로부터, 사립대학은 재단으로부터 교수, 직원, 학생들의 독립과 자치를 의미하며 우리 헌법에 하나의 조문으로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사학재단이 대학을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재산증식의 방법으로 활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이 대학자치 개념의 핵심적인 사항이다. 더불어 학문공동체가 자유롭게 학문 활동을 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에 이바지하도록 지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역시 대학 자치에 속한다.

최근 몇몇 주요 대학에서 기업이 직접 대학에 투자를 하고 선진화,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학문공동체의 동의와 자발적 참여 없이 강제적인 조치들이 행해지고 있는 현실은 모두 대학 자치를 훼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대학이 스스로 진리의 상아탑으로서 연구와 학문의 역할을 포기하고 정치경제적 경쟁력을 지상최대의 과제인 양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기능만을 앞세우게  된 것이 이런 현실을 자초하게 된 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에 대한 박병석 교수의 혜안은 조화와 균형이었다.

“대학이 전통적으로 해왔던 학문연구의 기능만 고집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인재를 양성하고 그 인재가 사회에 기여하게 하는 기능도 해야 합니다. 오히려 현대사회에서는 대학이 구체적으로 산업과 지역사회에 더 기여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두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죠. 어느 한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너무 기업의 하청 공장같은 지위로 하락하는 거 같은데, 사실 글로벌 스탠더드 시대가 요구하는 기업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란 어떤 스펙을 쌓는 형식적인 학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기능에서 나온 창의성, 현실문제에 적용할 줄 아는 응용력까지를 모두 포괄해야 합니다. 지금 주장하는 대학경쟁력은 단기간에는 올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길게 보면 절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것 역시 대학 자치이다. 그가 10년 가까이 유학생활을 했던 독일의 대학체제를 보면 대학의회에서 총장을 뽑는데, 그 안에는 교수대표, 학생대표, 직원대표가 모두 참여하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사회를 독일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대학들이 이런 민주적인 자치를 추구하고 있고 이를 위해 구성원들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고개를 드는 상지대 비리 재단

김문기 씨가 상지대 이사로 다시 복귀를 노리는 현재의 사태와 관련해서 그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주인의식을 꼬집었다. 상지대를 비롯해서 많은 사학재단의 비리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재단 이사장이 학교를 하나의 소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인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비단 이사장 개인의 인식을 떠나서 사회적으로도 인정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학을 활용하고 심지어는 부를 축적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데도 사회가 눈감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밖에서는 상지대를 주인 없는 학교라고 보는데, 사실 재단이 학교법인을 만들면 진짜 주인은 학교법인이 되는 거지, 이사장이 주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법률상의 학교법인이라는 것은 학교 구성원들을 지원하는 체계를 갖는 것이지 사적인 소유물처럼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사립대학처럼 학생들의 등록금에 많이 의존하는 재무구조 체계에서는 대학은 절대로 이사장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지요.”

17년 전 사학비리의 대명사로 불리던 상지대가 정부의 의지와 시민사회의 도움, 그리고 대학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해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해왔고, 그 결과 방만하거나 나태함으로 빠지지 않고 현실적인 성과들도 내면서 여기까지 발전해 온 것을 보면, 사학비리에 시달리는 이 세태에 하나의 모범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지대의 이런 모범사례를 불편하게 여기면서 민주정부 10년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세력을 적출하자고 주장하는 일부 세력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다시 받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지대를 지키는 것은 한국사회에 큰 의미 있는 하나의 전범을 만드는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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