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6월 2007-06-01   1126

휴식같은 친구

늦은 밤, 뭔가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전화를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항상 방금 잠에서 깬 듯 한 게슴츠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불규칙한 생활 패턴까지도 나와 비슷한 나의 베스트 프렌드, 지강이.

중학교 때 만난 지강이는 얼핏 보면 나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친구다. 키면 키, 외모면 외모 나와는 극과 극이라 할 정도로 다르다. 일반적으로 남자 학교라는 곳이 서로 비슷한 친구들끼리 떼를 지어 다니면서 얄팍한 우정을 과시하는 곳 아닌가. 그런 면에서 지강이와 나의 세계는 달랐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지금까지 이렇게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는지 의아하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친해지게 된 계기는 조별 특별 활동을 시작하고부터인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 조별로 학급 일지를 쓰기 시작했고(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마치 ‘교환 일기’와도 같았다.), 10여 명 되는 조원들이 돌아가며 각자의 일상에 대해 쓰기 시작했는데, 지강이가 그린 만화와 독특한 글들은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충분했다. 어느 땐 학교와 기존 체제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하기도 하고, 어느 땐 위트 있게 자신의 일상을 그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난 그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까지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고 있다.

처음 지강이의 집에 간 날을 기억한다. 친구의 방에는 수많은 CD와 비디오가 진열되어 있었다. 난 놀란 눈으로 책장 속의 자료들을 둘러보았다. 중학교 때부터 방송반을 지낸 나는 영상 쪽에 관심이 많았다. 이야기를 해보니 지강이 또한 엄청난 영화광이었다. 친구의 집에는 남들은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영화들과 애니메이션들이 차곡차곡 진열되어 있었고 우리는 같이 영화를 보며 즐거워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군사 독재를 방불케 하는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였다. 이런 학교에서 감수성을 잃지 않고 버틸수 있었던 건 아마도 지강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의 관심사를 교류하고 통할 수 있는 사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각자 대학생활을 하며 우리는 조금 멀어졌다.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간 지강이는 바쁘게 학교생활을 하였고, 나는 나 나름대로 대학교 방송국에 들어가 서로 만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가슴 속에 쌓인 이야기를 전화로 나눴고, 지강이는 언제든 귀찮아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곤 했다. 때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객관적으로 판단해주기도 하고, 때론 냉철한 조언으로 나를 이끌어 주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내 친구 지강이는 자신의 꿈을 좇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정진하는 친구를 보며 나 또한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한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지강이는 나에게 있어 그런 아이다. 내가 괴롭고 우울할 때 위로가 되고 안식처가 되는 휴식 같은 그런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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