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6월 2007-06-01   790

살 만한 세상

ㄷ님의 블로그에서 딱한 사정을 접했다. 아는 이가 건물청소를 하다가 발을 헛딛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지만 수술을 받을 돈이 없어 장애자로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한다. 내리는 봄비가 ‘돈’비라면 딱 그 사람이 필요한 수술비만큼만 함지박에 주어 담고 싶다고 독백처럼 쓴 글이었다. 다친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도 자꾸만 그 사람이 마음에 걸렸다. 그를 도우려면 돈이 필요하니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일이라서 열흘 가까이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내 블로그에 그 글을 가져와서 올렸다.

그 분을 돕고 싶다는 글을 읽은 이들이 성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중엔 나와 만났던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이버 세상에서만 아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는 처음 찾아 왔다가 딱한 사정을 읽었다고, 오랜만에 들렀다가 알게 되었다고, 또 어떤 이는 끝내 자신을 밝히지 않는 등 생각지 않았던 사람들이 성금을 보내 주었다.

일주일 동안 27명이 모아준 성금 127만원을 ㄷ님이 전달하러 가자 무슨 영문인지 몰라 두 눈만 껌벅거리던 그가 이윽고 정황을 알아차리고 감격의 신음 소리를 냈다고 한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내게 생명의 밧줄을 내려주셨군요. 정말 정말 다시 태어난 것 같소. 피눈물 나도록 고마운 이 보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이라고 그 많은 분들이 귀한 돈을 보내셨누……. 송구스럽네.” 그러면서 이름을 비공개로 했다는 전제에 대하여 얼굴도 모르는데 이름이라도 알아야 하는 것은, 누구한테 도움을 주었는지 도와준 사람들이 마땅히 알 권리니 본인의 실명을 밝히라고 했다며 고00씨라고 이름을 밝혀 왔다.

그리고 며칠 후 정밀 검사 결과 다리를 다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해서 보조기구를 착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걷기가 많이 편해 졌다며 쓰고 남은 돈을 돌려주겠다고 해서 통원치료와 재활비용으로 쓰라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수술을 받았을 텐데 아쉽긴 했지만 가족도 없이 하루 벌어서 살아가는 그에겐 남은 수술비며 생계가 문제된다니 그만해도 잘했다고 위로를 삼기로 했다.

흔히들 요즘 세상이 각박하다, 인심이 야박하다고 말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자식이 매를 맞고 왔다고 금·권력을 동원해서 보복 폭행을 한 재벌회장의 그릇된 행태에 씁쓸해하고, 돈 이만 원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보도에 한숨짓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 생색도 나지 않는 일에 반찬값 아낀 돈을 선뜻 보내주고 소리 없이 마음을 모아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한, 이 세상은 살아 볼만한 세상이다. 문득 김수영님의 ‘풀’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유혜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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