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5월 1999-05-01   1249

약값판매자가격표시제 제대로 실시되고 있나

널뛰는 약값, 정부는 속수무책

항간에 약장사 맘대로라는 말이 있다. 굳이 약값에만 쓰는 말은 아니지만 약값과 관련하여 이렇게 어울리는 표현도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 약값은 그 표시가 어떠든간에 그야말로 약장사 맘대로 였다. 그래서 소비자는 약값이 싸든 비싸든 항상 속는 기분으로 약을 구입했고,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갖은 규제장치를 두었지만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약값문제였다. 정부 시책에 따라 약값과 관련된 용어도 다양하다. 보험약가, 공장도가, 최저공장도가, 표준소매가 등등. 거기에 지난 1월 20일부터 새로 등장한 이름이 ‘판매자가격’이다.

판매자가격표시제란 의약품을 직접 일반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판매자가 팔고자 하는 희망가격을 정해 판매가, 가격, 정가의 형태로 의약품에 표시하도록 한 제도이다. 이는 시장의 경쟁원리에 따라 자유로운 가격경쟁을 통해 그동안 부풀려져 있던 약값을 정상화시키겠다는 보건복지부의 기대가 담겨 있고, 이는 어쨌든 의약품 시장에 많은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우선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변화는 할인점을 방불케 하는 대형약국들의 가격공세일 것이다. 조용한 실내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우아하게 손님을 기다리던 약국들이 가격경쟁에 뛰어들었다. 한 대형약국은 올해 들어 ‘저희 약국보다 싼값에 약을 샀을 경우 영수증이나 가격표를 가져오면 그 차액을 보상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가격리콜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주위의 가격질서 교란행위라는 눈총에 현수막의 내용을 바꿔야 했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록 그 약국의 시도가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약국들이 이 제도 시행에 따라 변화될 시장의 상황에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약국 가격담합 우려 목소리 제기돼

판매자가격표시제에 대한 제약회사들의 동요도 적지 않다. 사실상 그동안 약값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제약회사로서는 시장에 그 결정권을 내주게 되면서 새로운 판매전략들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동안엔 각종 할인이나 할증의 형태가 주된 영업전략이었다. 특히 대형약국과의 거래에서는 자사의 유명약품에 대해서는 높은 할인율을 둬 가격을 낮추고, 대신 비유명약품의 경우 많은 마진을 붙이는 것이 제약업계나 약국들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판매자가격표시제를 시행하면서 정부는 약품가격에 대한 기존의 규제들을 풀고 자율경쟁에 맡기는 대신 경쟁에 있어 시장경제의 규칙을 지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즉, 판매자는 약품가격을 결정할 때 실제 구입가보다 낮게 책정하는 것은 덤핑으로 간주하여 약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영업정지처분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약회사로서는 이전과 같은 할인, 할증은 곧 제품의 가격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상품에 대해서는 가격지키기 전략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즉, 이전과는 반대로 소비자에게 널리 인식돼 있고 판매량이 많은 약품의 경우 출하가를 올리고 출하 물량을 조절하여 가격을 높여보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약사회 소속 한 약사의 조사에 따르면, 약품 공급가격을 지난 해말과 3월말을 비교해 본 결과 ‘콘택600(100캡슐)’이 7,800원에서 12,900원으로 65.3%, ‘펜잘(100정)’은 5,500원에서 7,000원으로 27.3%가 각각 올랐다. ‘판콜에스(30병)’는 5,850원에서 7,590원으로 29.7%가 올랐고, 박카스도 250원에서 275원으로 공급가격이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이런 약품들은 물량이 달려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어 약국이나 소비자는 이 가격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유명 의약품회사일수록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 신문사의 조사에 의하면 유명메이커 즉, 10대 메이커는 출하가가 오르고 100대 이하 메이커는 출하가가 인하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런 추세는 소비자에게는 싸게 팔겠다는 약국의 의지와 달리 오히려 약값이 올랐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종로에 있는 한 대형약국의 약사는 “구입가가 오르자 매출이 떨어졌다”며 “약값이 왜 이리 올랐냐고 따지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의약품 가격의 상한을 규제할 아무런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판매자가격표시제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약값이 오르는 것을 조장하고 있다는 원망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우려에 대해 “판매자가격표시제 실시로 인기 의약품의 판매가격이 당분간 올라가겠지만 6개월 정도만 지나면 업체간의 자율경쟁으로 값이 이전보다 내려갈 것”이라며 정책의 효과를 낙관하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규제는 풀고 자율경쟁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기대처럼 가격인상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고 조만간 경쟁에 따른 의약품 가격인하 효과가 나오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판매자들간의 담합과 소비자의 정보부족이다. 실제로 지난 1월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이 모임이 제도시행에 맞춰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약국들이 지역 약사회를 통해 의약품 표준구입가 정보를 입수, 인근 약국과 약값을 맞추려는 등 가격담합을 위한 집단행동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정부는 담합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제를 가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2만여 개가 넘는 약국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가격조사를 하지 않는 한 담합을 밝히기 어려운 문제가 있어 이를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논리에 기대는 편의주의?

판매자가격표시제의 난점가운데 한 가지는 소비자가 의약품의 적정가격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표준소매가의 경우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의한 약값 가이드라인이 결정되었던 것에 비해 판매자가격표시제는 약값의 판단을 판매자에게 맡김으로써 의약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의 경우 그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확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의약분업도 안된 상태에서 편의에 따라 가까운 동네 약국을 찾아 귀에 익숙한 약을 주문하는 우리나라의 의약품 소비행태로는 정부가 아무리 의약품 가격경쟁을 유도한다고 하더라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런 문제제기를 인식한 정부는 약가 정보를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겠다는 취지 아래, 생산실적을 기준으로 100개 품목에 대해 한번에 50개 품목의 약가를 조사한 뒤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수요일에 지역신문이나 지자체 소식지, 생활정보지 등에 품목별 최고가와 최저가를 공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약사회나 제약회사측은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의약품의 특수성을 고려해볼 때 불가피한 조처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얼마나 잘 진행되느냐에 따라 판매자가격표시제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판매자가격표시제 등의 조치들을 볼 때 이번 기회에 제멋대로인 의약품 가격을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의약품이라는 상품의 특수성이 세심히 배려되지 못한 점이다. 의약품의 오·남용이 심각한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보다 싼 약을 공급하는 정책 이전에 정확한 판단에 의해 꼭 필요한 약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므로 의약품을 비롯한 의료부문을 자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국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간여와 정책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약 장사’로 돈을 벌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약에 대한 시장경쟁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보험약가 인하, 의약분업과 여타 다른 보건의료정책의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의약분업을 비롯한 다른 보건정책들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가격경쟁이라는 전쟁터로 약가정책을 밀어넣은 것을 보면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에 있어 개혁을 통한 의료의 공공성 확보보다는 시장논리에 기대는 손쉬운 방법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은경 참여연대 사회복지특별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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